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아트리포트

44호

by 윤혜경


피프티피프티



십 대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이어가다가 50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것은 아는 선배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전에 알던 모습 그대로였고 조금 예뻐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 나 생일 기념으로 수건 만들었다.


- 우와 직접 만드셨다고요? 저도 하나 주세요.



며칠 후 집으로 도착한 수건에는 지천명이라고 적혀있었다. 생각해 보지 못한 숫자였고 단어였다. 선배가 50세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서였는지 생일 기념 수건을 오랜만에 받아봐서 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좋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약간 은 먹먹하기도 한 그런 기분이었다. 올 초에 오빠를 만났을 때도 그랬었다. 가끔 오빠를 만날 때 어릴 적 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조금은 안도를 했던 것도 같다. 모두 조금씩 변하지만 오빠는 변하지 않는구나. 좋구나. 그런데 올 초에 만난 오빠는 미세하게 달랐다. 조금 따뜻해졌다고나 할까. 좋으면서 불안했다. 어. 변했는데. 그걸 나이로 설명하기는 싫었지만 우연히도 50살이라니 나이 때문인가. 짐작을 해 볼 뿐이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올해 50세가 되신 분들이 많았다. 어쩌면 50이라는 숫자를 나에게 던져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50세인 분들을 50명 만나고 싶다는 바램이 생겼다. 지금이 6월이고 12월 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50명을 만나는 것이 무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로 50세인 분들을 50명 만나게 된다면 자 없이 사각형을 그렸는데 끝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안도와 놀람과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이 생각의 발단이 되어주신 선배님께 연락을 취했다.



- 선배님 덕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질문을 먼저 드려봐도 될까요?


- 내 인생의 굴곡이 없어. 그렇다고 내리막길도 아니야. 나한테서 끌어낼 이야기가 없을 거야.


-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잘 끌어내볼게요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배님의 마음속에도 어떤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궁금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어서 페톡으로라도 만나고자 했지만 일단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구글폼에 질문들을 넣고 대답을 기다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또 한 가지 개인적인 기대가 있다면 이주여성을 비롯 십 대 여자 아이 등 한동안 여성들과의 작업이 이어졌는데 어쩌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사진 작업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생긴다. 작업 방향이나 결과물이 다른 점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멀리 떨어져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답변을 주시면 그 답변을 토대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 대로 사진을 찍어볼 생각이다. 추상적 인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얼굴이 될 수도 있겠다. 그 누구의 얼굴도 아니고 그저 어떤 얼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꼭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많으니까. 예를 들면 그 사람과 비슷한 돌이라든지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라든지. 예전부터 실험영화를 좋아했는데 영화 상영 내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영화라든지 –미치기 일보 직전에 영화가 끝난다- 어떤 사물을 확대해서 찍은 같은 이미지가 계속된 다든지-확대한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 감독이 얘기해 줘서 알았다!-필름을 거꾸로 돌려서 상영되는 영화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아직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하지만 답변을 듣다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질문 중에 어릴 때 50세를 생각하면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 는데 화요일 밤까지 모인 17개의 대답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대답은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올해 50살이 되신 분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의 엄마 아빠는 대부분 젊었을 것이고 엄마 아빠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면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였으니까. 그리고 어린 시절 50이라는 숫자는 꽤 큰 숫자여서 사람의 나이가 50살이 될 수 있다고?라는 생각까지 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아주 궁금했던 지천명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서 인상 깊었던 대답은



옛날이야기가 아닐까. 요새는 50대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음. AI 등장 이후 더욱 그러함.



라는 것이었다. 그래. 50세라고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은 사람일 것만 같았는데 막상 그 근처까지 가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만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닌지 더 불안하다. AI 등장 이후 불안하면 접속해서 물어보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우리는 더욱 무지해져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된다. 한편으론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우려가 된다.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는 모두가 통통 튀는 대답을 해주었다. 정말 신나는 아이처럼 대답을 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질문만큼은 소중하게 다루고 싶다. 꺼지지 않는 횃불로 모시고 싶다.



수요일 현재 22분이 참여해 주셨다. 어제 질문지를 만들고 급하게 연락드린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성심성의껏 답을 적어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작업을 더욱 견고히 하고 싶다는 바램이 강해진다. 어떤 대답을 읽고는 바로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떤 대답을 읽고는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이를 생각하며 살지 않는 누군가에게도 50이라는 숫자는 넘을 수 없는 어떤 벽 같은 것일까. 혹은 드디어 마주하고야 만 어떤 지점인 것일까?



참고 자료로 실험영화를 찾아보았다. 한국 영화데이터베이스라는 웹에 가보니 실험영화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는 글이 모아져 있었다.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실험영화를 보고 있자니 잠자던 감각이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그래. 맞아. 난 이런 영화를 좋아했었지. 정말 잊고 지냈던 감각을 다시 발견했다. 실험영화제가 아직도 매년 개최되고 있고 세계 각지에서 실험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니. 놀랍고 반가웠다. 인상적인 몇 작품을 봤고 대략적인 방향을 잡아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아직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의미의 인물사진을 영상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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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와이싱 리 Wai-shing LEE <바위 A Rock > 연속적인 이미지에 대한 구상하고 있다. 한 장소에서 여러 컷을 찍거나 미세하게 다른 샷을 이용한 이미지의 연결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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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구림 <1/24초의 의미> 언뜻 보면 의미 없이 보이는 이미지의 나열은 사실은 들여다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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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켄 제이콥스 Ken Jacobs Flo Rounds a Corner (1999)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영상에 대한 구상 중이다. 미묘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주 다르지도 아주 같지도 않은 차이를 말하는 것일까. 같다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효정 씨가 혜경 씨에게 질문합니다.



1> 혜경 작가는 50살에 기대하는 삶이나 어떤 이미지가 있나요?



최근에 미국인 친구를 만났는데 헤어진 후 그 친구가 저에게 고마워 너를 만나면 가벼워지는 기분이야.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처음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아마도 함께 공감하고 웃고 서로에게 칭얼대는-좋은 의미입니다- 사이 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해 주지 않았을까 해요. 50살이 되어서도 비록 저 자신은 그렇지 못할지라도 누군가에게 라이트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2> 저는 반복적인 실험적 영상을 끝까지 잘 보지 못하는데 실험적 영상의 매력은 뭘까요?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사물, 색, 느낌까지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 실험영화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요?모호한 감정과 생각과 느낌을 시각적인 특별함으로 보여주면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실험영화를 보면



‘그동안 모른다고 생각했지. 사실은 아마 너 아마 알고 있었을걸? 자. 어때. 내 말이 맞지.’



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아요.



3> 50명의 50세 인물을 인터뷰하고 창작하는 작업물이 어떤 형태가 될지 기대돼요. 이미지의 형태를 떠나 이 작업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요?



50세 이후의 삶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마음으로 50세까지 살았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준이 되는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하지만 죽음의 주제를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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