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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Jan 21. 2021

양곤, 낡은 도심과 황금탑

여름, 미얀마 양곤

양곤, 도심의 대로

 미얀마를 떠나오기 전에는, 그곳을 이토록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태국과 베트남 근처 어디쯤. 과거 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나라라는 것 외에는 딱히 아는 바도 없던 곳이다. 


 이 곳을 여행지로 택한 건 아내였다. 태국과 베트남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일본과 대만은 너무 가까워서, 필리핀은 심심치 않게 총기사고가 발생하고 있어서. 하나씩 걸러내다 보니 미얀마가 삐죽 튀어나왔다. 지금까지의 어떤 여행지보다도 저렴한 물가는 '결정에 있어서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양곤은 첫인상부터 좋았다. 미얀마 여행의 처음과 끝이 양곤이었는데, 첫날 도심 여행에서부터 오래된 중심 도시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바둑판 형태로 구축된 도심 지역에는 한 세기가 넘은 오래된 건물들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검게 그을려 있었다. 

양곤, 도심의 골목길

 그래서인지 양곤 도심의 골목길은 홍콩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4~5층 정도의 건물에 작은 창문들이 빼곡하다. 회색 건물의 벽에는 빗자국이 진하게 새겨져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 곳에 떵, 하고 들어선 게 아님을 알려준다. 길은 좁고, 건물은 낡았고, 사람은 많지만 질서정연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거리엔 버려진 휴지조각 하나 없고 차들이 많아도 혼란스럽지는 않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풍경이 좋았다. 도시 중앙에 위치한 곧게 뻗은 대로의 뒤편에, 차 한대 정도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길 양 옆으로 네모난 창문들이 줄줄이 늘어선 모습이. 하얗거나 반짝이지는 않지만 모진 세월에도 부서지지 않고 버텨온, 도시의 곤함이 먹먹히 스며 있는 검은 가장자리가 좋았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양곤의 낡은 도심과 잘 어울렸다. 그레이톤의 필터가 거리 전체를 덮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부심없이 눈에 담겼다. 회색 하늘이 그대로 땅에 내려왔는데, 그 사이에 알록달록 사람들이 솟아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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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짚어보니 미얀마 이전에 불교국가를 여행한 적은 없었다. 일본의 여러곳을 여행하는 동안 사찰과 신사를 많이 들렀지만, 사실 일본은 '신토'라는 일본 고유의 종교가 삶 속에 스며 있어 불교 국가로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대표적 불교 국가인 태국 여행이 휴양지를 들르는데 그쳤기에, 사실상 불교국가를 여행하는 것은 미얀마가 처음이었다.

양곤, 쉐다곤 파고다


 화려함, 거대함, 웅장함. 중국이나 미국같은 큰 나라에서나 기대할 법한 단어들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 크고, 빛나는 쉐다곤 파고다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산 속 깊은 곳에 보일락말락 작은 절을 짓고 참선에 몰두하는 한국 불교의 소박함과는 거리가 먼, 물리적 규모로 성스러움을 창조해내는 성베드로성당의 그것과 같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산 정상 중앙에 위치한 황금탑의 크기 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64개의 작은 불탑들, 그 주위에 펼쳐진 72개 불탑들 다채로움도 쉐다곤 파고다의 아름다움에 기여한다.


 중앙탑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론지를 입은 남자들과 승려들, 백팩을 멘 여자아이들 무리가 조잘거리며 지나간다. 잠깐 비가 내리다 그쳤는데, 날이 더우니 금방 마른다. 화강암과 대리석이 깔린 바닥은 모두가 맨발로 다니니 쉬이 더러워지지 않는다.


 양곤의 낡은 도심과 쉐다곤 파고다의 황금탑은 언뜻 잘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다. 하지만 도시 전체로 보면 오히려 균형이 맞는다. 시끌벅적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도심과 조용하고 반짝이는 사원. 역설적이면서도 상충되는 둘은 양곤을 매력있는 도시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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