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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어교사 고선생 Oct 29. 2021

조모를 만나고 온 늦은 저녁

할머니를 뵙고 왔다

10일만에 아버지 댁에 다녀온 것 같다.

토요일 오후에 고구마를 가지고 가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그 때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서울나들이를 간 상황이었기에 시간이 될 때에 들르겠다고 하고는 결국 수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찾아갈 수 있었다.

머리가 모조리 하얀 나의 아버지, 이제는 할머니를 모시고 단 두 분이 살아가신다.

 그냥 갈 수 없어서 집 근처의 연선흠 베이커리에서 만쥬, 황남빵, 쿠키를 사서 들렀다. 딸과 아들이 생각나서 레몬마들렌도 구입했다. 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내 아이들....

 아버지가 사시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를 통과해서 비번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거실은 불이 꺼져 깜깜하고 할머니는 벌써 주무시는 듯 했다. 

 아버지만 안방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며칠은 사용하신 듯한 마스크, 그리고 다 마른 물티슈

 노년이 될수록 더욱 깔끔하셔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보지만 마스크가 아 아깝다고 며칠씩 사용하신다.


 아버지의 친구가 전해주셨다고 고구마와 무를 챙겨주셨다. 많이 챙겨주시고 싶으셨지만 들고가기 무거울까봐 다음에 더 가져가라고 하신다. 어렸을 때는 항상 엄하고 무서웠던 아버지 이제는 내가 어렸을 때에 왜 그렇게 엄하셨는지, 혼내셨는지 농담을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아버지의 늙음은 언제나 서럽다. 본인은 더하시겠지.

 고구마를 받아서 나가면서 할머니 방문을 열어보니 선잠을 드셨던 모양인지 고개를 드신다.

 깨우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과는 다르게 얼굴 뵙고 손을 잡아드리고, 사 온 황남빵을 드실 것인지 여쭤보니 잡수신다고 하신다. 

 그런 반응에 아버지는 불편해하시고 못마땅해 하신다. 현관을 나오면서 "저녁과 간식으로 고구마, 포도 등을 드시고도 저렇게 식탐을 한다"고 표정이 나빠지신다.

 그래도 90대의 조모가 하고 싶은 것, 드시고 싶은 것, 모두 충분히 얻길 바라고 싶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늙으셔서 움직이시는 것도 불편해 하신다.

 얼마나 더 살아계실지, 옛날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면서 자주 뵈었던 증조할머니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만 70세에 돌아가셔서 이제 28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린 돌아가신 조부를 생각해본다. 혼자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신 할머니 잘해 드리지 못하는 내 스스로를 부끄러워 해본다.

  혼자 살겠다고 떠나신 어머니를 미워하는 내 마음을 바라보는 내 아이들의 느낌과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자주 불편함을 표현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마음과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깊어 가는 가을밤이다.

 이제 곧 50의 중년인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만 늘어간다. 

대전 안영동에서 2006년에 찍어 두었던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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