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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Mar 02. 2020

혼자 카약 타며 노래 불러봤나요

시애틀 레이크 유니언에서

가스웍스 공원 Gas work Park 앞 레이크 유니언 lake union-
 카야킹하는 사람들이 눈길을 끈다


시애틀 2주 차- 포틀랜드에서 다녀온 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수요일, 오전 오후 미팅 사이에 2시간이 비어서 일행들과 함께 근처의 가스 웍스 공원에 갔다. 전날엔 미국에 온 뒤 가장 아파서 저녁부터 시름시름 앓았는데, 이 날 날씨가 정말 좋았던 데다 탁 트인 언덕과 저 멀리 보이는 시애틀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을 보니 몸과 마음이 절로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스 웍스 공원 앞에는 레이크 유니언이 있다. 전주 덕 투어 때 배 타고 지나가며 감탄했던 곳이다. 유니온 레이크에는 요트, 보트, 수상 비행기 등이 오갔다. 그런데 내 눈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카약. 어디서 왔는지 카약을 탄 사람들이 노를 저으며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와, 세상 자유로워 보였다. 나도 타고 싶다. 혼자 카약을 타고 노래를 부르며 다니면 정말 재밌지 않을까 (한 달이 되가니 이제 생각이 자유의 끝을 달린다). 어차피 시애틀은 9시나 되야 해가 지니까 오후 미팅 끝나고 저녁에 타볼까 하고 있는데, 일행이 말린다. 본인이 다른 데서 타봤는데 옷이 다 젖었다고 말이다. 다른 날 타야 하나, 우선은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물을 이렇게 좋아하는 내가, 카약을 쉽게 잊을 리가 없지. 미팅 끝나고 일행들은 호텔로 돌아가고 나는 프레몬트 지역을 돌아볼까 싶어 잠시 카페에서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이 날씨에 카약을 타면 너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카약 타고 호텔로 돌아갈 거잖아? 옷 젖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아니면 날이 좋아서 마르겠지? 이렇게 합리화를 시작했다는 건 무슨 이유가 있든 결국 하게 된다는 말이다. 혼자 타는 건 위험하려나 1초 정도 생각했지만 이내 잊었다. 네이버에 시애틀 카약이라고 검색했는데 후기가 잘 안 나온다. 구글맵을 열고 내가 있는 곳 기준으로, 유니온 레이크 근방에 보트 렌털 샵이 있는지 샅샅이 뒤졌다. 바로 건너편에 모스 베이라는 보트 렌털 샵이란 곳이 있었다. 구글 후기도 보고 홈페이지도 가보니 혼자 타는 것도 할만해 보였다. 그곳을 찍고 달려갔다.



시애틀 레이크 유니언/ 카약 렌트: Moss Bay


레이크유니언의 보트 렌탈샵- Moss bay
카약보트 대여하는 Moss Bay 지도/위치 ​


싱글 카약은 1시간에 18불이었다. 바로 계산하지 않고, 신분증 맡겨놓고 카약을 타고 돌아온 뒤 시간 계산해서 지불하는 방식이다


예전에 카약을 타보긴 했지만 사실 꽤 오래전 일이고, 혼자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미리 보고 간 Moss bay 사이트에서는 No experienced 라고 쓰여있긴 했는데 어디서 처음 타는 사람에겐 카약 렌탈을 안 해준다는 글도 본 데다가, 너무 타고는 싶고, 또 한편으론 혼자서 타는 게 갑자기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직원에게 온갖 엄살을 떨었다. 그랬더니 립서비스인지 stable 한 카약으로 주겠다고 자기 설명 잘 들으면 될 거라고 용기를 주었다. 실제로 정말 친절했다.

레이크 유니언 카약 렌탈- 모스베이
레이크유니언 카약 렌탈- 이 곳에 짐을 맡겨놓을 수 있다. 신발을 여기다 두고 맨발로 가서 탔다. 맨발로 돌아다니는걸로도 자유인느낌



이제 갑판으로 가서 구명조끼를 입고,
마지막으로 주의사항 듣고 카약을 배정받아 카야킹 시작-

후!!!!


시애틀 레이크유니언에서 혼자서 카약타기 -




내 생각보다 물살이 많이 셌지만 혼자 노 저으며 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물살 때문에 잠깐 방심하면 주욱- 쓸려갔지만 그럼 다시 노를 저으면 되었다. 레이크 유니언은 이름만 호수이지 실제론 바다고, 대형 화물선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을 정도로 정!말 넓다.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 주인공이 살던 물 위의 집도 여기다) 그 바다 위를 나 혼자 노를 저으며 둥가 둥가 떠다닌다니, 혼자 놀기의 끝판왕 아닌가. 처음엔 신나는 걸그룹 노래를 틀었다가 재즈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여름 재즈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떠다녔다. 노를 저으며 문득 뒤를 돌아보면 시애틀 다운타운 스카이라인이 빛났다. 완벽한 자유인이었다. 사실 카약 타기를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는 선크림을 안 가지고 나온 거였는데, 지금 팔 좀 타는 게 대수인가. 이렇게 재밌는데!!!!! 게다가 노를 미친 듯이 저으며 다니지 않는 이상 옷이 젖을 일도 없었다. 내가 꿈꾸던 대로 벅차도록 신났다.


역시나 레이크 유니언에서 바라보는 시애틀 도심 풍경/ 가스 웍스 공원 풍경/ 오로라 브릿지/ 프리몬트 지역은 정말 멋졌다. 잊을 수가 없다. 세상 자유 다 안고 가네.




사실 나는 이 바다에서 혼자 있다가 빠져도 아무도 나를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내가 빠지는 걸 누군가 볼 수 있도록  누군가를 - 카약하는 사람이나 요트를 옆에 두었다.하하
요트를 타고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패들보트타는 사람들


원래는 레이크 유니언 한가운데에서 노를 "내려놓고" 노래를 들으며 떠다니는 계획이었으나 아무리 시애틀에 9시까지 해가 떠있다고 하더라도 6시가 가까워오니 바람이 점점 거세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음악 찾거나 사진 찍으려고 잠깐 한눈 팔면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있거나 어딘가로 떠내려가 있었다. 게다가 노를 놓고 있으면 거센 물살이 그대로 느껴져서 생각지 못한 멀미 기운까지 - 떠내려가는 건 둘째치고 멀미 때문에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노를 젓게 된 이상 가스 웍스 공원까지 가보자! 하고 대차게 물살을 저으며 나갔다. 마치 훈련하는 것 같은 속도였다 (착각?!). 하지만 가스 웍스 공원에 거의 다 왔는데 점점 팔도 아프고 바람이 더 거세지는 느낌이 드는 것. 나는 혼자 왔으니 오늘의 모험은 여기까지.

가스웍스 공원이 지척에
돌아가는 길, 반짝이는 바다



카약을 타기 시작한 시간은 4시 30분, 돌아오니 6시가 훌쩍 넘었다. 나의 신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서 카약 반납하면서 직원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너무 재밌었는데 혼자 와서 사진 한 장이 없어 너무 아쉽다고 하니, 난 그저 근방에서 찍어만 줘도 땡큐였는데 근처에서 요리조리 찍더니만 저~ 기 멀리 가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어보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또 열심히 가는 나. 이 모습까지 찍어준 직원


짠?



몇 미터 나가서 포즈를 잡으니 더 멀리 가야 규모가 나온다고 뒤로 가라고



그렇게 뒤로 뒤로 가서



이런 멋진 사진을 찍었습니다.

선물이 있다고 하더니... 나중에 사진첩을 확인해보니 본인들 셀카까지 한 장 남겼다






어느새 한 달의 시간이 지나 돌아가는 날이 다가온다.
즐거운 하루들이 그만큼 쌓였다.



+ 이틀 뒤, 시애틀 떠나기 하루 전 날 아침, 가스 웍스 공원에 앉아 시애틀에서 무엇을 하고 가야 아쉽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다시금 카약 행렬에 혼을 빼앗겨 또 카약을 타러 갔다. 찾아보니 렌털 샵이 하나 더 있었다. 지난번보다는 가스 웍스 공원에서 가까운 곳이라, 카약을 받자마자 노를 마구 휘저어 가스 웍스 공원으로 왔다 (소원 성취)! 이번엔 만반의 준비 (과자와 음료수)까지 하고 와서 바다 한가운데서 냠냠 먹었다. 추억을 더하고 건강해 보이는 (까만) 팔을 덤으로 얻었.



가스웍스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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