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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Mar 15. 2020

글은 결국 마음을 담으니까...

글에 대한 생각

“으… 저 사람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잠시 앓는 소리를 했다. 어느 수필집을 읽으며 여러 번 멈칫, 머리가 지끈, 힘겨웠다. 내용도 알차고 짧은 글이었지만 결국 책을 접었다. 웬만해서는 책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나이기에 남편이 의아해하며 내용이 별로인지 물었다.

“아니. 저자가 똑똑한 것 같아. 유익한 부분도 꽤 있고. 그런데 나를 함부로 대하는 기분이 드네..”



책이나 SNS 글을 읽으면 글쓴이를 직접 만난 기분이 자주 든다. 그의 마음이 글을 통해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면 상대가 말하는 내용뿐 아니라 그의 눈빛, 말투, 제스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아우라까지 함께 나에게 흡수된다. 글이라고 크게 다를까? 문체, 형식, 표현력,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글이 된다. 나는 귀로만 듣고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고 읽으며 그에게 반응하게 된다.



SNS의 어느 글을 읽는 나. 남편은 이때의 내가 정말 진지해 보인다고 했다.



같은 내용을 담은듯한 두 글을 읽더라도 하나를 읽으면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위로를 받고, 다른 글을 읽으면서는 경직되고 상처 받기도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 좋은 사람이 되어보리라 다짐하게 만드는 글이 있는가 하면 바로 등을 돌리게 되는 글도 있다. 물론, 읽는 이의 태도와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빛을 발하기도 하는 것이 글이지만은, 읽는 이의 모자람을 탓하는 저자보다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게 나누고자 하는 이의 글을 나는 선택할 것 같다.



예전에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낯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글 쓰는 순간의 내 마음이 너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으스대고 싶은 마음. 남을 탓하고 싶은 마음. 상대방의 논리를 굴복시키고 싶은 마음. 가지각색의 부끄러움이 글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의 나라고 이런 마음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이때도 지금도, 나는 이따금씩 으스대고 싶어 진다. 하지만 또 어느 순간 겸손함의 시간이 찾아온다. 사려 깊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칠 때도 있다. 내가 심하게 변덕스러운 것일까? 인간은 본래 모순된 욕구들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고 믿고 싶다. 나는 단지 -그런 것이 실제로 있다면- 무해(harmless)한 욕구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건강하게 먹고 싶은 욕구와 자극적으로 먹고 싶은 욕구를 모두 가지고 있다. 사진의 까스는 제로미트 크리스피 가스 (비건).



으스대고 싶어 질 때 나를 너무 몰아세우고 싶지 않다. 다만 떠들기를 조금 미루고 혼자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너 인정받고 싶니? 사랑받고 싶니? 마구마구 자랑하고 싶구나.” 내가 옳고 이것이 진리라고 단정하며 소리치고 싶을 때가 간혹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뱉듯이 쓴 글을 불특정 다수를 향해 던지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다. 나만의 일기장에 마구 쏟아내고 조금 차분해졌을 때 다시 읽어본 후 판단한다면 도움이 될까? 방법을 찾는 중이다. 나의 다양한 욕구들을 무시하기보다는 다독이고 보다 건전한 방식으로 충족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돕고 싶다.



말하는 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원하는 태도로 할 권리가 있다면, 듣는 자에게는 귀를 막거나, 듣는 척만 하거나, 집중해서 경청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선물도 던지면 폭력이 된다. 포장까지 필요하진 않겠지만, 따스함을 담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정성을 담아 음식을 차리고,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선물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누구나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아주 가끔은 화려하게 포장까지 해서, 평소에는 소박하지만 작은 정성들을 담아. 그럼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이 먼저이겠지? 글은 결국 마음을 담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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