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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Nov 19. 2023

[변호인]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자기변호

죽을 때까지 나를 소명하는 일

변호인


아픈데 미안해

살면서 늘 크게 신세 질 거라 생각은 했어


불리한 재판이지만

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당신은 볼 수 있으나

증거가 될 수 없고


오래되었으나

이토록 명확한 상처 앞에서


당신께 할 수 있는

모든 진술을 하겠어


거기 나 있니

아픈데 미안해


문득문득

감정의 언어만 남은

추한 피고가 될 때면


의심도 일말의 가능성도 없이

내 편이 되어줘


중요한 순간에 눈물만 흘리더라도

당신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마침내 눈을 감고

판결문이 내려오면


두 귀를 막고

양 어깨에 손을 올려 꽉 안아줄게


나비의 모습을 하고

그때는 가뿐히 떠나


이 지긋한 자기변호의 삶으로부터

홀연히




누구나 자기변호를 하며 살아가겠지만 좀 더 자신(의 상태)을 설명하는 일에 큰 에너지를 써야 하는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어떠한 서사를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상태에 다다라있는 사람들 말이다. 희귀병에 걸렸든 자폐가 있든 우리(심지어 본인의) 상식 밖의 행동을 해야만 하는,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와서 큰 숙제를 다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도 못한 일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사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엔 그 즉시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절을 올리고, 산소도 가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았다. 사족이지만 그러지 않기로 이미 얘기를 해둔 뒤에도 어른들이 서운하다고 난리를 쳐대서 가족들끼리도 깨나 골머리 썩었다. 나도 결혼이 처음이에요, 우리 집 개혼이고요, 나의 모자람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역시나 가족과 어른을 대하는 일이 가장 만만치 않다.


아직도 강한 트라우마로 남은 공황장애는 사실 큰일이 아닐 수 있다. 나도 공황장애였어, 하도 이런 주제로 글을 많이 쓰다 보니 공밍아웃 연락을 많이 받기도 했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의식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고 또 꽤나 먼 지인들과 얘기를 주고받게 되면서 새로운 썰들이 추가되기도 했다. 적절한 대응으로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난 지인이 많아 기분이 좋기도 한 반면, 무리하는 날엔 약을 과다복용해서 30대까지 심박수가 내려가 저심박 알람에 수십 번 깨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그래도 받아들였다. 이렇게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사회적 상식 안의 행동양식을 영위할 수 있다면 실보다 득이라고 생각했다.


양가인사 문제까지 일단락되고 나자 드디어 쉬는 주말이 생겼다. 오늘이 D+29일이니까 거의 한 달 만이다. 신혼여행도 짧게 다녀왔지만 그동안 미뤄둔 업무 등을 처리하느라 구내염에 몸살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직까지 선물을 전하지 못한 동생이 마침 집에 놀러 왔다. 화기애애하게 밥도 먹고 선물 사용법도 알려주고 하객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불안이 심하고 약을 지금보다 적게 먹던 시절, 나는 공황장애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가족에게 서운해 4-5년 간 본가도 찾지 않고 가족 카톡방도 나가버린 일이 있다. 그들도 나도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나 이제는 시간이 지나 오해를 풀고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간신히 가족에게 모든 이해를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사촌과 그 외의 어르신들은 여전히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어찌나 많다고 하던지!


말이 4-5년이지, 그새 내 또래의 사촌들도 막 적령기가 되어 각종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이 많았고, 거기에 나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면목이 없어 대략 설명을 하고 말았지만 그 경사의 현장에는 언제나 이를 지켜보는 사촌과 어르신들이 있었던 것이다! 내 결혼식만 해도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 천지였는데, 아직 나의 처지를 소명하지 못한 이들이 이렇게 많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물론 2부 연회장에서, 어릴 적 본 삼촌들이 네 책 잘 읽었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해서, 그러면 내가 공황이 있었다는 걸 알겠지 하고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마나 깊은 이해를 샀는지는 모르겠기도 하고... 그걸 읽지 않은 사람이 더더욱 많을 것이고...


검찰청에서 일을 하는 동생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니 생각이 주렁주렁 뻗어가는 밤이다. 자기변호, 몇 번 비슷한 개념은 떠올렸으나 동생을 앞에 두고 보니 정신을 번쩍 차리듯 시상이 떠올랐달까. 물론 동생은 극 T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말을 전했을 뿐이지 온전히 나의 편이었다. 그러나 이 끝없는 자기변호를 앞에 두고, 다시금 내 처지 소명의식이 불타오른다.


아! 모든 게 끝났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도대체 누구한테 어디까지 설명을 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손가락질받고 얼마쯤은 나쁜 사람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면 편할 텐데.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피해자 의식은 이제 버리려고 해도 정말 쉽지 않다.


행복이 찾아오면 글이 안 써진다고 했던가.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를 안고 만원 버스에서 휘청거리면서도, 손잡이를 잡은 손의 결혼반지를 보며 이제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들어왔다고, 행복한 피로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나의 이 작은 불행은 나에게 계속해서 글을 쓰라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알겠다. 나는 내가 나쁜 이가 아니라고 세상에 소명하기 위해서 계속 글을 쓸 테니, 대신 못난 마음만은 지속되지 않기만을 빈다. 내가 십분 이해하는, 그러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이 나중에 내 사정을 듣고는 눈물의 블로그 감상평을 써서 검색어 상위 목록에 오를 날까지 명작의 책을 써내리라. 그게 죽는 날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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