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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없이 회사를/주류를/본업을 떠났지만 빛이나는 사람들

학계를 떠난 과학자로서.. ▶


학계를 떠난 과학자로서.. 


내가 교수가 될 수 있었을지? 에 대한 (..없었을 것이다.. ) 가정은 둘째치고,  

석박사+포닥 총 10년의 실험실/연구실 삶을 단호히 떠났던 이유는 

흔히 말하는 이공계 위기, 처우와 안습현실, 기승전치킨....그런 이유는 결코 아니었다.


https://newspeppermint.com/2013/09/23/epfl/


오히려 10년의 한길 커리어를 거치다보니,

"성장"의 관점에서 나의 커리어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박사 후반기, 포닥을 함께 준비하면서 논문을 정리할 무렵,

내가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던 "성장의 근거"는

논문, 실험노트, 작년보다는 더 추가되어 가는 

Figure 1, 2, 3, ...10. Table 1, 2, 3....

언젠가(?)는 활용될 논문의 data들 뿐이라는 것을 보는 순간, 


이러한 것들이 성과일 수는 있겠지만, (보잘 것 없었지만)

성장으로 느껴지지 않기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성과를 곧 성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매년 나의 경험과 수행할 수 있는, 숙달되어가는 실험의 종류는 늘어났지만,

일/하루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을 보며,

단순히 쌓이는 연구의 경험, 혹은 논문들만으로는

더 이상 "성과"이상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수 많은 우여곡절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불확실성들이 나를 지치게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확실성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더 노오오오력을 해야 하고,

같은 길에서 더 많은 data와 논문들과 연구실력을 쌓아야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절망적"이었다. 

(쓸데없는 생각말고 실험이나 잘해!!)



무엇보다

한 분야의 깊이를 계속 더 파고 내려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다채로웠다.




동네 병원의 원장님은 20년째 같은 자리에서 월~토 같은 진료를 한다.

정년이 따로 없는 전문직이니, 1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연구실 교수님의 방에는 10년전 같은 공간, 같은 위치의 교수님 사진이 있었고,

아마 10년 후에도 (연구는 좀 더 진행되었겠지만) 같은 학교, 연구실에 계실 것이다.


사람마다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 곳에서 한 분야로 한 평생을 보내는 것은 나와 맞지 않았다.

(10년이나 같은 연구실에서 학위하고 연구하고 논문을 써왔는데!!!)


이런 고민을 나눌때면,

몇 년 동안, 인고의 시간으로써 조금씩 나아가는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존버?)

학위과정의 본질이고, 미덕처럼 이야기 되었지만,


나는 무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이 길에 휩쓸리는 기분이 들었다.

(선택하지 않으면, 그냥 그 길에서 그대로 흘러간다)



그러자, 흔한 바이오 이공계생들의 커리어가 아닌 곳에서

나는 좀 더 확장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요즘은 이런걸 커리어 피버팅..이라고 HR 업계에서 포장(?) 해주어서 감사할 따름)



연구실에서 마지막 2~3년은 

논문보다는 다른 직업군을 기웃거렸고,

해당 업계분들에게 콜드콜을 요청하여 업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면식도 없던 나에게, 출장에서 돌아오시는 날 기꺼이 시간을 내어 조언을 해주셨던 분 중에는 

향후 우연히! 같은 회사에서 나의 매니저로 다시 만나기도 하였고,

또 다른 분은 VC업계의 장단점을 가감없이 보여주셨으며, 지금도 여전히 멋진 활약을 하시고 있다.




나이나 세대별로 특성을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진 않겠지만,

확실히 요즘 20대, 30대 초반의 팀원들은 

팀원이 더 이상 회사에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때,


(특히, 그 팀원이 인재라면)

그 팀원은 회사를 미련없이 떠난다. (이직)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무수히 검색되는 특히 MZ들에게 "성장"의 중요성




요즘 기업의 인재 리더쉽은 갈 수록, 직원들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회사가 성장하면 개인도 성장한다는 시대가 아닌, 

개인이 성장해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4개의 외국계 회사들은)



이러한 기조들이 학계에서 학위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 혹은 젊은 연구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대에 

본질적으로 고된 길일 수 있는 학문의 길, 학계, 교수직이라는 

자리를 바라보는 "어떤" 20, 30대, (혹은 시니어일지더라도) 그들은 


과감하게 

교수자리 줘도 안할 건데요? 하는 패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교수, 공무원, 혹은 한자리에서 오랜 시간동안 진료해오신 원장님들을

"성장" 마인드셋이 없다고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한, 요즘은 대학에서도 제자들을 실질적인 "성장"으로 이끄는

소위 "리더쉽" 있는 교수님들도 많이 나타나고 계신다.


나의 학위시절, 당시 대학원에서는

성장을 시켜주는 "리더쉽" 이라는 것을 느끼고 배우기에는 

너무 Academic 하기만 했던 것이 좀 아쉬울뿐.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주류(연구직, 혹은 교수?)를 벗어나 

연구하지 않는 Ph.D의 길에서 파이펫을 놓고,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3499


학계를 떠나는 과학자들 기사를 보면서, 

또, 산업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멋진 리더 (연구자, 과학자).

리더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역할을 하고 성장하는 젊은 연구자들을 만나면, 


내가 할 걱정은 아니겠지만..


대학만이 과학자나 연구자들의 이상적인  커리어 트렉라는 전제는 

이제 사라지는 시대가 와야 하지 않을까.



회사에서 나를 처음 팀원으로 채용을 해주신 매니져의 커리어를 보며,

왜 학계에서 교수직을 수행하지 않으셨는지 물었더니, 

그 분은 웃으며 짧게 말했다.


"글쎼요. 주류에 남지 않았으니.. 저는 그냥 루저예요"


이 분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MD)하여, 펠로우를 마치고,

포항공대에서 전일제 Ph.D까지 마치신 뒤, 

노벨상 수상 출신의 유명 Big guy 랩에서 포닥(Post-Doc)으로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이셨다.


주류에 남지 않았다고  (혹은 못했다고, 탈출 했다고, 이탈했다고, 혹은 뒤쳐졌다고) 루저는 아닐 것이다.

그분이 빛이 났던 이유는 

화려한 스펙 때문이 아니라,

실제 회사에서 보여주신 "리더쉽" 때문이었다.


전문적 지식이 많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팀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고, 경험할 수 있도록 위임하되,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지고, 모든 공은 팀원에게 돌려주시며

가감없는 피드백으로 코칭과 멘토링과 티칭이라는 카드들을 적절히 활용하시던 분이셨다.


화려한 스펙을 바탕으로 "교수" 혹은 "의사"의 길을 가실 수도 있었겠지만, 

주류가 아닌 곳에서 그분은 또 다른 가치를 실현하고 있었다.

(사실, 교수는 박사학위자들의 커리어로써 주류라고 볼순 없겠다.. 교수가 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니)


그분의 가치는 

업계내에서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내고, 

그 때의 팀원들이 (나를 포함하여) 

오늘날 다른 회사에서 수직성장을 하고, 대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어떠한 성장을 하고있고, 어디 까지 성장할 수 있으며,

크든 작든, 내가 어떠한 가치를 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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