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16)_『키오스크』
“갑자기 올가의 세상이 뒤집혔어요!”
세상이 뒤집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절망, 좌절, 그리고 소멸. 끝나버리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올가는 자기의 세상이라고 여겼던 ‘키오스크’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움직인다.
『키오스크』(아네테 멜레세 글·그림, 김서정 옮김, 미래아이) 주인공 올가는 길거리에 있는 소형 매점 ‘키오스크’에서 온종일을 지낸다. 올가는 늘 친절하다. 손님들이 담배연기를 내뿜어도 그러려니 생각하고, 긴 하소연도 열심히 들어준다. 올가에게 ‘키오스크’는 ‘일상’이고 ‘인생’이다.
사실, 올가에게는 꿈이 있다. ‘석양이 황홀한 바다’에 가보는 것.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기 일상이자 인생인 키오스크에 꽉 끼어 나올 수 없는 몸. 그래도 올가는 친절히 손님을 맞이하는 일을 하고 여전히 바다를 꿈꾼다.
어느 날, 과자를 훔치는 소년들을 잡으려던 올가는 키오스크와 함께 쓰러지고 만다. 세상이 쓰러진 것. 그렇게 모든 게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올가는 키오스크를 붙잡고 일어선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게 된다. 자기가 키오스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걸. 키오스크를 움직일 수 있게 된 올가는 다리를 건너다 강물에 빠지게 된다. 자기 자리를 떠난 올가에게 다시 시련이 생겼구나, 생각하는 순간, 올가는 편안해진다. 강물에 몸을 맡기고 비로소 제대로 누워서 쉰다. 그리고 자기가 꿈꾸던 바다에 도착한다.
올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간 그림책이니 마지막 장면은 남겨두기로 한다. 단지 ‘다른 올가가 되었다’ 고만해두자.
어쩌면, 지금 내가 사는 세상도 ‘올가의 키오스크’는 아닐까 생각한다. 먹고 자고 일한다. 지금 하는 일이 나의 미래와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라 여긴다. 힘들어도 참는다. ‘내일을 위한 오늘의 희생’은 어쩌면 당연한 거니까.
‘어떤 미래를 꿈꾸냐?’ 누가 물으면 잠깐 고개를 갸웃한다. 하고 싶은 건 많다. 작은 오두막집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싶기도 하고, 더 늦기 전에 악기 하나를 제대로 연주하고 싶기도 하다. 실컷 책을 읽고 쓰는 삶도 소망한다. 그런 꿈 하나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쁘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참는다.
스스로 ‘키오스크’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몸을 불린다. 그 안에 끼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게 내 세상이 된다.
철학자 들뢰즈는 말한다. ‘지금의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리셋하라’고. 들뢰즈는 ‘아장스망’이라는 개념을 들어 이를 설명한다. 아장스망은 ‘배치’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리셋’은 재배치를 말한다. 지금의 나는 이미 여러 사회적 관계와 환경 속에 존재하고 있다.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모든 것을 없애고 다른 내가 되는 ‘창조’는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생성’은 가능하다. 생성은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다. 나의 삶을 재배치하기 위해서는 ‘포기’가 필요하다. 어떤 것을 버리고 얻을 것인가. 쉽지 않다. 결국 내가 사는 키오스크를 뒤집어야 한다. 그래야 꿈에 그리던 노을 지는 바다에 갈 수 있다. 거기서도 키오스크 안의 삶은 이어질 테지만, ‘다른 나’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나 스스로 키오스크를 뒤집을 수도, 움직일 수도 있을 테니.
‘갑자기 세상이 뒤집혔어요!’
괜찮다. 이제 시작이다.
※일러두기 : 여기서 말하는 ‘키오스크’는 요즘 흔히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무인결제 단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형 정자를 일컫는 말로 길거리의 간이 가판대나 소형 매점을 뜻한다.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