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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Dec 26. 2023

[도토리 주머니] 쓸개를 절제하고서

영영 이별하자는 것도 아닌데. 쓸모없는 건 조금만 절제하자는 말인데.

도토리 주머니


모처럼 건강한 어린 시절에

오 내게도 살갗 안의 공간이 있었네

함부로 고통을 품을 수 있는


그건 자립의 주머니였네

쓸개였네 당신은 도토리였네


당신이 그 눈동자만큼 자라서

밤새 아프게 할 때에는

특권인 줄 알았네


언제든 날 향해 달려올

구급차의 버튼을 배꼽에 달고서

안아줘 안아줘 하고

인형처럼 굴었네


당신과 내 아버지가 산소를 걷던 날

먼발치서 도토리를 주워 소매에 넣고

며칠을 굴리며 다녔는데


경찰 같은 의사가 쓸개를 절제하고서

너무 늦게 말하네

그건 쓸모가 없더라고


이제 나 혼자 살아야 하네

씹고 부수고 삼켜야 하네


쓸모없는 도토리를 굴리며

절제된 삶을 도로록 걸어야 하네


2023년은 정말 대단한 해다. 12월 연말의 절반이 대학병원에서 사라졌다. 불현듯 받아본 복부초음파 소견에 따르면 2.5센티의 담석이 담낭(쓸개) 안에 보인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라고 해서 갔다. 담당교수는 피검사서부터 CT까지 대여섯 시간에 이르는 종합검진을 시키고서 사실은 초음파 CD만 보고도 수술을 결심했다 한다. 삼십대 초반에 처음 받아보는 수술이었다.


2박 3일, 강남에 가면 1박 2일 만에도 해치운다는 담낭절제를 꼬박 일주일 걸려 받았다. 골든타임을 놓쳐서 담석 하나가 담관을 타고 내려갔고, 눈알이 노래지도록 황달이 생기며 간수치가 폭등했다. 덕분에 수술 전후로 담관내시경(ERCP)을 추가 시술했다. 간수치가 내려가야 마취과에서 전신마취 허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2~3일은 금식과 피검사를 번갈아 하며 제발 수술대에 누울 수 있기를 빌었다. 속옷을 입었다 벗었다가 하며 희망고문을 당하는 동안 애꿎은 어린 간호사의 서툰 주사실력을 탓했다.


수술 후 봉투에 담겨 내 손에 들린 담석은 하나가 아니었다. 알이 굵은 도토리만한 것 하나와 소보로만한 작은 알갱이 6개가 들어 있었다. 담석산통이라 불리는 고통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는 사진을 연신 찍었다. 담관시술을 통해 빼낸 분도 있을 테니 이 모든 것들이 하루이틀 만에 생긴 건 아닐 테다. 그런데 웃기게도 입원일자 단 하루 차이로 한 알이 담관으로 넘어가 병을 키웠단다. 그날에는 또 하나의 사연이 있다.


심한 복통으로 외래에 방문한 날, 교수님은 당장 입원해서 병이 커지기 전에 얼른 절제수술을 하자고 권했다. 나는 무조건 남편과 같이 입원하고 싶어 거절했다. 하루 반나절도 혼자서 병실생활을 하기 싫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불안이 크다한들 자기 건강이 달려 있는데 이렇게까지 한다고? 나는 당돌하게도 선생님께 아픔은 감내하겠다고 했다. 선생님도 손을 내두르며 포기했지만 가장 어이가 없는 건 남편이었을 테다.


꼬박 일주일을 병원에서 희망고문 당하며 남편은 수시로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자기 없인 병실에 못 있는데, 간수치가 아직 안 떨어져서 회사에 복귀할 수 없다고 보고를 했다. 내가 금식을 해야 하는 날에는 본인도 식사를 걸렀다. 새벽마다 채혈하러 오는 간호사의 발자국소리에 매일 선잠을 자고, 희망고문에 지친 나보다 수술에 대해 긴장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암투병을 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오래 간병했던 시절이 많이 떠오른다고 했다.


입원 첫날, 캐리어 짐을 풀고 나서, 큰 키가 간신히 담기는 간병인 침대에 누워서 생각보다 편하다고 웃는 그를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안해. 미안해. 어떤 날은 ”늘 아팠는데 속 시원하게 떼버리자“고 하다가도 ”사기결혼 당했다”고 농담하던 그였다. 아프기도 별나고 정신적으로는 더 별난 나랑 사는 게 또 얼마나 별나게 힘들고 지칠지... 미안하지만 나는 가늠이 안된다. 당사자인데, 가해자인데, 그래서 더 모르겠다.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 갈등의 요소가 하나 더 생겼다. 다음 외래가 평일인 목요일로 잡힌 것이다. 최대한 주말로 옮겨보려 했으나 대학병원에서 환자는 절대적 을이었다. 기껏 담낭 하나 제거해 놓고서 두 명의 교수를 주말출근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일주일이나 폐쇄된 병동에서 나를 지켜준 남편에게 외래 동행도 해달라는 염치없는 말을 뱉었다. 며칠간 그걸로 다투다가 결국 동생이 하루 서울에 올라와 가족 건강상태도 살필 겸 동행해 주기로 했다. 그래. 나는 기껏해야 2~3시간 걸리는, 내 몸 살피는 외래도 무서워서 혼자 못 가는, 정신적으로는 팔다리도 없는 장애인인 거다.


담낭 절제를 검색하면 수술찬반에 대한 의견이 엄청나게 많다. 그래도 우리 몸에 쓸모없는 장기는 없다는, 창조론적인 믿음 혹은 후유증을 겪은 사람들의 반대의견이 있는 반면에 맹장과 견줄 정도로 쓸모없으며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장기이니 떼는 게 맞다는 찬성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나는 지난 몇 해간 그 고통을 스스로 ‘등암’이라 칭하며 등과 복부, 옆구리가 아파 습관처럼 밤을 새우던 사람인지라 후자의 의견을 택했다. 다만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간에서 만든 담즙을 이제까지는 쓸개가 주머니 역할을 하며 알뜰살뜰히 모았다가 음식이 들어오면 그 쓸모에 맞게 쭉 짜주는 역할을 했다면, 쓸개가 없어진 후의 담즙은 맥없이 담관을 타고 졸졸 흐르게 된다. 필수장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보조역할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이제 나는 담관이 담즙을 제대로 전달할 때까지 식습관이든 컨디션이든 관리를 해야 한다. 도와주는 장기 없이 스스로 삼시세끼 밥을 씹어 삼키고 소화를 위해 부지런히 걸어야 하고, 무엇보다 장기가 그 빈자리를 메꾸며 새로 자리 잡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보조역할과 쓸모에 대해서 생각한다. 혼자서 가는 길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를 불식시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거는 무한한 보조역할에 대한 요구. 그가 모처럼 거절했을 때의 우리 관계. 그것 하나도 혼자서 못 해내는 내 사지의 쓸모. 보조하기 위해 너무 많은 걸 희생해야 하는 남편, 그리고 그가 느낀다는 자신의 존재의 의미. 내가 끝까지 놓지 못하는 애정결핍과 ‘자식보다 일’이 먼저였던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하여.


아빠는 남편을 별 볼 일 없는 사위라며 미워하지만 내가 왜 그를 선택했는지는 하나도 모른다. 내가 눈길에 얼어죽든 공황장애 때문에 한의원을 찾아가든 생리통으로 눈앞이 노랗게 앓아눕든 나보다 일이 우선이었던 하나뿐인 보호자. 남편은 ‘일보다 나’를 우선으로 여길 만큼 착하고 가정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다. 돈보다, 일보다, 현실보다 나를 먼저 챙겨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남편을 선택했다. 감정적이고 철이 없는 짓이 맞다. 현실을 아예 외면할 순 없으니 내 트라우마가 발동될 때마다 무조건 그에 맞춰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은 결혼 후에 더 현실적인 성향으로 기울었다. 남자의 경제적 책임감은 사랑하는 사람의 비현실적 감정보다 강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결혼 후에 우리 부부는 아빠와 남동생과 함께 산소를 한 바퀴 돌았다. 시골 산을 오르고 막걸리를 따르고 하면서 나는 한 발치 멀리서 걸었다. 남편이 이 씨 집안 남자들과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자꾸만 발에 딱딱하게 밟히는 도토리 몇 알을 주웠다. 벌레 먹은 걸 골라내니 내 담석만한 도토리와 작은 것 두세 알, 총 네 알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옷을 출퇴근 때도 그대로 입었으므로 회사를 오고 가며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면 그걸 건강제품처럼 도로록 도로록 굴리며 다녔다. 쓸모없는 물건인데 그냥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양 회사에 수술일정을 알리고 나서 마지막 휴일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다. 앞으로 자립적인 사람이 되어볼게 하고 이미 100번도 못 지킨 약속을 또 했다. 남편이 “네 담석 심심해서 꺼내왔어”하고 손을 편다. 몸서리치고 보니까 도토리였다. 그걸 왜 믿어, 하고 둘이 웃는다. 너는 충분히 그럴만한 인간이니까, 로 시작해서 다시 시시콜콜하게 일상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는다.


나는 과연 너로부터 자립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이제 애인이 아니고 부부니까. 네가 아빠처럼 현실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것 처럼. 나도 스스로의 자유를 거세하고 너라는 보호막 안에 살 게 아니라, 아내답게 더 억척스러워져야 하는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가. 영영 이별하자는 것도 아닌데. 쓸모없는 건 조금만 절제하자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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