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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Jul 31. 2020

천박함에 대하여

여당 대표가 서울을 "천박한 도시"로 얘기한 것을 놓고 말들이 분분하다. "천박하다"는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학문이나 생각 따위가 얕거나, 말이나 행동 따위가 상스럽다"라고 되어 있다. 사전적으로 보면 도시 자체를 천박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는 듯하다. 도시 그 자체로는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을 천박한 도시로 표현한 것은 도시를 의인화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하자면 서울이란 도시의 지금의 모습은 '생각이 얕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겠다. 서울이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대표단수로 천박함을 이야기했다기보다는 도시가 성장하면서 문화와 전통이 분절된 채 겉모습만 화려하게 변한 모습의 천박함을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된다. 대한민국의 압축성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또한 수도 서울의 모습이다. 부동산개발이 그 부동산이 자리하고 있는 '터'에 대한 인문적인 고려 없이 자본의 논리에 의존해서 이뤄지다 보니 어느덧 그리 돼버린 것이다. 자본의 논리는 다른 모든 가치 위에 '돈'을 놓게 되니 천박하다.  황무지 위에 건설한 라스베가스가 품격 있는 도시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품격'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겉치레의 화려함으로 포장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은 우리가 사는 집을 개조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집에서 사는 사람들까지 개조하지는 못했다. 문명인이 야만인보다 더 훌륭한 것을 추구하지 못한다면, 또한 천박한 생필품이나 육신의 안락을 구하는 데만 삶의 대부분을 쏟는다면 굳이 야만인보다 더 멋들어진 집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중에서


도시의 품격은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무관할 수 없다. 그 도시의 문화를 만들고 스토리를 입혀내는 것은 그 도시에서 살아왔던 사람들과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씨줄과 날줄을 엮어가며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품격을 높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도시의 구조이다. 도시의 구조를 설계하는 작업, 즉 도시계획에 도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세심한 고민과 전략이 녹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하나하나 디딤돌을 놓아가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도시의 구조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품격을 고양시킬 수 있다. 한 사회의 가치관은 여론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는 비타협적인 소수가 만들어낸다고도 한다. 품격 있는 도시에 대한 비전을 품고 있는 소수만 있어도 도시 전체를 품격 있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소수의 정신이 도시 전체를 천박함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복음이며, 품격을 추구하는 소수의 사람만 있어도 도시 전체의 품격이 고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품격 있게 행동하는 것을 교양이라고 한다. 정치인들의 말에서 품격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정치적 수사'는 실종된 지 오래다. 은유를 버리고 직설법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예의 '천박한 도시'라는 표현을 '막말'이라고 논평하는 어느 당 대변인의 말이 또한 그렇다. 공당의 대변인의 역할이 언제부터 '대변'같은 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바뀌었는지 연구해볼 일이다. 촌철살인의 논평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막말은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을 말한다. 그런 말들은 인격의 천박함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본전이 다 드러내는 일임에도 지껄여대는 데 거리낌이 없다. 막말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국민들은 이낙연 전 총리의 품격 있는 말솜씨에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품격 있는 몇 명의 정치인만 더 있어도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시사 논객들에게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세상만사에 빠짐없이 숟가락을 얹어가며 논평을 아끼지 않는 인사도 있고 또 이를 받아쓰기에 바쁜 언론들도 가볍기는 매한가지다. 이 모든 가벼움들은 도시의 천박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천박한 말들은 사람들의 정신에도 해악을 끼친다. 도발적인 언행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뿐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말로 깔아뭉개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을 감정적인 반대자로 만들어내는 일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편싸움에 사회가 온통 어수선하다. 자신의 견해를 신중하게 인내심을 갖고 전하는 것이 협상의 기술이라고 한다. 정치는 협상이고 정책은 협상의 산물이며, 협상은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이기는 기술이다. 이러한 협상의 결과들이 하나하나 쌓여가면서 품격 있는 사회와 품격 있는 도시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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