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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Oct 25. 2023

이대호 형님, 끝나지 않은 도전 늘 응원합니다.


 대호 형님, 안녕하십니까? 형님을 늘 좋아했고 존경한 팬입니다. 막상 이렇게 편지를 쓰려고 하니 부끄럽군요.     


 2023년 8월 8일 새벽, 저는 잠들지 못했습니다. 형님 때문입니다. 갑자기 무슨 뜬금포 같은 소리냐고 하시겠죠? 7일 월요일에 방영된 예능 [최강야구] 때문입니다. 그날은 홈런을 4개 치셨습니다. 그냥 홈런이 아닙니다. 4번 연속 홈런. 이게 말이 됩니까? KBO 역사상에서도 4연타석 홈런은 3명이라고 합니다. 박경완, 나바로, 로사리오. 그중에서도 당일 한 경기에서의 4연타석 홈런은 박경완, 로사리오 두 분입니다. 와. [최강야구]에서 세운 기록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소름 돋았습니다. 은퇴하셨던 형님이 여전하구나. 역시 이대호는 죽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에 흥분이 몰려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출처, 스포츠조선


 은퇴해도 클래스가 다른 형님의 현역 시절 활약이 문뜩 되새겨보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많더라고요. 그래서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KBO 리그 유일한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으로 세계 최초 신기록 달성, 두 번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
(트리플 크라운 : 한 시즌 동안 투수가 방어율ㆍ다승ㆍ탈삼진, 타자가 타율ㆍ홈런ㆍ타점의 주요 3개 부문을 동시 석권하는 것)

국가대표로서 타점 1위, OPS 1위, 홈런 2위, 안타 3위.
(OPS : 출루율 + 장타율)

일본 프로야구 진출 후 두 번의 베스트나인과 타점왕 타이틀,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시리즈 MVP 달성.

메이저리그 진출 후엔 두 자릿수 홈런 기록하여 한미일 리그에서 모두 활약한 한국인 최초 타자. 

22년 프로 생활 동안 2,895안타 달성.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은퇴 당시의 성적이 더 놀랍습니다.     


142경기 540타수 179안타 23홈런 101타점

타율 0.331 출루율 0.379 장타율 0.502 OPS 0.881

sWAR 3.63(팀 내 1위) wRC+ 146.2.
(WAR : 대체 가능한 2군 선수에 비해 팀에 기여한 승리 정도)
(wRC+ : 조점 득점 창출력, 타격만을 반영하는 지수)     

그리고 골든글러브 수상.
WRC+ 기준 / 은퇴 직전에 GREAT였다는 건 대단한거다 / 출처, 네이버 블로그, 야알못 삼팬의 야구 이야기

   


 은퇴를 앞뒀던 사람의 성적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1년이 지났지만, 형님이 은퇴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솔직히 믿기 힘듭니다. 여전히. 프로 생활부터 또 다른 야구의 세계에서도 활약하는 현재까지! 끊임없이 치고 달리는 형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늘 벅차오르고, 감동입니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형님의 모습들이 마냥 그렇지 않았다는 걸,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야구에서도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야구를 하다 보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동작이 실제 몸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애써 어떤 동작을 익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폼으로 돌아가 있거나 아예 폼이 변형되어버리는 일도 많다. 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온 동작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기본기’다.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형님은 객관적으로 병살타가 많은 타자죠. 하지만 기본기를 늘 다지면서 타점을 늘려가 ‘영양가 없는 타자’라는 평가에서 ‘발은 느리지만 점수를 많이 내는 타자’로 자신의 가치를 높여갔습니다. 그 와중에 힘든 순간이 많으셨을 겁니다.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고쳐가는 과정 중,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을 테니까요. 노력의 문제인지, 방향 자체의 문제인지 고민하던 때도 마주했을 겁니다. 방향을 바꾸고 싶은 순간에도 참으며 우직하게 나아갔고, 그랬기에 지금의 업적을 세울 수 있었던 거죠. 기본기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참 어려운 건데, 형님을 보니,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분야에서나 기본이라는 걸 또 한 번 제 가슴속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내가 감히 이승엽 선배의 명언에 조금 덧붙인다면,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진정한 노력이란 성과를 만들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출처, OSEN


이렇게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한 일등 공신은 2008년에 부임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이었다. 감독님은 너무 오랫동안 하위권에 머무르면서 우리 선수들에게 스며들었던 열등감과 소극적인 생각들을 먼저 털어내려고 했다. 그리고 한 경기의 승패나 한 타석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소신껏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펼칠 수 있도록 장려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두려워 말라, No Fear"가 감독님이 내건 슬로건이었다. 그 말처럼 슬금슬금 더그아웃의 눈치를 보며 감독의 지시를 따르려는 소극적인 선수가 아닌 결과에 상관없이 각자의 판단대로 과감하게 플레이하는 선수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내주시곤 했다.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이대호 선수를 비롯하여 황재균, 강민호, 손아섭, 김주찬, 전준우 선수 등. 보기만 해도 즐거웠던 로이스터 감독님의 롯데 자이언츠 말입니다. 그때 “No Fear” 정신과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장착하게 되었다고 하셨죠.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때의 롯데는 말 그대로, 일단 부딪히고 보는 팀이었죠.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던 그 롯데가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그때만큼 야구가 재밌었던 시기가 있었을까요?


 거기다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후회를 겪고 싶지 않아 도전을 선택한 형님! 형님이 일본, 메이저리그 진출하여 보여준 모습들을 통해 자연스레 알 수 있었습니다. 목표를 위해 악착같이 달려가는 형님의 진정성을 말입니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어느 유명한 만화 속 대사를 떠올렸다.
“여보게. 자네는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출처, 스포츠서울


 일본과 미국에서의 선수 생활 덕분에 형님이 더 성숙해지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로 야구에 대한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엄격함과 절실함이 결코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에서 형님이 한층 더 커 보였습니다. 더 멋진 선수로 보여서 그런 걸까요?     


그동안 나는 프로 선수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대단했다. 어릴 때부터 내게 박혀 있던 성공에 대한 절실함도 한몫했다. 그런 마음으로 노력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오래가는 선수가 되려면 야구를 진심으로 즐기고, 좋아해야 한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성적에 대한 압박,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늘 내게도, 다른 선수들에게도 엄격한 사람이었다.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에서 경험한 야구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엄격함’과 ‘절실함’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면 워낙 선수층이 두꺼운 일본과 미국에서는 1군 리그에 올라오기까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고, 1군에 올라와서도 계속 성적으로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당연히 선수들의 절실함은 우리나라 선수들과 비교할 것이 못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야구를 진심으로 좋아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훈련을 게을리 하거나 경기에 설렁설렁 임하는 것도 아니었다. 경기에서는 무섭게 집중력을 발휘했고,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던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런 선수들이 모여 있다 보니 팀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한번 해 보자”,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잘하는 팀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런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감사함과 함께 내가 경험한 이 야구를 나의 고향, 부산에 있는 나의 가족 같은 동료들도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못내 밀려오던 날들이었다.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후 형님은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을 더 많이 고려하는 이가 되셨죠.     


 긴장하고 위축된 선수는 절대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고, 창의적으로 플레이하지 못하는 선수는 결코 일정한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애초에 야구는 놀이다. 한 팀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돕고 의지하지 않으면 긴 시간을 치르며 마주하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없다. 야구는 아주 미묘하게 구성된 분업의 경기이며, 무엇보다도 팀 스포츠이다. 늘 전쟁을 치르듯 엄숙하게 경기에 임했던 한국을 벗어나 마치 장난치듯 연습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일본과 미국 선수들에게서 배운 야구 철학이었다.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출처, mydaily

   

 무엇보다도, 어떤 분야든 결코 혼자서 모든 걸 이룰 수 없다는 걸 형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초등학교 야구부에 추천한 추신수 선수, 그 추천을 무시하지 않았던 감독님,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지해 준 할머니, 삼촌, 고모님들, 늘 대호 형님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때로는 욕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야구를 늘 사랑하는 이들 등. 그 모든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대호 형님이 있다는 걸, 그렇기에 저 역시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내 주위 사람들을 늘 존중하고 아껴야겠다는 사실을 되새겨봤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연락 한 번 돌리면서 안부 여쭤봤습니다. 앞으론 더 잘 챙겨야겠네요.     


돌아보면 야구 선수가 되기까지 수많은 우연과 호의가 있었다. 우연히 내가 입학한 학교에 야구부가 없었다면, 신수가 우리 학교 같은 반으로 전학 오지 않았다면, 신수가 나에 대해 감독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면, 감독님이 야구부에 들어오도록 권하지 않으셨다면, 할머니가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단박에 내치고 삼촌과 고모들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삼촌과 고모들이 조금씩이나마 힘을 보태주고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야구 선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우연과 많은 사람의 호의, 도움과 희생이 겹치고 겹친 끝에 야구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감히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꾸지 못했던 가난한 아이 이대호가 작은 용기로 그 손을 잡았다. 이 순간이 내 30년 야구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그 연쇄적인 우연의 고리 맨 앞에 전학생 추신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도 처음으로 이대호를 야구 선수로 ‘지명’한 사람은 추신수였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어쨌든 나는 그 일 이후 좀 더 독한 마음으로 야구를 대하게 되었다. 회비도 내지 않는 내가 팀에 도움도 되지 않으면 회비를 대신 내주시는 분들이나 나를 믿어주시는 감독님을 뵐 낯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해서 팀에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 다른 친구들과 부모님들께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생각은 곧 내게 ‘절실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누군가는 주어진 환경에 낙담하고 쓰러지지만 누군가는 그 환경을 거름으로 삼아 새로운 싹을 틔워낸다. 고된 일상이 역설적으로 나를 더 일으켜 세웠다. 주어진 조건이 나를 짓밟으려 할수록 나는 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실력으로 나를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버텨온 경험들이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야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일 것이다. 나이는 어렸지만 프로 못지않은 절실함으로 오직 훈련에만 매달렸던 조숙하고 서글픈 중학교 시절이었다.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열정적이다 못해 뜨겁기까지 한 부산의 수많은 팬이 모여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는 사직 야구장. 그곳에서 야구공을 잡고 치고 때리고 달리며 22년 넘게 프로 생활을 해온 대호 형. 울고 웃으며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던 그곳에서 나와 예능 [최강야구]을 비롯해 다양한 방송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형의 모습을 볼 때마다 팬으로서 늘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형에게 말하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형이 은퇴하시는 시즌에 롯데 자이언츠 홈 경기장인 사직 야구장에 의료 지원 3번 정도 갔습니다. 솔직히, 형님을 가까이서 볼 때마다 좀 무서웠습니다. 한동희 선수보다 머리 한 개 정도 더 큰 형의 덩치에, 거기다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아우라에, 저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그런 제가 형에게 사인 요청을 드렸을 때 웃으면서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형의 팬 서비스 덕분에, 형의 오래된 팬으로서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지금까지 쭉 말이죠.


  

 대호 형, 형의 끝나지 않은 도전 늘 응원하며, 저의 글은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SPOTV NEWS


참고자료       

1)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950790

2) https://blog.naver.com/jjiniayo/223224759007

3) https://namu.wiki/w/%EC%9D%B4%EB%8C%80%ED%98%B8

4) 책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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