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감염?
사무실 내 자리는 팀장님 바로 앞,
차장 적은 팀에 나이 많은 과장으로서
‘기획’이라는 직무 아래 온갖 애매한 업무는 다 하는 자리.
재택근무가 권고되는 회사 방침 상,
매일 다음날의 전 팀원 근무스케줄을 파악해 팀장님께 보고한다.
“내일 근무자 누구지?”
“내일 사무실 근무자요?”
“어어.. 그렇지, 재택도 근무지. 내일 ‘사무실’ 근무 누구지?” 허둥지둥한 팀장님의 대답.
“내일은 XXX 차장 사무실, OOO 과장 재택근무, XXX 과장 재택근무이고요……”
….약간의 적막…
웃음기를 띤 팀장님이 내 눈을 마주보며 말씀하신다.
“나 요즘 약간 마음 속의 갈등이 있는데…
이제 완치자도 절반 가까이 되는데 완치자들은 재택 없이 사무실 나오라고 할까…”
…다시 1초의 적막… 나도 완치자, 내 눈을 유난히 들여다 보시는 느낌은
내 자격지심이겠지.
“하하하, 그런데 팀장님, 요즘 뉴스 보니까
격리해제 후 45일이 지나면 항체가 또 뚝 떨어진대요. 재감염 확률도 높다는 소리…”
실제 그것이 사실이라 치더라도
지금 이 맥락 (팀장은 재택 싫어, 팀원은 재택 좋아), 지금 내 입장 (너는 완치자 팀장, 나는 완치자 팀원)에서
이런 말은 여러모로 뒤끝을 흐리게 만드는 묘한 힘빠짐이 있다.
“아니 제가 나오기 싫어서가 아니고요..”
본심은 숨긴 채 바로 다음 말을 이어간다.
“어쨌든 뭐 그래서 내일은 사무실 6명, 재택근무 8명입니다.”
2022년 3월 16일 기준 코로나 재감염자 추정 290명,
전체 확진자 중 0.0038%, 십만명 당 38명 수준이란다.
그런데 이게 말이 이렇지, 델타 감염 이력이 있는 경우 오미크론 항체가 없다는 둥,
첫 감염에서 많이 안 아팠으면 항체가 덜 생성되어 재감염 확률이 더 높다는 둥
흉흉한 루머는 끝이 없다. 3월 내에 정점을 찍을 거라는 방역당국의 말도
이제 다음주면 3월도 마지막주인데 여전히 요원하게만 들린다.
물론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60만명을 넘은 적도 있는 요즘
한번도 안 걸렸던 사람의 막연한 공포만 하련만은
그래도 이런 전쟁 난리통에 저 적다는 비율의 재감염자에 내가 포함이 안 되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
애써 불안을 뒤로 하며
유연근무 이른 출근 워킹맘은 다른 워킹맘과 함께
회사에서 퇴근을, 아니 어린이집에 네살 딸래미 하원 및 육아 출근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 안 그래도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뭐하고 놀아주지…
우리 그냥 재희 픽업하고 우리집으로 가서 유람이 픽업해서 같이 놀까?
즉흥적인 엄마 크로스, 그래, 공동육아가 답이다.
신나게 둘을 하원시켜 동네 놀이터 미끄럼틀 백번, 비누방울 놀이 20분,
전날 만들어둔 미역국으로 서로 경쟁 시키며 (우와 재희 벌써 꿀꺽꿀꺽 다 먹었다~) 저녁 먹이기,
(유람이 아범 야근 알림 카톡을 보고) 예라이 집에 가기 전에 아예 씻기기까지 마치자, 동반샤워
아홉 시가 넘어 카카오티 택시를 불러 빠이빠이까지 한 후 지친 하루를 마쳤는데.
(야근하고 돌아온 유람이 아범은 우리가 이미 모든 저녁 루틴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행복했을 것)
육퇴 후 맥주와 쥐포를 뜯으며 넷플릭스를 보는 평화로운 밤에 울리는 카톡
‘비상 비상, 재희 아범 저녁 약속 다녀와서 키트 했는데 두 줄 입니다 ㅠㅠㅠㅠ’
오마이갓
아니 어떡해요 ㅠㅠ 가볍게 지나가길 바랄게요, 라고 답톡을 해야 하는데
이미 손은 멈추고 머리만 지구 자전 속도만치 빨리 돌아간다.
재희 아부지를 우리가 접촉했던가? 아니야, 재희네 아파트 앞에서 인사만 하고 재희를 울 차에 태웠지.
아니 근데 재희는 어린이집 안 가고 종일 아빠랑 있었댔는데?
그럼 재희랑 우리는 얼마나 접촉했지? 접촉 정도가 아니라 같이 먹고 같이 씻고 같이 뒹굴고…
조금 전까지 재희 엄마가 보내준 네살 동갑 딸래미들이 딱 붙어 아기 자동차에 타고 웃는 사진이
지금은 너무 무섭게만 보인다. 아니, 저기 쟤들 둘 말고 오미크론도 함께 있는 것…?
재희 엄마는 연신 ㅠㅠㅠㅠ와 죄송하다는 말만 계속 하고
나라도 그랬겠지만 어떡하겠어, 우린 아무도 몰랐다. 신경쓰지마 괜찮아. 답을 하고 남편을 본다. 하ㅠㅠ
일단 남편에게 말해보는데 내 친구들에게 ‘안전보안방역관’으로 불리는 그는
심기는 불편하나 뭐라 할만한 상황은 아니라 급격히 (그나마도 없는) 말이 더 줄어들며
팩트 체크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그 아빠의 동선, 그집 아이의 동선, 재감염 확률, 내일 우리의 스케줄…
일단 재택을 하자, 혹시 모르니까.
아니 근데 유람이 얼집을 보내? 아니야 만에 하나라도 얼집에 피해를 줄 순 없지.
그럼 유람이 누가 봐? 누가 보긴 누가 봐. 나밖에 더 있어?
라미 보면서 업무 가능? 응, 불가능. 그럼 재택이 아니라 연차지.
연차? 갑자기 연차? 오늘도 오늘의 일은 내일의 내가 책임지자며
일은 내동댕이 치듯 내려놓고 하원하러 왔는데.
오늘 중 올리겠다 수요일에 호언장담했던 품의문은 그날 저녁을 지나
하루종일 외근이었던 오늘 오후를 또 넘기고 내일 오전에 하려고 했지….
안되겠다. 재택 반차다. 오전에 빨리 일하고 오후에 라미 보자.
오전의 라미는 뽀로로가 봐주겠지. 근데 남은 연차가 몇 개 였더라?
팀장님한텐 지금 말해? 내일 아침에 말해?
또 머릿속은 뒤죽박죽. 낮잠을 재우고 일어나면 바로 소아과 가서 신속항원을 하고…
하, 근데 재감염 확률이 몇이라고?
우린 완치자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해 보지만 아니 아까부터 왜 이렇게 목구멍이 따가운 건데?
이거 맥주 때문이야? 아니면 바이러스가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는 건가?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모르겠다는 답이 딱이다.
어떡할 거야? 그냥 또 버티고, 검사 받고 결과 기다려야지.
음성이면? 진짜 음성일까? 토요일 가사 도우미 선생님은 오라고 해 말아?
언제 또 받아봐야 하지? 라미 아범은 받으라 할까 말까? 정말 미치겠네.
시계는 새벽 한시를 향해 간다. 팀장님께 카톡은 내일 새벽 출근 시간 전에 보내기로 한다.
재감염이라니. 그 난리를 겪으며 완치자가 되었는데 아직도 끝이 안 보인다.
도대체 이 끝이 없는 성난 파도 같은 시절은 언제쯤 막을 내리려나. 아니, 내려질 막이란 게 있긴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