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서울.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그것이 주는 스트레스도 있어서, 여행이란 하면 좋지만 안해도 그만인 어떤 것, 그 정도였다. 여행예능이 트렌드가 되고 페친들(인스타가 주름잡기 전)의 피드에 해외여행 사진이 도배가 되던 중에도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여행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떠나겠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던 탓이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어디든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그 덕에 바다 건너 많은 곳을 여행했다. 결혼을 준비 중이던 때부터 세어보니 지난 7년 간 발도장을 찍은 도시가 예순 곳이다. 지난 한 해는 비행기를 못 탔으니 6년 간 60개의 도시, 매년 열 개의 도시를 발 밑에 두었던 셈이다. 대부분의 여행은 아내의 들썩거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영화의 배경이어서, 예능에서 본 풍경이 아름다워서, 해외 출장의 주말 일정이 비어서... 떠나야 할 이유는 많았고 세상은 넓었다.
그렇게 떠다니면서도 그 순간들을 붙잡아 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행은 언젠가 끝나고 또 다른 여행이 다가오니까. 찍고 적어서 다듬어 놓지 않아도 금세 다른 도시에 서 있곤 했으니까.
여행없는 한 해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아쉬워진다. 거기서 무얼 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사진 속 나는 왜 그렇게 웃고 있는지. 기억은 가물거리고 감정은 희미하다. 가만히 되짚어보면 참 즐거웠던 시간들, 아름다웠던 풍경, 맛있는 음식들, 이었는데 그것을 되새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시간을 거슬러 가장 가까운 기억부터 되짚어 깃발을 꽂으면, 움푹 패인 땅 주변에 흘러간 나의 공간들이 모여 고여들지 않을까. 기억이란 우습게도 제멋대로여서 그 때의 진실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알게 뭐야, 추억은 어차피 내 껀데.
한 주에 하나씩, 내가 지나온 도시들을 기록해보기로 한다. 60여 개 도시를 매주 적어내다 보면 내년 봄이 될 것이고, 그때 쯤이면 다시 바다를 건널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