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을 잘 잠가야 한다."
야구, 축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 뒷문을 잘 잠그는 것이 승리의 필수요건이다. 선발투수가 7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고 해도 뒷문이 무너지면 다 잡았던 경기를 망치기 일쑤다. 축구경기에서 공격수들이 상대진영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여 골을 넣어다 하더라도 뒷문이 헐거우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바둑에도 뒷문이 열린 곳에 집을 짓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그만큼 빈 틈이 없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뒷문'은 비유적으로는 비정상적인 경로를 의미한다. 떳떳하지 못한 길이라는 얘기다. 대학입학도 뒷문으로 할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어떻게 들어가든 졸업할 때는 사각모 쓰고 당당하게 앞문으로 나온다. 졸업장만 보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에도 상장기업으로 가는 '뒷문'이 있다. 통상 'Backdoor Listing'이라고 표현된다. 비상장기업과 상장기업을 합병하는 방법이다. 보통 대주주 지분율이 낮고 경영난에 빠진 부실기업을 비상장기업이 최대주주 지분과 경영권을 넘겨받아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여기에서 비상장기업도 대개는 IPO를 통해 정상적으로 상장할 수 있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정문'으로 들어가기 힘든 기업들이다. 이렇게 뒷문으로 자본시장에 들어가는 이유는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유상증자 등 자본조달을 통해 투자자들의 돈을 손쉽게 챙겨가기 위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뒷문이 상당히 넓다는 데 있다. SPAC과의 합병으로 상장하는 경우 별도의 상장심사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코스닥시장의 경우 상장요건이 매우 간단하여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SPAC은 아무런 실체가 없는 SPC에 불과하지만 IPO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하여 특별한 요건 없이 상장하고, 합병상장요건에 해당하는 비상장기업을 찾아 합병을 추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목적회사이다. SPAC은 상장 후 3년 이내에 합병을 못하게 되면 IPO를 통해 모든 돈을 투자자에게 반환하고 해산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SPAC은 주로 증권회사 IB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되며 IB사업부는 SPAC과 비상장기업의 합병이 성사되면 M&A 에 따른 수수료를 취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PO시장이 활황일 때는 아무런 실체가 없는 SPAC이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하여 금융감독원에서 '투자자유의' 경보를 발령하기도 한다. IB사업부들은 SPAC의 상장이 목적이 아니라 비상장기업을 합병시켜 M&A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합병상장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최대한 빨리 합병시키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러다 보니 별의별 기업들이 다 '뒷문'으로 코스닥시장에 들어와 '상장기업명패'를 붙이게 되는 것이다. 명패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SPAC을 통해 모든 돈이 고스란히 회사에 들어오게 되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이렇게 합병을 통해 상장도 하고 목돈이 들어오니 지방공단에 있던 회사들이 갑자기 서울 요지에 건물을 구입하여 본사를 이전하기도 하고, 신규사업이라면서 자신의 본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리고 그 사업이 사업성이 없어졌다며 손실처리하면서 그 사업에 들어간 돈은 슬그머니 사업주의 뒷주머니에 들어가는 사례도 종종 있다. 어떤 회사는 SPAC합병을 통해 100억 수준의 현금이 들어오자 대주주인 대표이사에게 상장노력에 대한 대가라며 10억에 가까운 상여금을 지급한 사례도 있다. '상장기업'에 대해 제공되는 '사회적 신용'이 무색하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물을 흐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꾸라지가 아주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회사들은 여유자금을 부동산투자나 이른바 신규사업이라고 하는 데 돈을 다 써버리면 '공짜 돈맛'을 잊지 못해 CB발행을 통해 자본시장에서 또다시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렇게 이익도 변변치 못하거나 적자투성이고 매출성장도 되지 못하는 회사들에 '벤처기업투자신탁'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사모운용사들이 돈을 댄다. 사모운용사들은 IPO 수요예측에 참여함에 있어 동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특례를 통해 많은 주식을 배정받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증권사들의 IB사업부에서 이런 회사들의 CB발행을 주선하면서 배포하는 투자제안서를 보면 DART에 공시된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짜깁기한 수준에 머문다. CB를 주선하면 수수료만 챙기고 아무런 책임도 부담하지 않다 보니 굳이 분석할 이유도 없고, 근거도 없는 장밋빛 전망으로 펌프질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SPAC과 Backdoor Listing, IPO, CB발행 등이 묶여 돌아가는 메커니즘이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자본시장의 역할과는 동떨어진 일들이다. 뒷문이 열려도 활짝 열려 있는 자본시장에서 탐욕에 눈먼 투자자들과 IB 등 시장참여자들이 벌이고 있는 요지경의 세상이다. 뒷문으로 손쉽게 자본시장에 들어온 회사들은 이런 환경에서 좀비처럼 투자자들의 피를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SPAC 합병을 주선하는 IB에 대해 정상적인 IPO주선과 유사한 책임을 부과해야 할 것이다. 책임은 없고 수수료만 챙기는 행태는 이제 그 폭주를 멈추게 해야만 한다. 벤처기업활성화라는 허울만 좋은 코스닥시장의 SPAC합병상장 요건을 대폭 강화해 뒷문을 좁게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벤처기업'이라면 당당하게 앞문으로 들어와야 하고 또 '특례상장'이라는 길도 열려 있어 '뒷문'을 그렇게 넓게 열어줄 이유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