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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항암제 연구. 그런 표현은 하면 안되는 거예요.

어느 면접관의 조언 ▶




면접관 : "왜 Oncology (종양학) 부서에서 근무를 하시고 싶으신가요?" 


 : "항암제 분야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과학과 기전들이 임상연구의 결과들을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상의사들이 궁금해하는 통찰들을 나눌 수 있는 세밀한 영역이 많은 분야라는 점에서 즐거움과 흥미를 느낍니다."


면접관 : ".. 네, ㅎㅎㅎ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위중한 환자들을 다루는 분야인데, 즐겁다, 재미있다.. 라는 표현은 하면 안되는 거예요."





나의 제약회사 첫 이직 면접은 그렇게 끝이 났다.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에서 궁극적인 종착지는 환자들이다.


누군가는 정말 즐거워서, 누군가는 사명감을 느끼며, 누군가는 학술적 관심으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것이며, 누군가는 돈이 도는 투자 생태계를 위해, 누군가는 주식으로 돈을 벌어보기 위해, 이 산업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나고 흥분되는 토의들은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학위과정과 포닥시절, 파이펫을 잡고, 유전자를 편집한 줄기세포의 분화능 연구와 이를 다양한 질환에 적용해보며, 혜택이 예상되는 질환을 설정해가던 기초 연구 과정들이 즐겁고, 흥분되고, 신나지 않았다면, 절대 10년의 시간을 좁은 세포배양실에서 하루종일 실험하고, 주말과 연휴를 반납해가며 연구를 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약연구와 신약이 처방되는 현장에서  환자를 위해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비장해야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종종 이렇게 "신난다, 놀이터, 재미있다"는 신약연구 관련 기사들을 보면, 그때의 인터뷰가 떠오르곤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고, 누군가는 가족과 지인들을 잃었다. 코로나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해서 그 과정을 즐거웠다, 신났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바이오 헬스케어산업이 환자를 보고 성장한다고 하지만,

환자는 결코 시장이나, 산업을 표현하는 숫자가 아니다. 


너무 이렇게 따지고 들면 일상생활 가능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자.

제약회사건, 병원이건, 의사들이건, 투자자들이건, 혹은 꿈을 먹고 산다는 바이오 주식을 하는 개인 투자자들이건, 환자중심 주의가 슬로건으로 회자되는 오늘날의 제약/바이오 업계에, 우리는 정말 환자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분야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가?





Epilogue.


다른 여러이유가 있었겠지만, 

당시의 첫 이직 인터뷰는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그 면접관이셨던 메디컬 디렉터분은 추후 내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였을때, 2달 후 나의 매니저로 부임하여, 1년 반을 함께 하였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많은 신입사원들을 인터뷰 해볼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종종 처음 이 업계로 처음 들오시는 열정 가득하신 분들을 만나며, 재미있다. 즐겁다는 표현을 종종 듣는다.


물론, 나는 그들의 열정과 일의 의미와 보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때의 면접관처럼 "훈수?"를 두지는 않는다.

(그리고 탈락의 이유도 아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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