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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Mar 14. 2020

준법감시위원회 유감 2

보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쪽이 뇌물공여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이 부회장의 형량 감경 사유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동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 쪽에 준법감시위원회의 설치를 권고했고 그 권고를 수용하여 설치되어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을 감형의 사유로 고려해달라는 이야기는 "짜고 치는 고스톱"의 전형으로 보인다. 다시 한번 "부끄러움은 얼굴의 두꺼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입속에 맴돈다. 한마디로 염치가 없는 것이다.

양형 감경의 논리로 미연방법원의 양형기준을 예로 들고 있는데, 여기서 그 양형기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갈 필요가 있다. 영어로는 "Federal Sentencing Guideline for Organisations(FSGO)"로 표현되고 있듯이 회사에 대한 양형기준이다. 범죄행위와 관련하여 회사의 법규 준수 노력이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었음을 회사가 입증하는 경우에 회사가 조직원의 범죄행위와 관련하여 부담하게 되는 양벌죄의 적용에 있어 형량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여 회사의 컴플라이언스와 윤리경영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자발적으로 윤리준법경영을 실천하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이 부회장 쪽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이 준법감시제도를 구축하고 운영할 유인이 부족하다면서, 기업에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려면 ‘형의 감경을 포함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갑자기 "준법감시제도는 최고경영진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준법감시제도 설치 및 운영에 따른 인센티브가 경영진 개인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연방법원의 인센티브는 양벌죄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경감시키는 것이고 그러한 인센티브는 사전적으로 회사 내에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데 반해, 변호인단의 주장은 회사가 아니라 경영진 개인에 대한 감형 인센티브를 그것도 사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제 운영한 지 한 달 남짓된 그룹 차원의 준법감시위원회를 가지고 주장하고 있으니 구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는 얼마 전 삼성의 과거 불법행위는 대체로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었다면서 이부회장의 사과와 반성을 권고했다고 한다. 삼성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원활하게 경영권을 승계받도록 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들이 움직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삼성물산이 합병 직전 회사 가치를 떨어뜨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분식회계를 벌였다는 게 경영권 승계 의혹의 골자다. 삼성그룹의 주요 경영진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직적으로 불법행위를 치밀하게 조직하고 실행해왔다는 것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불법행위가 방지되도록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어도 모자랄 판에 '조직'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불법행위를 지원해온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경영권 승계뿐만 아니라 '무노조 경영'에도 그대로 드러나 이상훈 이사회의장을 비롯한 핵심 관련자들이 지난해 말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이런 것을 보면 삼성의 핵심 경영진은 그냥 회사 조직이 아니라 '범죄조직'이다. 그리고 그 우두머리가 이재용 부회장인 것이다. 이러한 범죄조직에 대해 '사과를 권고'하는 것이 '준법감시위원회'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인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 '사법 정의'이다. 내로라하는 명망가들로 허울 좋은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언론플레이나 하면서 이를 감형의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삼성답지' 못하다. 좀 더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삼성다움'이지 않았는가? 준법감시위원회의 설치를 요구했던 재판부가 어떻게 '화답'할지 궁금하다. 플롯대로 흘러가는 뻔한 답을 내놓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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