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공간의 미학 Aug 15. 2024

세대가 아니라 시대가 변했다

권위는 지위가 아니라 실력에서 나온다

1. 현실

주어진 관계나 지위만으로 권위와 존중이 확보되던 시절이 있었다. 선임과 후임, 선생과 학생, 부모와 자식, 감독과 선수와 같이 관계가 규정됨으로써 한쪽은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당연했고 다른 한쪽은 배우고 순응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는 단순히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라고 볼 수는 없다. 조금 더 먼저, 많은 경험을 함으로써 전수할 수 있었던 지식과 노하우, 경험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한쪽이 무언가를 전수하고 다른 한쪽에는 전수받으며 자연스럽게 전수하는 측에 권위가 생겼고, 전수받는 측은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때로 존중이란 이름으로 과도한 권위를 활용하여 전수받는 측에게 불편, 부당함을 강요하는 상황이 있었지만 그것조차 전수의 과정이라 여기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과연 지금은 어떤가? 직장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묻지 않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다가 훈수 둔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들의 실력을 학원 선생님과 비교한다. 학생들도 선생님들이 담임 업무부터 여러 행정업무가 있어 학원보다 학교 선생님의 실력이 일정 부분 떨어질 수 있다고 인정하지만 수업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자연스럽게 자율학습 모드로 들어간다. 부모란 이름으로 아이를 훈육하고 '해라', 하지 마라'를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엄마는 공부 안 하면서 왜 나보고 그래?' 또는 '아빠는 배 나왔으면서 왜 나 보고만 운동하라고 그래?'라고 한다. 모범을 보이지 않은 부모에게 아이는 곧바로 미러링으로 응수한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감독의 말에 절대복종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감독을 평가한다. 특히나 실력이 있는 선수일수록 감독이 제대로 코칭을 하는지, 나를 이끌어갈 전략과 전술이 있는지 평가하고 그들의 코칭을 들을지 나만의 방법을 찾을지 결정한다.


2. 분석

관계가 형성되고 그에 따른 지위만으로 권위와 존중이 확보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의 선배, 선생님, 부모, 감독들이 훨씬 더 뛰어나고 똑똑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거보다 지금의 선배, 선생님, 부모, 감독들이 훨씬 더 많이 배웠을 것이고 공부도 많이 하는 세대이다. 그들의 지식이나 노하우, 경험이 과거보다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원인은 그 반대에 있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뛰어난 이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Youtube 스타들이다. 지금의 세대가 접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Youtube를 보라. '유현준'이 건축에 대해서 전해주고, '김지윤'이 세계정세에 대해 말해주고, '최재천'이 생물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SNS를 통해 자신들의 식견과 경험을 전수해 주는  '전문가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식과 정보는 도처에 널려 있고, 최신 기술 트렌드는 젊은 세대가 훨씬 빠르게 접한다. 이런 상황에서 형성된 관계와 지위만으로 누군가에게 전수하고 전수받는 것은 불가하다. 왜냐? 이미 그건 Youtube와 같은 SNS에서 다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위와 존중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단지 주어진 관계나 지위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 진정한 권위와 존중은 실력에서 나온다. 나이, 조건, 배경과 관계없이 실력이 있음이 증명되면 권위가 생기고, 상대방은 자발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실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단지 지식만을 말한다면 Youtube에서 볼 수 있는 이상의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 이것은 이미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살고 있다. 기본적인 이론과 설명은 Youtube를 통해 들을 수 있지만 발붙이고 있는 현실은 제각각으로 전개된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현실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하여 다양한 층위의 문제 상황을 설명하고 풀어낼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안목이 필요하다. 그러한 현실에서의 전문성이 곧 실력으로서 기능한다. 실력이 있어야 전수할 수 있고, 전수받는 이는 자발적인 존중의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과연 잘못된 현상인가? 물론 실력을 보여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버릇없고 돼먹지 못한 인간들도 많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현상과 별개로 어린 친구들 중 그냥 인간에 대한 예의범절이 없는 '놈'들도 많다. 여기서 그런 '놈'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놈' 같은 인간들 때문에 세대론으로 싸잡아 MZ세대니 파세대니 하며 싸잡아 욕을 먹고 변화의 큰 흐름을 가린다. 그렇지만 동시에 세대론으로 싸잡아 욕하는 것은 현실의 상황을 부정하고자하는 기성세대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사회가 민주화된 지 40년 가까이 되어가면서 옛날의 시선으로 보면 싸가지 없어 보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버릇이 없고 돼먹지 못한 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여 내가 생각하는 정당성에 대해 소리낼 수 있고, 배움의 영역에서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된 것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누군가는 과거 자신이 겪은 상황에 비추어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왜 나만 이해해줘야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지위가 어떤 존중과 존경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현실의 상황이고, 시대의 변화 과정이다. 


3. 해법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식과 기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실 상황에서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에 자신의 경험이 닿아있어야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한다. 직장에서 선배는 직무 영역에 있어 후배가 갖지 못한 지식과 경험이 충분해야 한다.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 모든 선생이 1타 강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속적인 공부과 교습법을 통해 충분히 흡입력 잇는 강의를 학생들에게 선보여야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담임으로서 학생들에 대한 적극적인 성장의 관심을 표현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존중하고 자신이 아이에게 바라는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책을 읽히고 싶으면 본인이 책을 읽고, 운동을 하게끔 하려면 본인이 먼저 운동해야 한다. 감독이 선수보다 운동을 더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독은 경기 전체를 보고 선수에게 그에 맞는 적절한 전략과 전술을 코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훈련을 위한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실력이 있고 모범을 본인다면 존중받을 수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그 실력에 존경과 존중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배울 사람들을 찾고 있다. 


형성된 권위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던 경험을 떠올려본다. 그것은 소대장 시절이다. 이등병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병부터 상병 초까지는 지위에 복종한다. [장교 - 병사]라는 관계 설정만으로 소대장은 기본적인 권위와 존중을 확보할 수 있다. 앞으로 자신의 군생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라도 복종과 존중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상병 말부터 병장들은 초임 소대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몇 명의 지휘관을 보았고, 때론 소대장들이 자신들보다 허접하고 게으르며, 심지어 지휘능력 없는 지휘관도 보았다.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로 새로 부임한 소대장을 희망 없이 쳐다본다. 심지어 이제 곧 나갈 예정이므로 잃을 것이 없다. 

소대장에게 실력은 지휘능력이다. 초급 간부에게 지휘능력이란 평소에는 병사들이 두 번 일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지시하고, 훈련 간에는 명확하고 간명하게 각 인원들이 맡은 임무를 설명하여 이를 구현해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체력훈련에서 빠지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하고 적절한 수준의 체력단련을 유도해야 한다. 함께 비를 맞고 눈을 맞아야 한다. 희망 없는 눈길로 소대장을 바라보던 상병부터 병장들도 어느 순간 소대장을 존중한다. 사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더라도 후임들에게 소대장 욕만 안해도 엄청난 성공이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존중하기 시작하면 이미 갖춰진 경험과 노하우로 소대장을 돕기 위해 나선다. 병사들은 장교이자 소대장이라는 지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군생활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휘 실력에 존중을 표한다. 그 존중은 지휘관에게 자산이다. 


4. 결론

결국 지금의 이 상황은 "세대가 변한 게 아니라 시대가 변했다"라고 보아야 한다. 이 말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시대가 변한 것이라면 이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적응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존중받는 어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지위에 집착하지 말고 실력에 집착하자. 높은 지위가 뛰어난 실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자각하자. 자신의 실력을 쌓고 이를 통해 실전에서 증명하자. 그리고 주변에 나보다 뛰어난 동료들과 후배들이 있음을 인정하자. 어른이라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음을 인정하며 질문하고, 함께 당면한 과제와 문제들을 해결해보자고 제안하자.


누군가는 참으로 혼란한 사회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기존의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는 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혼란스럽고 불안정해 보인다. 그렇지만 역사가 증명하듯이 새로운 규범이 자리잡고 변화된 사회의 작동원리가 구성될 것이며, 새로운 권위가 탄생할 것이다. 새로운 권위의 패러다임은 '관계와 지위'에서 '실력과 협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이지 당위적인 문제로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김호 작가의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에서 선배가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한 내용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P.182)

첫째, 후배와 가끔 만나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요즘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귀 기울여보자. 선배로서 당신이 지켜야 할 원칙은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 것이다. 대화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질문을 해서 그들의 세계에 좀 더 다가서도록 해보자.

둘째, 선배로서 후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하는 힘은 선배가 더 힘을 가질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경험만 있다고 생각하는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실제 후배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혼자서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자신의 삶과 경험을 돌아보면서 지혜를 축적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라는 말을 나는 얼마나 후배들에게 자주 할까? 젊은 시절 40, 50대 선배들을 보면서 새로운 트렌드에는 관심 없고 늘 익숙한 예전의 방식으로만 일하던 모습을 흉보았지만, 이제 나도 그런 '꼰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후배에게 배우지 못하면 앞으로 내 미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리더의 덕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