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은내몫
요즘 한창 눈물의 여왕을 재미있게 보는 중이다.
뻔한 재벌과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남녀만 바꿔놨는데 꽤 보는 맛이 있다.
아직 초반부인지라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은 결국 결혼과 결혼생활의 위기와 극복인 듯하다.
좋아하는 여자(김지원)가 입는 트위드 재킷은 할머니 가디건, 빈티지 티셔츠는 구멍 뚫린 낡은 티셔츠, 그 옷을 입고 있는 재벌 3세는 곧 잘릴 인턴으로 보고 자꾸 생각나서 결혼하고 싶다는 아들(김수현)에게 엄마는
"죽을 거 같으면 결혼해야지"
라고 하며 응원해 준다.
그리고 몇 년 뒤 이혼하겠다고 집에 찾아온 아들에게 엄마는 또 한 번
"같이 사는 게 죽을 거 같으면 이혼해야지"
라고 한다.
어쩜 이혼을 결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할 뿐 이유는 그다지 많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같이 사는 게 죽을 거 같으면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가끔 와이프랑 각자의 X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정확하게는 예전 사람에 대한 이야기보단 그 당시 각자의 생각 정도를 공유하곤 한다. 두어 번 왜 이혼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신기하게도 겹쳤다.
난 당시 일을 많이, 열심히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쭉 가정을 위해 그렇게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여느 집과 다름없이 엄마의 손에 크게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람 역시 회사에는 크게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나, 부모, 직장 모든 것에 대한 존중은 늘 찾아볼 수 없어서 이혼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쉽사리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내 옆에서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있는 와이프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 아이가 이 사람처럼 자란다면?
그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배우자야 처음부터 나와는 다르게 커온 사람이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니 내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라도 참고살 수 있겠지만, 내 아이가 저 사람과 같은 철학과 생각을 가지고 자라고 어른이 되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식을 키우는 것도 어려웠다. 전문직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유명한 대기업에서 적지 않은 수입을 벌던 나에게 "꼴랑 그거 벌려고 그렇게 일하나" 를 시전하던 사람과 살면서 돈 안 벌고 육아만 하면 어떤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할지 끔찍했다.
이혼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는 이유 중 아마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식이다. 그렇게 자식을 위해 많은 부분을 참고 견디면서 긴 세월을 살아낸 결과가 저 사람, 그리고 저 사람을 키워낸 또 다른 두 어른들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내 자식이라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답은 결국 둘 중 하나였다. 아이도 없이 하루하루 죽을 것처럼 살던가, 이혼을 하던가.
이 쯤되니 결정은 쉬웠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따져야 될 것들이 많겠지만, 굳이 한 가지 답을 내놓는다면,
현재의 지옥을 남은 인생동안 단 한 가지를 보며 참고 살 수 있는다면 조금 더 고민해야겠지만,
그 단 한 가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미래의 아이까지 끌어다 써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마 새로 출발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드라마에서 내가 부모님께 들었던 말도 복붙 한 듯이 나오기도 한다.
아들이 이혼을 안 한다고 하는 소식에
(같이) 안 산다고 해도 걱정, 산다고 해도 걱정. 제발 잘 살거라.
아마 작가는 준비과정에 이혼하는 커플은 물론 그 부모들의 인터뷰도 했었나 보다.
해본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부모 걱정해서 이혼을 망설이지는 마시길. 제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즐기던 우리 부모님도 이혼은 아무말 없이 응원하시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