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프릴 Jan 21. 2021

실마리와 실타래

고등학교 때 선풍적인 인기 프로는 뭐니 뭐니 해도 도전 골든벨이었다. 전국 각지의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그 학교 학생들 100명과 함께 일종의 서바이벌 퀴즈쇼를 하는데 50번 문제를 풀면 골든벨을 울리는 것이다. 당시 프로 인기가 무척 높아서 골든벨을 울리면 그 학교는 경사가 나고 개인의 경사이고 뭐 그랬었다. 중간중간 학교 동아리 공연이나 학교 명사의 공연도 하니 축제 버금간다. 찾아보니 2000년부터 얼마 전까지 약 20년간 방송이 되었다 한다. (코로나로 멈춘 것뿐 폐지는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드디어 우리 학교에도 도전 골든벨이 왔다. 골든벨 촬영을 하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학교가 들썩였다. 피디와 작가들이 왔다는 소문이 돌자 선생님 아이들 할 것 없이 수업시간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1년 전에 날림으로라도 강당을 지어놨기 때문에 방송을 찍을 수 있게 된 거 아니겠냐고 누군가 말했는데 그 말에 또 누구는 추석 연휴 지나고 와보니 없던 강당이 운동장에 떡하니 세워져 있었던 건데 방송 찍는 중에 무너지면 어떡하냐고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탠거긴 하지만 날림으로 지어진 건 사실이었다). 댄스 동아리 친구들은 프로그램 중간에 공연할 곡을 밤새 연습하기 시작했다. 트로트를 걸쭉하게 뽑아내던 옆 반 친구도 오디션을 거쳐 단독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고 1 학급당 3명 고 3 학급당 2명 그리고 고 2는 학급당 5명씩 총 100명을 추리기로 했는데, 당시 어쩌다 보니 우리 반 (잡학) 상식 대장이 되어있던 나도 친구들 추천으로 그 100명에 낄 수 있었다. 방송일까지 약 한 달간 매주 피디와 작가를 만나 미팅 같은 것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피디님 모습에 나도 방송국에서 나중에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 해볼 정도였다. 피디님께서 신문과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라고 해서 매일 저녁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드디어 방송일이 되었다. 점심을 일찍 먹고 12시쯤 전교생이 강당에 모였다. 가운데에 100명의 자리가 있고 다른 학생들은 그 주위를 뱅 둘러앉거나 2층 관중석으로 갔다. 처음 보는 지미집 카메라 여러 대, 수많은 방송국 사람들, 친절하고 웃겼던 남자 아나운서와 예쁘고 쌀쌀맞던 여자 아나운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얼굴이 뻣뻣해진 교장선생님과 그 뒤에서 나부끼는 급조된 플래카드들까지 한껏 들뜬 공기에 강당이 후끈거렸다. 생소했고 떨렸고 흥분되고 또 떨렸다. 심장이 뛰쳐나갈 것 같았다. 미리 배당받은 90번으로 가보니 끝 번이라 바로 앞에 눈동자까지 선명하게 찍을 법한 거리에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었고 카메라 뒤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응원석이 있었다. 유일하게 익숙한 건 내 바로 뒤에 앉은 반 친구, 100번 친구였다. 뜨거운 조명 아래 녹화가 시작되었다. 한 시간의 방송을 위해 무려 8시간 동안 녹화가 진행되었다.

그날 촬영이 어땠는지 구체적인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딱 2가지는 아주 선명히 기억난다. 첫 번째, 문제 8번 정도에서 정답이 어사 박문수인 게 있었다. 나는 아주 당당히 박'명'수라고 적었다. (박명수는 그때도 나름 인기 있던 개그맨이었다) 근데 옆 응원석에서 웅성대더니 누가 나를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야! 야! 박명수가 아니라 박문수라고!" 써놓은 내 대답이 너무 웃기고 창피한데 얼굴 바로 앞에 카메라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이를 악물고 태연한 척을 했다. 두 번째, 박문수를 무사히 넘긴 뒤 나는 쭉 살아남아 35번까지 갔다. 나까지 7명이 남아 있었다. 35번 문제는 '일이나 사건을 풀어갈 첫머리'를 쓰는 거였다. 예시로 '문제의 ○○○을 잡다'가 나왔다. 머릿속 어디에선가 실타래라는 단어가 볼록 튀어나왔는데 그 후 실타래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답이 아닌 것 같은데 머리가 실타래처럼 얽혀 실타래로 쓸 수밖에 없었다. 정답은 실타래가 아니라 실마리. 아나운서가 득달같이 달려와 떨어지는 소감을 물었고 티브이에서 본 것처럼 생뚱맞게 친구들아 고마워 따위의 대답을 했다. 덕분에 나는 평생 동안 실마리와 실타래의 뜻을 아주 정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아주 쓸모없지만 재밌는 능력을 얻었다.


3주 뒤 방송일, 박문수와 실타래를 쓸 때 모두 카메라가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방송에 내가 나오는 건지 걱정되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으면서도 또 안 나왔으면 좋겠는 혼돈의 마음이었다. 박명수를 박문수로 지우는 것 자체는 웃긴데 그걸 응원석에서 가르쳐 준 것을 들키면 창피할 것 같았다. 35번에서 탈락할 때 인터뷰한 것 까진 좋은데 너무 굳은 표정으로 상투적인 말이나 한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안 나오면 어떡하지 나오면 어떡하지 방방 댔는데, 1시간 동안 문제 푸는 모습은 스쳐가며 여러 번 나왔지만 박명수 쓰는 장면은 안 나왔고 탈락되는 장면은 아예 편집되었다. 편집되고 나니 왠지 서운했다. 34번까지는 있었는데 37번에서 갑자기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 뒤로 쭉쭉 편집되어 3학년 선배가 울린 골든벨에 맞춰 터진 화려한 축포, 그 아래로 우리들이 뛰쳐나가는 모습으로 방송이 끝났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꽤 오랫동안 친구들과 화면발이 어쨌니 역시 텔레비전은 뚱뚱하게 나오니 하는 등의 얘기를 했다. 거의 학년 마칠 때까지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도전 골든벨 촬영 후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 학교에서 골든벨 울렸던 선배는 그 해 수능 시험을 망해 재수하러 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다음 해에도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둬 본인 실력보다 낮은 대학을 갔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골든벨 이야기를 나눌 일이 없으니 대부분 까먹고 산다. 그러다 오늘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뉴스에서 " @@@ 성분이 암 치료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는 문구를 읽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실타래와 실마리의 뜻을 구분해보며 잠시 십수 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당장 무너질 것 같았는데 여전히 건재한 강당을 떠올리고 조명 아래 심장이 쿵쾅대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시대 주말 지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