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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까지 하고 왜 제약영업을 해요?

영업하시는 분들과의 술한잔 ▶

1.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박사이후 제약회사 메디컬팀에서 영업부서 이동을 지원한 적이 있다. 

내가 이런계획을 가족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 오픈하였을때, 

모두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왜??" 





박사를 마치고, 메디컬팀에 처음 합류 한 이후, 병원의 교수님을 방문하게 되었던 날, 영업사원의 고객이기도 한 교수님의 학술적 문의에 대해, 알려진 근거와 연구들을 정리하여 지원나간 일이 있었다.  


나로서는 박사학위 시절 많은 의료진들과 공동 연구도 수행해보았고, 논문도 함께 써본 병원의 교수님들을 뵙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는 병원의 교수님 연구실 앞에서 약속시간을 3분 정도를 남겨두고 문 앞에서 대기하자는 영업사원을 보며, 그냥 지금 노크하고 들어가시죠?” 라고 말하자, “아. 아직 3분 남았으니, 약속대로 정시에 들어가는게 좋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하셨다. 


그날 이후, 나에게도 "제약회사" 소속이라는 타이틀이 달린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나도 하나하나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연구자들과의 약속 시간이 되었지만 행여 교수 연구실 문안에서 전화 소리 혹은 다른 손님이 와계시지는 않을까..하는 떨리는 심호흡들이 점점 길어졌던 것 같다. 

 

약속된 만남, 그리고 고객(의료진)의 문의나 연구에 대한 학술적 디스커션을 나누어야 하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누군가의 가장,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내이던 영업사원들과 여러 식사 기회를 가지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또 함께 전략을 논의하거나, 그들에게 다양한 메디컬 교육을 준비하고, 학술적 자문을 줄 수 있던 일들을 함께 해가면서, 영업하시던 분들에 대한 애정이 커져가던 그때, 나는 내가 직접 영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던 것 같다.

 


2. 

회사는 나의 영업부서 이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박사하시고 왜 영업을 하고 싶으세요?”


실제 처방이 이루어지는 임상현장을 접하고, 마케팅팀과 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하면서, “비즈니스, 마케팅과 관련된 일을 정말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전문성들이 비즈니스와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다르게 해볼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영업을 직접 해보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송하지만, 회사의 입장은 박사님이 그냥 메디컬팀에 계시는 것이 올바른 인력배치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사님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일부 담당 병원에만 묶어놓는 것은 서로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3. 

선택에는 귀천이 없다.

학위과정 초기에는 학문의 꿈을 버리고, 중도에 회사 취업을 선택한 이들, 혹은 박사님인데, 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학자의 길도 좋지만, 그 당시 포닥을 하며, 적은 수입과 고용문제,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교수 될 때까지 학계에서 버텨보자"는 의지 하나만으로, 이 모든 것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면서 나는 비로서 스스로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비로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현실적인 문제”에서 시작한 커리어의 전환이었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전적으로 내가 주도하였기 때문에, 한번 커리어의 전환을 이루어 본 나는 “박사까지나 하고 왜 영업을?” 이라는 질문은 이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영업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가치를 탐구하고,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현실에 집중하는 것이 그것보다 열등한 것은 아니다. 학계를 떠나 상품을 개발하는 회사의 엔지니어들도 그 가치가 있으며, 이들이 설령 세일즈 조직에 배치되어 제품을 판촉한다고 해도, 그들의 역할이 열등하다고 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진로 선택의 기로에서 불안감과 혼란을 겪는 것을 본다.

그러다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거나, 아무런 선택을 내리지 않아서, 현재의 그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경우들도 많이 보았다. (어쩌면 머무는 것도 또 다른 선택이었을지도?)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길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집중해보는 것을 권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고. 

내가 바라는 궁극적인 역할과 모습을 명확하게 그려보는 것이다. 

그려진다면, 그 길에서 가장 가까운 역할군들이 무엇인지 공부해보고 조사해야 하며, 

실제 해당 분야의 사람을 Cold call을 통해 만나보기를 권한다. (내가 취업을 준비하며, cold call로 미팅을 요청했 분은, 훗날 이직을 통해 나의 직장상사가 되기도 하였다) 

내가 그 길에서 어떻게 성장해갈 것인지도 그려보아야 한다. 

끝으로 그 과정의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다시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상황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신의 뜻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준비된 선택을 해야하고, 습관화하며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나의 삶을 올바르게 통제하고 이끌 수 있다.

준비된 선택은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귀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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