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감염자 거의 없다메!!
전조는 불안하게 찾아왔다.
토요일은 우리집 네살 여아를 혼자 데리고 회사 동료(와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근교 목장 체험에 다녀왔다.
일요일에 용인에 있는 친정에 다녀와야 하니, 주말 내내 일정이 있으면 몸과 마음이 피곤한 내향형 남편을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외향형 인간이라, 이틀 내내 네살 여아와 일정이 있어도 끄떡 없다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외갓집에서 사촌들과 낮잠도 없이 신나게 놀다 귀갓길부터 곯아 떨어진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남편과 예능 다시보기를 한편 본 후 아이 옆에 누웠는데, 몸이 좀 춥고 으슬으슬하다.
‘뭐지..? 생리가 또 일찍 시작인가..? 아님 근력없는 몸을 이끌고 너무 무리했나? 몸살?’
평소와 다름없을 공기가 너무 으슬으슬 춥게 느껴져 이불장을 열어 구스이불까지 꺼내 덮었다. 따뜻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지금 삼복더위에 무슨 구스이불이 따뜻…?
월요일 새벽.
천근만근 안 떠지는 눈,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붓기 땡땡하게 느껴지는 컨디션.
도저히 출근할 수 없는 상태 같지만 그 옛날 ‘아파도 밥 먹고 학교 가서 아파라’가 신조였던 엄마의 장한 모범생 딸답게 초인처럼 눈을 뜨고 정신으로 몸을 이기기 위해 델 듯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자가진단 키트로 코를 깊숙히 찌르고 휘휘 돌렸다. ‘작은 검체라도 놓치지 않으리’ 결과는 음성. 그럼 그렇지. 재감염이 그리 없다는데. 차라리 코로나 걸리면 출근은 안 해도 되지 않나 생각하며 출근 차에 올랐다.
‘와… 오늘 할 일 태산인데, 월요일이라 일주일 계획하는 팀 회의에 안건도 생각해 내야 하는데…’
일곱시 반 출근시간에 맞춰 도착한 사무실. 조출 동료들이 나를 반긴다. 월요일 아침은 억지로라도 텐션을 끌어올려야 하기에 주말 일정 캐치업, 객쩍은 농담이라도 하는 내가 어그적어그적 자리로 기어들어가자 동료가 묻는다. “과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어, 아니에요. 컨디션이 좀 안좋아서. 몸살인가봐. 아침에 자가진단은 했는데 음성. 걱정 마요.”
걱정이 내 걱정인지, 코로나 걱정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안심하라는 의미로 한마디 꼭 덧붙인다. 화이팅을 외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데 눈꺼풀이 내려간다. 와.. 진짜 왜 이래?
서른여덟, 늦다면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안 나오는 젖으로 어떻게 해서든 모유수유를 해내겠다며 이십사시간 잠 포기하고 아이에게만 매달리던 출산 후 일년.
또래보다 대근육 발달이 늦어 십오개월에 첫 걸음을 뗐던 내 딸, 팔개월에 동네 소아과에서 혹시 소아마비일지도 모르니 큰 병원 가보라 해서 근 칠개월을 아니지? 아닐거야. 아니지? 아닐거야. 날밤 새우며 냉가슴 앓던 날들.
나 자신은 사라지고 오직 딸래미 먹고 자고 입고 놀면서 잘 자라는지, 그 와중에 엄마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라는 정서적 안정 애착을 형성하기 위해 내 감정의 업앤다운을 억누르며 지냈던 날들. 그 날들동안 나는 하나도 없었다. 근육도 없어졌고, 지적탐구심도 없어졌고, 일 욕심도 없어졌고 건강과 자존감도 좀 없어졌다. 한달에 한번 생리 때만 되면 생리전증후군인지 뭔지 하루나 이틀은 머리나 배를 부여잡고 드러누워야 하는 크고 둔하고 약한 몸.
그냥 생리전 증후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나절이 지나도 생리대는 깨끗하기만. 내일 시작하려나?
하루만 버티자. 1분이 한 시간 같던 일과를 어찌 보냈는지 모르게 흘려보내고 쫓기든 퇴근한 후 아이 저녁밥을 해먹이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좀 일찍 와주면 안될까? ㅠㅠ 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 미안’
바로 답이 온다. ‘금방 출발할게.’ 퇴근 시간에는 한시간 반은 기다려야 하는 남편 퇴근길이지만 아무튼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하루만 버티자.
달려들어오는 남편에게 밥 다 먹고 즐거운 네살 여아를 패스한 후, 그대로 옷도 안 갈아입고 씻지도 않은 채 침대로 다이빙.
자야 한다. 잘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자야 내일 회복하고 정상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자야…… ㅎ….
퇴근하고 밥도 못 먹고 아이랑 놀아주고 씻겨주고 머리를 말려주는 남편과 아이의 대화가 들렸다 안들렸다 비몽사몽의 잠으로 빠져들었다.
새벽 두시에 한번, 네시 반에 한번, 다섯시에 한번, 다섯시 사십분에 한번, 다섯시 오십팔분에 한번. 컨디션 회복이 되지 않을까 걱정 때문인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생각나서인지 자꾸 깬다.
여섯시 알람은 울리지 않은 채 다섯시 오십팔분에 거실로 나왔다.
콜록 콜록. ‘코와 목이 좀 몸살 감기스러운데..? 혹시 코로나..?’ 무조건반사처럼 코와 목이 불편하기만 하면 드는 의심.
‘에이, 아니야. 지난번 코로나 걸렸을 때도 그렇고, 뉴스 보도에서 오미크론은 더 하다던데. 이정도 아픈 건 코로나가 아니지.’
쳇바퀴 돌듯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몸은 아직 무겁지만 많이 자서 그런지 어제보다는 나은 것도 같고.. 샤워를 마치고 시계를 본다. 여유있게 준비는 못하겠네. 서둘러 나가야겠다. 그래도 찜찜하게 가긴 싫으니 자가진단키트는 한번 더 해보기로 한다. 축축한 머리를 털면서 테이블에 앉았다. 보건소 직원처럼 뇌를 건드리듯 깊게 찔렀던 어제보다는 살짝 얕게. 휘휘 저으니 재채기가 나온다. 엧취. 아, 정말 감기인가? 액체를 테스터 구멍에 똑똑 떨어뜨리고 머리를 마저 말리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어…? 잠깐만, 음성이 첫번째 칸에만 줄이었던가?’
이건 뭐 가끔 하니까 매번 헷갈리네. 첫번째만이야, 두번째만이야… 젖어들어가는 테스터의 확인 부분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핸드폰으로 검색해 볼까? 점점 두번째 구역으로 진입. 손은 핸드폰을 더듬더듬 찾고 있지만 눈동자는 테스터에 고정. 어…, 어… 이게 아닌데…?
두 줄.
자가진단 키트에서 처음 보는 두 줄.
첫 감염은 작년 십이월, 아직 오미크론 사태가 오기 전, (아마도 델타로 의심한다) “내 주변에 걸린 사람 니가 처음이야!” 소리를 밥먹듯이 듣던, 감염자가 많지 않던 시기. 보건소 줄 서서 받던 PCR 검사만 있던 때였으니까 다음날 아침 문자로 ‘양성입니다’ 안내만 받았으니, 직접 보는 두 줄은 처음이다. 아.. 자가진단 키트 음성은 못 믿어도, 양성은 빼박 아냐..?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아니, 처음 든 생각은 ‘출근은 못하네’ 그리고 두번째 ‘아 어제 부서장 팀장이랑 점심 먹었는데 어떡하지?’ 세번째 ‘일요일에 엄마아빠 만났는데 울 엄마아빠 어떡하지?’ 아 잠깐, 우리 딸!!
바로 KF94 마스크를 꺼내 쓰고 방으로 들어가 코를 고는 남편을 깨운다. 가까이 가면 안되니 멀찍이서. “오빠! 오빠!!!! 오빠아앗!!!!!” 점점 복식호흡으로 부르게 되는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남편. “잠깐 나와봐. 잠깐 나와봐. 나 두 줄이야.”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이면 이건 기쁨의 서프라이즈 (맞나? 계획에 없던 건디?) 이겠지만, 이건 코로나 당첨 두 줄.
어떡하지? 어떡하지? 일단 말을 하면서 대화로 상황을 정리하려는 (그리고 어찌 됐든 ‘괜찮아? 놀랐겠네. 걱정마.’ 를 듣고싶은) ENFP 성향의 나와
말을 하면 집중이 떨어지는 듯 일단 정리되기 전까지는 말을 안 하는 MBTI 미상이지만 아무튼 나랑 정반대의 MBTI 성향을 가졌을 남편의 화요일 아침은 이렇게 밝았다.
네 살 육아 맞벌이 부부의 코로나 재감염 일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