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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랑 Dec 05. 2019

'뜻과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생각이 어떤 결실을 보려면 행동이 필요합니다.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생각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옮긴다고 원하는 결과를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되기도 하지요. 어떨 때는 오히려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말합니다. “참, 뜻대로 안된다. 하는 일마다 안된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그 말을 입에 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뜻’이란 무엇일까요? 이루고자 하는 목표일 것입니다. 도달하고 싶은 경지일 것입니다. 간절하게 품은 소망일 것입니다. 그런데 ‘뜻’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방향을 잘 못 잡았거나, 도리에 어긋나거나, 선한 것이 아니거나. 뜻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과도한 욕심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정말 ‘뜻’대로 안되는 것이 맞을까요? 열심히 살아왔던 시간, 그냥 흘려보낸 시간, 관심 없었던 시간, 우리가 흔히 과거라고 부르는 그쪽을 한번 돌아볼까요? 정말 우리 마음속에 그 불편함과 허망함과 좌절감을 맛보게 한 원인이 ‘뜻’이 맞나요? 혹시 ‘뜻’이 아니라, ‘때’였던 것은 아닐까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하는 일마다 잘 풀렸던 것이 ‘때’가 맞았던 것 아닐까요? 하는 일마다 엉망이 되었던 것이, ‘때’가 맞지 않아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시간을 곱씹어 보세요.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먼저 가겠다고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고, 많이 갖겠다고 옆은 보지 않고 정신없이 주워 담고. 아마도 그렇게 ‘뜻’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진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도 일 초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때’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그’ 때를 지나가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머리에 담은 생각이, 마음에 품은 뜻이 되어, 어느 때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 정녕 아무도 알 수 없지요.


생각을 이루려면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것도 행동입니다.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해야 할 때와 말하지 말아야 할 때. 가야 할 때와 돌아와야 할 때. 그런 때를 분별하며, 기다리고, 행동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 지혜를 갖추려면 교만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리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지식이 ‘전지(全知)’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 ‘전능(全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잠잠한 가운데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 2시에 해가 안 뜬다고, 불평하고 좌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여름 폭염 속에서 계곡에 얼음이 얼지 않는다고, 세상 탓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시간이라는 삶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그런 ‘때’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지천입니다.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때가 있나니,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_전도서 3:1-9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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