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와 장소 그러나 전혀 다른 세계를 본다

광화문 광장의 생경한 겨울 풍경

by 이산은

여의도나 광화문에 간다. 12.3계엄후 나의 주말 활동에 추가된 그것은 올바른 리더십과 정치 사회에 대한 갈망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남쪽 시청 방향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운 군중이, 경복궁 앞에서 동서 방향에는 촛불을 든 군중이 자리한다. 나는 촛불을 들지만 여유 있게 도착하면 먼저 시작하는 태극기 군중 가장자리에서 잠시 지켜보곤 한다. 같은 시대와 같은 공간에서 다른 두 군중을 보는 마음은 늘 서늘하고 착잡하다.


-두 군중은 말과 분위기가 다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운 군중의 말은,

과격하다. 무겁다. 획일적이다.

선동적이다. 흡인력이 있다.

반면 100여 미터 떨어진 촛불 시민의 말은,

친절하다. 경쾌하다. 다양하다.

차분하다. 유쾌하다.

전체적인 느낌이고 분위기다. 물론 참여하는 군중의 세대나 성별에도 차이가 느껴지지만 언급하지 않는다. 자칫 분열을 자극하거나 고착화할 것을 경계한다.

-주장도 전혀 다르다. 계엄에 대한 인식과 주장이 극과극이다. 촛불 시민은 탄핵과 내란 수괴 체포를, 태극기 군중은 탄핵무효와 내란수괴를 보호하겠다고 외친다.

이해하기 힘든 간극이다. 뜬 눈으로 함께 지켜본 동일한 계엄이 아닌가? 야심한 밤에 무장 군경을 동원한 친위 쿠데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내란을 시도한 수괴는 누가 봐도 대통령이다. 공천비리 관련 명태균 게이트 뇌관이 터지며 대통령의 지지율만 비상이었을 뿐 국가나 국민은 일상적인 평온한 밤이었다.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는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인데, 그를 추종하며 계엄을 주도한 국방부 장관과 다수의 군 장성 그리고 경찰 수뇌부는 이미 체포 구금되었고 내란죄 수사를 받고 있다. 계엄계획에 담긴 내용도 수거 (체포), 감금, 북한의 공격유도, 사살 등 살벌하기만 하다. 몇 년 지난 과거 사건도 아니고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고 독재를 꿈꾸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 마땅히 탄핵하고 처벌해야 민주주의 아닌가?

그럼에도 태극기 군중은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고 법원의 체포영장도 무시하며 내란수괴를 지키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일부는 야당 대표가 내란범이라고 주장한다. 적반하장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저런 논리와 반전이 어떻게 가능할까?

-핵심은 거짓말이다. 같은 사건에 상반된 두 주장이라면 둘 중 하나는 분명 거짓을 외치고 있다. 거짓은 현란하다. 거짓이기에 어떤 색깔도 입힐 수 있고 수시로 바꿀 수 있다. 거짓말에서 맥락이나 일관성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거짓은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며 솔깃하다. 다수가 집요하게 거짓을 반복하고 두껍게 쌓인 거짓 앞에서 사람들은 '설마 전부 거짓일 수 있을까' 혼미해지고 잠깐 방심하면 수렁에 빠지고 만다. 그들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조직적인 거짓의 힘이다. 끈적한 마력이다. 그럴듯하게 꾸미고 상황과 상대에 맞춘 사기꾼의 말에 한번 넘어가면 돌이키기 어렵다. 한편 거짓이 더 빠르고 확산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거짓으로 판명될지라도 당장은 그 사람들을 휘감고 이른 봄 들불처럼 세를 확장한다. "진실이 신발끈을 매고 있을 때 거짓은 지구 반바퀴를 돈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거짓 선전 선동과 권모술수를 경계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산당이 거진 선전 선동과 권모술수에 능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거짓이나 협잡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본래의 공산주의는 이제 사라졌지만 아직도 독재 정권이나 극우집단 그리고 사이비 종교에서 거짓 선전 선동이나 권모술수는 활발하게 차용되는 주요 전략이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사회적 불안과 분노를 조선인 탓으로 돌려 조선인 수천명을 무차별 학살한 일본 우익의 협잡과 광기는 참담한 역사적 사례다. 이 시대에도 빈부격차와 실직 실업과 같은 사회 불만이나 분노를 선전 선동과 권모술수로 교묘하게 누군가에게 돌리고 불만을 가진 집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한다. 무능하고 정치를 못해서 혹은 경제 불황으로 실업자가 늘었는데 그 화살을 특정 집단, 이민자, 혹은 다른 나라 탓으로 돌리고 그 불만과 분노를 표로 연결하는 극우 정치인, 정당, 정권의 사례는 다양하다. 지역감정도 그 연장선이고 '이대남' 같은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혹되지 말고 깨어서 분열과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의 술수와 본질을 봐야한다.


-그렇다면 광화문의 두 군중, 누가 거짓인가? 동일한 사안에 상반된 주장을 하는 광화문의 두 군을 다시 본다. 누가 거짓이고 어느 주장이 거짓말일까? 자명하다. 12.3 그 밤에 뜬 눈으로 지켜본 사람이나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다 안다.


수많은 국민이 두눈으로 본 명백한 사안을 뒤집으려 하기에 광화문에서 난무하는 거짓말은 집요하고 조직적이고 교묘하다. 언어도 생경하고 폭력적이다. 재료가 좋지 않을 때 더 맵고 달고 짠 양념을 듬뿍치는 것처럼, 거친 욕설과 자극적인 노래 그리고 얼토당토 않은 주장으로 사람을 현혹시킨다. 국내 문제인 계엄과 내란에서 시선을 국외로 돌려 물타기 하려는지 중국과 미국을 엵어 청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스토리를 구성하고, 성조기 만으로는 부족한지 미국 국가를 떼창한다. 기괴한 풍경에 기시감이 스멀댄다. 자극적인 가사와 공격적인 리듬의 배신자라는 노래는 극단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그때 거친 목소리가 4.19 혁명을 설명하더니 돌연 자신들이 이 시대 4.19라고 주장한다. 자랑스러운 4.19 민주혁명과 12.3 계엄. 독재 내란 옹호세력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도대체 말이 안되고 밑도 끝도 없는데 군중의 엄청한 박수와 환호에 묻혀 지나간다. 그냥 아무말 대잔치다. 그 군중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려움이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멀쩡해 보이는 그 사람들의 생각없음이 두렵다. 2,400여 년 전 쏘크라테스를 죽이고 2,000여 년 전 예수를 사형에 처하고 100여 년 전 일본에서 수천명 조선인을 학살한 군중이 저와 같지 않았을까?

-하나의 군중에는 몇 개의 층이 있다. 편의상 핵심세력(A) 동조세력(B) 그리고 주변세력(C)으로 보면 거짓의 원천은 핵심세력 A다. 거기에 극우 유튜버와 극우세력이 있다. 그들은 극우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포하며 수익을 취하는 핵심이다. 눈길을 끌고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더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고 그럴듯한 거짓 데이터와 거짓 스토리를 구성한다. 선거 부정을 입증한다는 그들의 그래프를 보면 일견 그럴듯한데 세세히보면 허구다. 검증 안된 주장과 거짓으로 야기하는 분열과 혐오 그리고 분노는 그들의 달콤한 먹거리다. 조회수에 따라 수익도 늘고 별도 후원금도 두둑이 받으며 광고도 유치하니 집요하고 더욱 치열하다.

A가 가장 문제이지만 구조상 더욱 안타까운 것은 B다. A의 그물망에 걸려 적극 동조하고 그 내용을 끝없이 퍼 나르며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고 확산한다. 어둠의 여왕벌 A를 받들며 자기의 시간과 돈을 지불하는 맹목적인 일벌이다. 거대한 거짓 세계에서 아이콘이고 우상인 A의 수익을 챙겨주며 광적인 행동대장으로 헌신하는 B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A는 열정적으로 B는 헌신적으로 사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한다.

세번째 C는 B가 퍼 나르는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일부 동조한다. 어정쩡한 상태일 수 있지만 언제라도 B로 바뀔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들이 광장에 몇 번 나오면 C에서 B로 승급(?)하리라. C 역시 조회수를 늘려주며 A의 수익에 일조하지만 B만큼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는 않는다. 아직 심각하게 중독된 것은 아니기에 C와는 어느정도 대화가 가능하겠지만 A나 B는 이미 상식적인 대화나 토론 상대가 아니다.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광화문 광장은 A가 후원금도 챙기고 B와 C를 확보하고 저변을 늘리는 황금 어장이다. 계엄이나 대통령 탄핵 같은 이슈는 그들에게 절호의 기회다. 자신들의 현란한 거짓 주장을 팔며 세를 확장하고 돈을 버는 극우세력이 활개치는 화려한 무대다. 상식적으로 판단하고 살기가 쉽지 않은 시대다.


나는 지금 어떤 세계를 사는가? 인식이나 판단 기준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면 직접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아도 다양한 매체의 정보를 가능한 균형있게 보라고 조심스레 권한다. 정치적인 주장은 더욱 그렇다. 언론이란 사명감이나 공적인 개념이 부족한 개인 정치 유튜버 특히 극우 유튜버에게 100% 의존하는 것은 비정상과 비상식의 세계를 사는 지름길이다. 내 생각의 힘이나 균형감각은 빠르게 퇴화하는 반면 주장은 더없이 완고하고 강해진다. 사고가 획일화 하고 주장이 강해지니 스스로 똑똑해졌다고 착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극우 유튜브에 탐닉한 결과는 안타깝기만한 단세포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대표적인 한 사례가 윤석열 아닐까?


한편. 극우 유튜버나 모교회 목사와 같은 극우세력이 과연 윤석열을 위하고 옹호하는가? 그들의 권력자 옹호는 기실 옹호가 아니며 밑바탕에는 탐욕이 도사린 비열한 이용일 수 있다. 선거에서는 일부 도움일지 모르지만 이후에는 바로 독배가 된다. 듣기 좋은 말이나 거짓으로 옹호하는 자는 상대를 눈 멀게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사욕을 취한다. 충신은 거슬리는 말을 한다. 정말 권력자를 위하는 사람은 맹목적인 아부나 옹호를 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자 그들은 이미 간신이다. 수천년 인류 역사와 무수한 사례에서 검증된 사실이 아닌가?


-시대의 숙제, 균형있는 정보의 능동적 활용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도 분열을 획책하며 사욕을 추구하는 사람은 있다. 앞서 말한 핵심 세력인데 그들의 사욕을 인지하고 스스로 상황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대중의 힘이 필요하다. 나의 사고는 획일화 되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유연해지고 있는가? 극단적으로 치닫는가 균형을 추구하는가? 가끔씩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할 때다. 그런 건강한 인식과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날 때 핵심세력은 그 세를 키워갈 수 없다. 스스로 고사할 것이다.


광화문의 두 군중, 통합적으로 보면 대단한 에너지다. 유쾌하게 저항하는 촛불 시민의 경쾌한 열정, 선한 눈빛들이다. 격한 말로 거침없이 행동하는 태극기 군중의 거친 열정, 강한 눈빛들이다. 우리 안에 저런 에너지가 있어 세계가 선망하는 민주화와 산업화 그리고 K문화를 동시에 이루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구나 우리 나라를 사랑한다. 분명한 것은 그 애국의 중심이 국민이어야하지 국민을 억압하고 독재를 꿈꾸는 무능한 한 권력자일 수는 없다. 그것이 상식적이고 균형있는 시각이 아닌가?

언론의 자유가 거짓의 자유일 수는 없다. 거짓에 저항하고 균형 있는 정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할 때 지금은 전혀 다른 두 에너지도 조금씩 같은 방향을 향해 모아지리라. 질문하고 찾아야한다.수동적 편식은 아니다. 시대의 숙제다.


2025년 1월 11일 토요일 오후 4시..

이 산은

*광화문 광장, 안중근 서화 전시회가 있는 역사 박물관 계단에서 생각을 정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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