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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버지 May 26. 2024

나는 운이 좋았지

지금까지는

  한 때는 내 직업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였는가 하면 뭔가 내가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꾸준히 오래 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에 비해 순간의 집중력과 아이디어는 남보다 인정을 받았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동안 분기, 반기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쥐어짜 내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보험 세일즈부터 시작하여 은행에 들어간 나로서는 행원으로 입사한 사람들보다 좀 더 산뜻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전 직장의 동료들의 기억 속에 나는 빠르지만 어느 정도 준수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기억된다고.. 몇몇의 전 직장 동료와 선배들에게 들은 있다. 이런 나를 간파한 회사의 선배는 '너는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재주가 있어'라는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조직에서든 길게 몸 담지는 못하였고, 그 안에서 잠깐 인정을 받았을지언정 나를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큰 신뢰를 주지 못한 것 같다. 아마도 그런 모습이 조금 자아도취한 모습이었거나 앞서간 생각을 하는 누군가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생활 15년 만에 자발적(?) 백수가 된 지 장기간(6개월째..)으로 치닫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서 있다 느낀다. 지금까지는 노력대비 운이 좋아서 버텨 온 내 삶에 많은 것들을 채웠다. 누군가는 노력이었다고 말해 줄지언정 나는 안다. 내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진짜 노력을 했다면 난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중간에 그 일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노력도 노력이거니와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일을 해보고 싶다. 그래야 내가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다섯 살이 된 딸아이에게 환갑쯤 되어서는 '아빠는 운이 좋았어'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도록.


  얼마 전 기안84가 자신의 성공에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이 운이라고 말한 장면이 기억난다. 그 말에 다른 이들이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았냐고 했지만, 그는 그 정도의 노력은 누구나 한다고 말하며 자기는 정말 운이 따랐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른 것 같다는 말을 다시 강조했다. 기안84라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지독한 자기검열자이며 엄청난 노력가, 그리고 야망가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는 말을 쉽게 할 순 있지만, 누가 그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말의 의미는 달리 느껴질 수 있다.


  요즘 가수 권진아의 '나는 운이 좋았지'라는 노래에 흠뻑 빠져있다. 사랑과 헤어짐에 관한 노래이지만 가사 중 이 부분은 좀 다르게 와닿는다. "스친 인연 모두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나 역시 스쳐지나온 일과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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