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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Nov 28. 2023

입법카르텔에 대하여

민주주의는 3권 분립의 기초 위에서 작동되는 메커니즘이다.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대통령중심제는 여기에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에게 힘을 균형추를 옮겨놓은 형태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은 거의 제왕적으로 군림한다. 사면권을 통해 사법부를 무력화하기도 하며, 거부권, 국회해산권 등을 통해 입법부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 이런 불균형이 가져오는 문제를 언론이 감시해야 하는 것이고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이런 이유로 언론은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제4의 권력을 형성한다. 권력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거나 권력기관 간의 결탁과 유착이 발생한다면 필경 민주주의의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그리고 그 몫은 오로지 국민들의 것이 된다.


근자에 이권카르텔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된다. 카르텔은 경제학적 용어로 시장경제의 가격기능을 왜곡시키는 공급자들의 결탁을 의미한다.  '이권카르텔'은 특정 영역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자들이 규제당국과 결탁하여 이권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검찰권력과 사법권력, 전관변호사들이 결탁한 법조카르텔은 '사법정의'의 구현을 통해 '인권의 최후의 보루'가 되는 역할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다. 이러한 법조카르텔은 입법과정에도 개입한다. 새로운 법의 도입은 법조카르텔에 있어서는 신대륙의 발견과 같은 기회의 땅이 된다. 이러한 토양에서 '입법카르텔'이 잉태된다. 선출권력인 국회의원들은 입법발의와 발의된 법안의 국회통과가 자신들의 실적이 되다 보니 누군가 준비해서 떠다 먹여주는 입법안이 반가운 것이고 여기에 행정부가 한 다리 걸쳐 '청부입법'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손쉽게 입법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정부발의로 법안을 올리는 것은 입법예고와 규제심의 등 까다롭고 번거로운 절차들이 개입되어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다 보니 여당에게 요청하여 의원발의로 법안을 올리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행정부가 서로 윈윈하는 게임이다 보니 굳이 정부발의라는 어려운 길을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행정부에 부여된 법안발의권을 스스로 포기하며 입법부와 행정부가 결탁하는 입법카르텔을 구성하는 것이다. 정부의 고위공무원이 여당의 전문위원의 타이틀을 달고 매개자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자연스러운 과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최근에 국회에 예의 청부입법을 통해 법안심사가 진행 중에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법조카르텔과 입법카르텔의 공동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로펌들은 벌써부터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책무구조도"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내부통제 실패의 책임을 질 임원을 특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반드시 '복수의 임원이 아닌 1명'의 임원이 지도록 하고 있다. 동 제도를 도입한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 영국에 있어서도 없는 내용이다. 입법안의 모델이 된 영국의 FSC의 Management responsibility maps에 대한 규정에서는 "1인 이상에게 공동책임을 지우거나, 개개인별로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기업경영에 있어 책임을 혼자서 온전히 부담해야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또 누가 혼자서 그 책임을 다 져야 하고 임선선임 제한 등 자신의 신변의 위험을 부담한다면 대개는 보신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혁신의 실종'으로 귀결될 것이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와 관련하여서는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서 공동의 책임을 부과하면서 내부통제와 관련해서는 공동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므로 누군가 '1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발상은 이율배반적일 뿐만 아니라 비상식적인 일이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조직이라면 어떠한 책임을 오로지 1인에게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상식'이 국회의 해당 상임위원회 입법소위에서는 전혀 논의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눈에만 안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청부입법'은 과속페달을 밟기 일쑤이다. 청부한 쪽이 원하는 타임 라인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법률의 제정 내지 개정은 한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는 과정이며...... 입법자는 법률의 제정과 개정, 폐지에 따른 법륭의 변화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사회변화 및 그에 따른 법률변화의 필용성을 충분히 분석하여 입법에 반영해야 한다....... 정부입법의 경우 입안절차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마련된 법률의 초안이 여러 단계의 검토, 수정을 통하여 '좋은 법률'로 거듭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장치들이 작동하고 있는 반면에 의원입법의 경우에는...... 특별한 검토 내지 수정단계도 없고 규제심사도 거치지 않도록 되어 있고......"('의원입법의 입법평가와 평가방법론에 관한 소고' 2010.06 차현숙/한국법제연구원)라는 지적이 여전히 유효한 분석이다. 오히려 이러한 분석 이후에도 의원입법안은 더욱 경쟁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으로 정부입법은 현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상당 부분 규제차익을 노려 '청부입법'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원발의에 따른 입법과잉을 제어하고  '더 나은 법률' 또는 '좋은 법률'을 만들기 위해 발의된 '입법영향평가제도'가 회기를 지나 폐기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입법카르텔'의 작동원리에 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 시대는 더 이상 악법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이 시대에 있어 법이 악법이 되는 것은 입법자가 악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입법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세심하게 검토되지 않고 '입법카르텔'의 의지에 따라 졸속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제는 "악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라고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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