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세 살 아기와 지지고 볶는 이야기)
2021년 12월 16일 오전, 회사 회의실.
아이가 등원했다는 키즈콜 알림이 와야 할 시간인데 핸드폰은 조용하기만 하다.
"남편 늦잠 잤나? 얼른 등원을 시켜야 회사 지각 안 할텐데."
초조한 마음이지만 일단 회의는 끝내고 연락해 봐야지 싶다.
맞벌이에 세 살 아이, 엄마는 일곱시 반 출근 네시 반 퇴근, 아빠는 열시 출근 일곱시 퇴근.
직장인 두 명과 어린이집의 공조만으로 이뤄지는 육아 라이프, 아침은 정신없고 저녁은 더더욱 정신없는.
아무도 쫓고 있지 않은데 24시간 쫓기는 기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늘 잘못한 느낌의 하루하루.
그 날은 이런 날들에 예상치 못한 깜빡깜빡 적신호가 켜진 날이었다.
"등원 안 해?"
"열 나잖아. 어떻게 보내, 어린이집엘."
"...그럼 어떡해?"
"일단 어젯밤 얘기한 대로 오후 반차를 써야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가볼게."
"병원은 내가 아침에 데리고 갔다 올게."
"응, 알았어."
막막하다.
어젯밤 자기 전에 고막 체온계로 잰 체온이 38도.
찬바람만 불면 바로 감기에 걸려버리는 약한 면역력의 두 돌 지난 아기.
감기면 어쩌나 고민하다 잠들었었는데, 결국 다시 감기가 시작이려나보다.
만 이 년 넘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아빠의 손에서만 자란 코로나 베이비라
조부모님께 맡기기도 어려워 감기로 가정보육을 해야 하면 재택근무를 신청하거나
남편과 오전반차, 오후반차를 나누어 내면서 바톤 터치하며 얼른 열이 떨어지길 기도할 뿐이었다.
오늘도 팀장님께 아쉬운 소리를 하며 갑작스러운 반차를 내야하는 상황.
개인연차는 언제든 원할 때 필요할 때 쓰라고 있는 거지만
어느 직장인이든 이렇게 갑자기 쉬어야겠다 말해야 하는 상황에 한없이 비굴해질 뿐.
관리자도 이런 쓴뿌리가 있는 직원이 마냥 마뜩치는 않겠지. 이래저래 찜찜하기만 하다.
어떻게 잘 설명하나. 그러고보니 나도 며칠 기침을 좀 했었으니 그걸로 밀어부쳐야겠다.
"팀장님, 저 오늘 반차 좀...."
"왜? 집에 무슨 일 있어?"
"다미가 어제부터 열이 나서... 저도 열이 좀 있고요. 기침도 며칠 하는데,
일단 가서 케어하고 저도... 불안해서 마스크도 못 벗겠네요."
다행히 얼른 들어가 보라는 흔쾌한 답을 받긴 했지만
영 뒤통수가 뜨겁다. 내 몸 상태, 아이의 감기보다도
성실성, 신뢰할만한 직원, 업무 빵꾸 안 내기, 평가, 진급,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엄친다.
'에라이, 누가 뭐라하면 어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다미인데. 신경쓰지 말자. 나만 떳떳하면 됐지.'
그래도 찜찜하다.
너만 애 키우냐, 다들 애 키우는데 조부모님, 도우미 이모님 도움 받으면서 회사에 지장 안 주는데..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애써 모른척 하며 점심도 거르고 있는 짐 에코백에 몰아넣고 회사 주차장으로 종종 뛰어간다.
집에 가는 길은 언제나 뛰듯 걷거나, 뛰거나 둘 중 하나다.
아직 일을 다 마무리는 못 했지만 아무튼
난 다미를 기다리게 하는 엄마니까, 남편은 아직 출근도 못하고 날 기다릴테니까
1초라도 빨리 집에 도착해야 한다.
말끔하지 않은 머릿속을 외면하듯 발걸음을 더욱 재촉해 본다.
그나저나, 이번 감기는 며칠이나 가려나.
계속 오전반차를 써야 하나? 재택근무를 신청해야 하나?
아기를 보면서 근무가 가능할까? 엄마가 와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일은 없을듯..)
아오, 일단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