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적 May 26. 2020

이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았을 테다

독립작가의 나른한 일상

아는 분이 돌아가셨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이해가 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인가?’하고 잘 받아들여지지를 않았다. 틈틈이 SNS를 통해 그의 부고 소식을 접했지만, 그럴 때마다 여전히 나는 앞 문장의 사고를 반복했다.

정말인가?

이상하다.

첫날은 그렇게 보냈다.

그분의 발인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그분의 장례식이 서울 여의도에서 치러지고 있었고, 나는 차를 타고 두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다. 부고 소식을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씁쓸했다. 마지막 가는 길 인사라도 나눴다면 이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았을 테다.

사실 나는 그와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그저 비즈니스적인 관계였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업무 메일만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래도 언젠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그는 나에게 먼저 알은척 인사를 해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영영 오지 않게 됐다. 고작 이것뿐인 관계다. 그래서 내가 생각보다 깊은 슬픔과 충격을 안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칠까, 실제로 친분을 나눴던 사람들이 알면 ‘네가 뭔데’라는 말을 들을까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그저 혼자서. 작업실에서. 틈틈이 그분을 생각하며 코를 훌쩍이다가, 평범하게 일을 했고, 또 문득 그가 생각나면 휴지를 뽑아 눈가를 닦았다. 이상하게도 슬픔은 나아지질 않고 점점 더 심해졌다. 나중에는 뭔가 가슴이 너무 갑갑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또 그것은 분노로 바뀌기도 했다. 어째서? 라면서 화가 났다. 치고받는 내 감정들 때문에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아른거렸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고,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다시 눈을 뜨기에는 너무 피곤했고 졸렸다. 12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쉬는 날 일찍 일어난 건 오랜만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틈틈이 그에 대해서 생각했던 날이 많았다. 이번 달에도 업무와 관련함과 동시에 아주 삿된 감정으로 몇 번인가 그를 떠올렸었다.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동안 혼자서 수 없이 그를 떠올렸던 것만큼 내 슬픔의 무게가 비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부러워했던 적도 있다. 그분의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나도 그의 책이 좋았고, 얼마 전에는 출판사에서 책도 나왔다. 그는 작가로서, 그림 작가로서, 예술가로서 아주 멋지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누군가 찍어준 그녀의 사진 속 웃는 표정은 봄 햇살처럼 따뜻하고 화사했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그가 숨기고 있던 고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아름답고 따뜻했다. 더는 그의 글과 그림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고, 화나게 했다.


책장에 꽂혀 있는 그의 책을 먼 곳에서 바라본다. 그곳에서는 부디 그가 바라는 대로, 외롭지 않기를 바라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휴일 하루 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