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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Apr 05. 2021

시절인연 벚꽃인연

지난 주말 대학 동기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큰 일이나 급한 할 말이 있어 연락한 건 아니고
말 그대로 갑자기 내가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한다.
2년 만의 연락이었다.
금방 보자 보자 했는데 정신없는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친구는 올해 아이를 초등입학시켰고 휴직은 하지 않았고
버틸 수 있는 대로 버틸 예정이라는 근황을 전했다
우리 또래 애 엄마들의 흔한 고민을 주고받다가
옛날 얘기로 술렁술렁 넘어갔다가
우리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놀랍다는 이야기를
줄줄이 이어나갔다

사람이 사는 것이 참 별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공간에서 오래 다른 시간을 보낸 친구와의 대화가
어쩜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과의 대화와 다를게 없을까

직장에 다니며 일, 육아, 교육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넘쳐흐르는 시간 속에 내 자신을 우겨넣느라
이전의 모습은 지우개로 지운 듯 조금씩 옅어지는데
어릴 적 나를 기억하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추억하니
내가 조금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맞다 나 그랬었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
난 변한게 하나도 없구나 아니네 이건 좀 달라졌네
지나온 모습을 하나씩 꺼내보게 되었다.

그 친구와 한창 톡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갑자기 문자가 왔다.

"우리 곧 마흔이여~~~ "

갑자기?? ㅋㅋㅋㅋ

너무 임팩트 있는 한 문장에 완전히 웃음이 빵 터졌다
무려 1년 만에 보낸 문자가 저거였다


한 친구는 아~ 젊은 시절이여~ 이러고 있고
또 다른 오랜 친구는 우리 이제 늙었어~~
너무 웃겼다


겨울의 찬기가 남아있던 긴장된 마음이
예년보다 일찍 핀 꽃 덕분에
예상치 못한 시기에 스르르 녹아버리는 바람에
다들 옛 생각에, 감상에 빠진 모양이었다

친구들과 근황을 이야기하다보니.
학교 다닐 때 누군가 DSLR을 챙겨와서
함께 운동장에 있던 커다란 벚꽃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그 때 찍은 사진은 어디로 갔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심지어 운동장은 없어지고 그 자리엔 으리으리한 건물이 들어선게 벌써 10년인데
사진 속 내 포즈, 내 옷, 친구들 옷, 포즈 하나하나
어제 찍은 사진 마냥 뚜렷히 기억난다

내 기대와 전혀 다른 누군가의 행동에 종종 상처받고
그 때만 좋은 시절인연의 인간관계에 회의감도 느끼고
누군가에겐 내 자신을 증명해내면서
내 모습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쉽게 잊고
조금씩 얼굴 위에 얇은 천 한겹 두겹 두르며 살다가
내 어릴 적 내 진짜 모습을 기억하는
애써 증명해낼 필요가 없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곡해하지 않고
나도 애써 저의를 해석할 필요가 없는 대화를 하다보니
옛날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구나
어릴 적 친구가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이 진짜구나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나중에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함께 있다면
추억을 나누며 잠시나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진짜구나 싶었다

가만 보니, 지금 내게도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도,
지금 한 때만 같이 보내고 말 시절인연이 아니라
단순히 겉핥기 대화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진짜 친구로 오래도록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같이 회사에 들어온 같은 팀이었던 동기
성인이 다 되어 들어간 성가대에서 만난 친구
우리팀 후배로 들어왔던 동갑내기 친구
20대 후반부터 30살 후반인 지금까지
매일 헛발질하다가 되게 열심히 살다가 멍청해졌다가
또 잘 살았다가 헤맸다가 하는 지금의 나를
가감없이 기억해 줄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 부쩍 인간관계에 회의가 들던 참이었는데
존재 만으로 위로 받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었고
그래서 좋았다

그러고 보니 자주 못 보는 친구의 연랃을 받을 때면
금방 감상에 빠지게 되는건지
작년 이 쯤에도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받고
비슷한 글을 썼더랬다

벌써부터 추억이나 곱씹을 나이는 아니지만
밤의 어둠도 감추지 못할 벚꽃잎 만개한 봄날에
하루 쯤 옛날로 돌아가 보는 것도
꽤 그럴듯한 봄바람 봄밤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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