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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Aug 07. 2022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스물여섯 번째 기록

이따금 인스타그램에서 친구의 근황을 확인하게 될 때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내가 그리던 삶을 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인 걸까. 예열 따위 필요 없는 질투심은 별안간 끓는점에 도달해 보글보글 기포를 내뿜고, 그러면 나는 커다란 한숨으로나마 마음의 온도를 낮추려 애를 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핸드폰 액정 위를 바삐 미끄러지는 엄지손가락만큼이나 쉬이 가라앉지 않는 질투심. 이윽고 깨닫는다. 어쩌면 부러운 게 아니라 부끄럽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이 증상 - 일명 <심쿵병>이라 부르겠다 - 이 발병한 건 제법 오래전 이야기다. 고입에 실패하고 집 근처 일반고를 진학하게 되면서부터였으니 햇수로는 벌써 8년째라 할 수 있겠구나. 원하던 고등학교에 입학한 친구들은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꿈에 그리던 교복을 입고 동경하던 교정을 누빌 수 있었으니까. 그들과 달리 나는 성에 차지 않는 교복을 입고 중학교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의 고등학교에 다녔다. 엄마에게 낙심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어 "일반고 가서 내신 잘 받으면 돼. 오히려 잘 된 거야."라고 애써 무심한 척해왔었는데. 특목고를 준비하던 유망주에서 일반고에 다니는 낙오자로 내려앉은 사실을 그때는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같이 고입을 준비했고 끝내 합격한 친구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찍은 사진이 그의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되었을 때. 처음으로 심쿵병을 겪었다. 심장이 쿵- 하고 한번 내려앉고는 추진력을 얻어 빠른 속도로 쿵쿵쿵. 끓어오르는 질투심에 몸에서는 열이 나고 머리는 이성적 사고를 차단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엄지손가락과 두 눈은 신체에 계속해서 자극을 가한다. 못내 핸드폰 화면을 꺼버리자 미련한 나의 얼굴이 비치고. 푸른 하늘 아래 미소 짓고 있는 친구의 사진과 까만 액정 속 무표정한 내가 대조됨을 느끼면, 이내 한숨을 푹- 내쉰다. 이렇게 해야 질투로 가득 찬 마음을 환기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공부에 전념한다며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했던 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소셜 미디어가 방해했던 건 사실 학업이 아닌 정신건강이었으니 말이다. 친구들의 소식을 차단하자 심쿵병의 빈도도 잦아들었다. 그래도 공통의 친구나 엄마에게서 전해 듣는 건 어쩔 방도가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사람이 충격 한번 안 받고 살겠어, 태연히 받아들이면서도 대학만큼은 꼭 원하는 곳으로 가고 말겠다는 욕망이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대입마저 멋지게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주위 친구들의 합격 소식에 잦은 심쿵병으로 멘탈이 너덜해질 무렵, 나는 패잔병마냥 재수학원으로 끌려가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비록 원하는 학교에는 붙지 못했지만 그저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 그땐 분명 이제 더 부러워 말자 다짐했건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보다. 올해로 대학교 3학년. 다시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나를 부끄러워하며 여전히 심쿵병을 앓고 있는 중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사람>일 수 있을까


알콩달콩한 연애를 시작했거나.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거나. 겉모습을 멋지게 가꾸었거나. 지금의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들이 심쿵병을 유발한다. 쿵-. 쿵쿵쿵. 화면을 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이나 보던 내 모습이 보잘것없이 느껴지면 푹-.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할 일을 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결국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 법 아닐까. 수년째 애정하는 책의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 이 글을 맺는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_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해지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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