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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Mar 28. 2020

이율배반에 대하여

주장하던 논리나 입장이 서로 모순되는 데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사정을 돌아보는 것은 스스로가 그 함정에 빠졌던 경험이 있는 이들의 몫일 것이다. 그렇지 않음에도 그 뒤 사정을 돌아보는 사람이라면 현명한 사람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작용하는 원인들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안목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도 그 원인을 찾아 치료를 해야지 증상만 바라보다 보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위성정당을 두고 구설수가 많다. 애당초 정치개혁을 이루겠다며 야당과의 극한 대결도 마다하지 않고 밀어붙였던 법의 빈틈을 타고 위성정당이 탄생했다. 야당은 비례대표의 비중을 늘리려는 시도에 대해 국민주권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대하더니 위성정당이란 꼼수를 찾아냈다. 꼼수라고 비판하던 여당도 슬그머니 여당표 위성정당을 만들고는 야당의 꼼수에 대응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읍소한다. 비례대표가 확대될 경우 최대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소수정당들은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주장이 개혁이라는 '이상'을 걷어찬 것이다. 눈앞에 표가 중요하고 의석 한자리가 중요한 것이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혹여라 여소야대의 정국으로 변하게 될 경우 집권 후반기에 동력이 급속히 약화될 것을 우려한 선택이었겠지만 '정치개혁'이라던 것이 오히려 '개악'이 된 꼴이라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개혁은 생각과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입법을 통한 제도화가 능사가 아님을 우리는 또 한번 경험하고 있고 또 그런 식의 제도화가 지속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권만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되돌아가고는 하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뿌리 깊은 빨리빨리 문화 때문인지 조급함으로 모든 것을 입법으로 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김영란법이네 민식이법이네 하는 법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대개 '잉크도 마르기 전'에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위성정당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도 한다. 입법이 능사고 강한 처벌로 해결하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그렇게 해서 변화되지 않는다. 변화관리의 목표를 정했으면 로드맵을 만들고 필요한 개입들을 해야 하는데 그 개입의 방식은 현명해야 하고 사람들의 인지행동적 특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활동과 제도들을 섬세하게 설계하고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에는 룰이 있다. 그 룰을 지켜가며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준 높은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에서도 고의적으로 반칙을 하는 경우는 흔히 발견되고 게임의 일부로 간주된다. 그리고 반칙에는 페널티가 있고 그것을 적발하는 심판이 있다. 요즘에는 VR이라는 영상판독까지 동원된다. 그렇다고 모든 반칙이 다 적발되는 것도 아니다. 은근해서 적발하기 어려운 것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고도 넘어가기도 한다. 경기 흐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이고 이를 경기 운영의 묘라고 표현한다.




현실 정치에서 유권자는 관중이면서 심판이기도 하다.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정치를 심판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들 이야기한다. 바야흐로 심판의 때가 다가온다. 전례 없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에 따른 영향으로 정치의 계절은 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덧 봄기운은 세상의 색깔을 형형색색으로 뒤바꿔가고 있다. 이제는 심판이 역할을 제대로 할 때이다. "정치는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주장이 무책임한 정지꾼들의 책임회피성 레토릭에 불과함을 증명해왔던 것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이다. 다시 한번 수준 높은 심판으로 경기 운영의 묘를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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