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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Jan 05. 2021

거꾸로 가는 도시 여행기

겨울, 서울.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그것이 주는 스트레스도 있어서, 여행이란 하면 좋지만 안해도 그만인 어떤 것, 그 정도였다. 여행예능이 트렌드가 되고 페친들(인스타가 주름잡기 전)의 피드에 해외여행 사진이 도배가 되던 중에도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여행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떠나겠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던 탓이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어디든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그 덕에 바다 건너 많은 곳을 여행했다. 결혼을 준비 중이던 때부터 세어보니 지난 7년 간 발도장을 찍은 도시가 예순 곳이다. 지난 한 해는 비행기를 못 탔으니 6년 간 60개의 도시, 매년 열 개의 도시를 발 밑에 두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여행은 아내의 들썩거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영화의 배경이어서, 예능에서 본 풍경이 아름다워서, 해외 출장의 주말 일정이 비어서... 떠나야 할 이유는 많았고 세상은 넓었다.

여름, 피렌체

 그렇게 떠다니면서도 그 순간들을 붙잡아 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행은 언젠가 끝나고 또 다른 여행이 다가오니까. 찍고 적어서 다듬어 놓지 않아도 금세 다른 도시에 서 있곤 했으니까.


 여행없는 한 해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아쉬워진다. 거기서 무얼 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사진 속 나는 왜 그렇게 웃고 있는지. 기억은 가물거리고 감정은 희미하다. 가만히 되짚어보면 참 즐거웠던 시간들, 아름다웠던 풍경, 맛있는 음식들, 이었는데 그것을 되새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시간을 거슬러 가장 가까운 기억부터 되짚어 깃발을 꽂으면, 움푹 패인 땅 주변에 흘러간 나의 공간들이 모여 고여들지 않을까. 기억이란 우습게도 제멋대로여서 그 때의 진실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알게 뭐야, 추억은 어차피 내 껀데.


 한 주에 하나씩, 내가 지나온 도시들을 기록해보기로 한다. 60여 개 도시를 매주 적어내다 보면 내년 봄이 될 것이고, 그때 쯤이면 다시 바다를 건널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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