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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Sep 15. 2022

바느질처럼 느리게 정선에서 하루 살기

복잡한 도시의 삶을 벗고 산멍 불멍하며 단순하게 만들어 오다

도시 1.

며칠마다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층간소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범처럼 느닷없이 공포스럽게 내려온다.  ‘참 치열하게 사는구나’하고 역설적이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문득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통스러운 소음 속에 섞여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도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삶도 어둠을 빛으로 지우고, 잠도 설쳐가며 규격화된 틀에서 나오는 나사처럼 어제 같은 오늘을 살고, 내일도 오늘 같은 삶으로 채우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평온한데 행복한가? 

자신의 바람을 관철하기 위해 소리치고, 강요하고, 꺾고, 꺾이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 불행하다고만 할 수 있는가? 답은 각자의 몫이다. 

도시 2. 

밤 10시가 넘은 늦은 퇴근길 아파트 상가 주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차 창밖으로 힐끗 넘겨보니 젊은이 몇 명이 길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유니폼으로 봐서 어느 회사원들로 보였다. 

취업과 퇴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사람들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 도시의 골목골목은 늦은 밤까지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도시 3.

다리에서 강으로 투신한 사람을 수색하기 위한 작업이 사흘 동안 이어지며 아침 일찍 현장으로 달려갔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을 보면서 대화하기도 힘든 엄숙한 분위기가 현장을 더 힘들게 만든다. 

수난사고 수습이 종료되고 며칠 후 다시 치매 노인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산악수색 작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다행스럽게도 연락이 닿아 손쉽게 종료되었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며 안도한다.  

없을 땐 없다가도 몰릴 땐 중요 행사 관련 결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엊그제 초저녁 시간에 버섯 채취하러 산에 올라간 사람이 귀가하지 않았다는 사고가 접수되어 대원들이 출동했다. 가울 초입인데 벌써 두 번째다. 

300백 번의 징후와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대형사고로 이어진다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 적용되는 계절이 되었다. 요즘은 계절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화재나 재난이 발생하고 있으니 일상생활이 긴장의 연속이다.  

시골 1.

정선으로 여행을 떠났다. 어릴 땐 도시의 삶이 그리웠는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문 열면 산 그림자 내려오고,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새까만 밤하늘에 화롯불 쏟아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별들과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 자연의 삶이 그립고 그립다. 

정선 산골의 삶은 내가 살았던 곳의 자연보다도 더 깊숙해서 고요했고, 높은 산 아래 골짜기 곳곳에는 없는 듯 있는 인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웃의 기준보다 훨씬 멀리 두고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골 2.    

잔디 마당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슨 생각을 하려고 해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을로 들어올 때 건넜던 검은 듯 시퍼랬던 강물과 비 온 뒤 땅의 온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안개가 정적을 더해주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고요한 정적이 향기처럼 그윽했다.     

남자들은 자기 집 마당의 잔디 깎기가 로망 아니냐며 내게 묻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지만 왠지 더벅머리처럼 더북하게 뾰족한 잎새들을 가만히 보고 있는 마음이 불편했다. 주인장이 작동 시범을 보이며 내주는 기계를 잡았다. 그도 지금 내가 그렇듯 처음엔 신나서 일 아닌 듯했겠지. 잔디 깎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기계가 지나간 곳의 가지런하게 단정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말끔하게 정돈된 환경을 만들고 바라보는 것은 괜스레 희망적이다. 뭔가가 꼭 이뤄질 것만 같고, 희망 사항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난다. 잔디 깎기의 로망이 성취감 때문인가.     


시골 3.

저녁 식사에서 이어지는 수다는 화로에 담은 장작불이 타오르며 주변에 의자를 놓고 불멍으로 이어졌다. 불을 재난이 아닌 따스함과 다정함으로 보는 게 얼마 만인가.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리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고요한 신비감이 돈다. 주황색과 흰색의 조화를 이룬 불꽃은 유형인 듯 무형인 듯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꿈틀대는 생물인 듯 무생물인 듯 그 조화로운 형상은 우주를 담고 있다. 모든 생명의 에너지 원천을 뿜는 동시에 사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자정까지 이어진 담화는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산속 기온이 낮아서 그런지 날파리, 산모기가 없어 너무 쾌적했다. 아쉬웠던 건 태풍이 몰고 온 구름 때문에 은하수가 흐르는 별들을 볼 수 없었지만 상관없이 그냥 좋았다.   

타오르는 불꽃과 전해오는 온기 속에서 옛 추억들이 하나 둘 꺼내지고 맞장구치며 얘기가 이어졌다. 첫 만남에서 시작된 장소 이야기. 언제적 '겨울안개'인가? 사거리 옆에 있던 풍차는 또 어땠나... 핸드폰도 없던 시절엔 그곳에 가면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 그 친구 이야기, 자식들 얘기 등등...     


시골 4.

아침이 밝아오며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창밖으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보였다. 어릴 적 창호지 문 열면 보이던 풍경이 아니던가. 문 하나만 열고 나가면 바로 빗방울이 만져지고, 먼 산의 짙푸른 녹음 속에서 피어나는 흰 안개가 솜털처럼 깨끗했다. 가지런한 잔디 잎새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혔다. 깨끗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에 동화되는 듯했다.  

아파트에선 위층의 작은 발자국 소리도 마음을 찢는 소음으로 들리는데 그 보다 더 크게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정답고, 아름다운 리듬으로 들린다. 참말로 세상만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      


시골 5

분주하지 않게 일어나 식사를 하고, 어젯밤 남겨 둔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기 아쉬워 가까운 나전역으로 갔다. 진짜 기차가 다니는 역인데 역무원은 없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차를 마시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도 기차에 올라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다. 생각만으로 해방감이 느껴졌다.  

나전역 카페처럼 일반적인 생각을 넘는 삶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 가슴에 품은 희망의 꿈을 찾고, 갈무리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정선에서 이틀의 시간을 꽉 채우고 어둑해지는 길을 달려 돌아오는 내내 뭔가 잊어버린 듯 허전한 기분은 바느질처럼 느리게 흘러갔던 시간이 너무너무 좋아서 생긴 진한 아쉬움 때문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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