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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팜비치 Apr 26. 2019

4월의 노동일지

일과 삶의 균형잡기

월요일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버스정류장 VMD에 숨이 막힌다. 메일로만 보던 ㅇㅇ역 쉘터가 여기였나 보다. 사진을 찍어 파트 단톡 방에 올리자, 후배도 주말 새 다녀온 백화점 VMD가 변경되었다며 사진을 공유해준다. “근데 옥외 와이드 이번 달부터 다 교체하기로 하지 않았어? 왜 아직도 지난달 게 걸려있어?” 잠시 정적이 흐른다. 교체되었어야 할 VMD는 내 담당이다. 사진을 올린 후배는 “확인해보겠습니다” 라며 빠르게 대답해준다.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받기도 전에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지난 삼 주간은 정말 감전된 것 같이 바빴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한 일주일간 막차시간에 맞춰 퇴근했을 때는 허허 웃었다. 뭐 바쁘긴 한데 그래도 일은 나름 재밌기도 해~. 이주 차, 나는 분명 내 인생의 90%를 일에 바치고 있는 것 같은데 계속해서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점심에 사람과 얼굴 마주하고 밥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점심이면 잠깐 눈을 붙이거나 자리에서 대충 식사를 때우기 바쁘다. 처음 맡는 큰 프로젝트에 긴박한 일정이니, 계속해서 미스가 난다. 답답한 사수의 채근에 머리가 아파오지만 잠시 바람을 쐐러 나가는 것은 사치, 바쁜 벌꿀은 슬퍼할 틈이 없다. 대행사에서, 매체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내 피드백을 기다리고 있다. 저릿한 머리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검토 안을 보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계속 놓치는 부분이 생기니 눈앞이 캄캄하다.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하란 말인가. 일과 삶을 분리하고자 주말에 일하지 않은 것이 욕심이었을까? 뻐근해진 뒷목을 주물러본다. 하루키의 소설처럼 스스로를 태엽으로 움직이는 기계라 생각해본다. 태엽을 다시 감을 새도 없이 다른 일이 들이닥친다. 


얼어붙은 경기에 상사들이 받는 압박은 강해졌고, 압박은 그대로 나의 업무강도가 된다. 조무래기라고만 생각한 내 연차가 어느새 허리이자 막내 역할들을 곳곳에서 담당하고 있다. 철옹성 같던 나의 워라밸은 무너진 지 오래. 주윗사람들을 만나면 힘든 소리만 흘러나온다. 나름 멘탈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고통은 말이 아닌 신음으로 터져 나오는 것인지 숨기기가 힘이 든다. 자꾸 앓는 소리를 해대는 내가 싫어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친구들은 어떻게 처음부터 잘하냐며 너는 잘하고 있는 거라고 다독이지만, 부정확한 위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법. 내가 놓치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처음이라고 스스로에게 관대하기에는 업무의 호흡이 빠르다.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멈춰버린 시계를 한 이주간 차고다니던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1L짜리 쓰레기봉투를 샀다. 시체도 들어갈만한 크기다. 몇 주간 집에 널브러져 있던 나의 변사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넣는다. 온갖 레토르트 식품들과 음료수병, 기억 못 할 영수증들, 찌그러진 맥주캔, 집에 가서 보겠다고 뽑아온 보고서까지. 쓰레기봉투가 채워져 갈수록 바닥이 비워진다. 


일요일 아침, 충동적으로 학교를 찾았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학교로 걸어가며, 6여 년의 시간을 보냈던 익숙했던 공간이 불현듯 작게 느껴진다. 수업에 늦을까 정신없이 뛰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천천히 걸었다. 정문에는 벚나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학생 시절 내내 시험기간이면 이곳에 피는 꽃을 보며 언제쯤 여유롭게 꽃놀이를 가볼까 했는데, 사회인이 되어 고작 찾아온 꽃놀이 장소가 이 곳이라니. 꽃나무 아래는 한 여성이 아기 귓속에 뭐라 속삭이고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일까, 미소 지으며 지나친다. 봄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교정에는 따듯한 4월의 햇살이 가득하다. 햇살이 메우는 곳마다 20대 초반의 내 모습들이 차오른다. 조별과제를 하던 나,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던 나, 자소서를 쓰던 나.. 한없이 불안하면서도 이름 모를 미래에 설레 하던 그 시절. 그때의 수많던 고민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4월의 햇살만이 괜찮다,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 하다. 해는 뉘엿뉘엿 져가는데 학교 밖을 나서며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길이 어쩐지 아까보다 따듯하다.


일이 항상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팅으로 애먹이던 광고가 처음으로 유튜브에 실리고 높은 조횟수와 댓글을 기록했을 때는 댓글 읽는 재미에 밤을 새웠다. 나름 중학생 때의 꿈이 아니었나. 이 맛에 그렇게 바쁜 스케줄도 견디는구나 싶다가도, 다음날 출근길부터 퇴근시간까지 수 없이 다시 무너져 내릴 때는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 혼자 하는 야근이라면 스스로의 열정이라 치부할 텐데,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밤 10시 11시까지 남아있는 게 더 소름이 돋는다. (저게 내 미래인가!) 일을 좋아하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저 정도일까? 때 아닌 애정 테스트가 시작된다. 그러나 불같은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나와 일과의 관계는 조정이 필요하다. 애정을 유지하기 위한 거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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