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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Oct 11. 2022

'놀이'의 중요성

잘 노는 인간이 됩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심 놀랐던 점 중의 하나는, 아이들의 '노는 시간'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어른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공부하는 학원이 아닌 축구 학원이나 미술 학원에 다니니, 학원에 가는 시간도 '노는' 시간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간혹 있는데 그야말로 어른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의 경우,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서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았어도 그걸 자신의 '놀이' 시간으로 쳐주지 않는다. 유치원이 끝나고 자유롭게 자기 마음대로 놀아야 '노는 시간'이다. 그렇게 하원 후 놀이터에서 2시간을 땀에 젖게 뛰어 놀아도 아직 충분히 놀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며 집에 온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한참을 사부작대며 놀고 나서야 순순히 목욕을 한다. 자기 양껏 놀지 못했으면 '조금만 더'를 외치며 5분이라도 더 알차게 놀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씻으러 간다.


나 역시 어렸을 때 해가 질 때까지 밖에서 신나게 놀았던 유년 시절을 보냈었기에,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때 원없이 놀았기 때문에, 나중에 진짜로 공부를 해야할 시기에 집중하고 몰입했던 힘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더 재미있게 놀기 위해 새로운 놀이와 규칙을 생각해내고, 이런 저런 머리를 굴려보는 과정에서 창의성도 발달하고 생각하는 힘도 자라난다.


또한 햇빛 아래에서 뛰어 놀면서 체력도 좋아지고, 시력이 나빠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비록 놀이터에서 다칠까봐, 다른 아이들과 싸울까봐 종종 거리며 따라다녀야 하는 엄마는 진이 빠지지만, 이렇게 노는 것도 다 한때라는 걸 알기에 버틸 수 있다. 그저 건강하게 놀 수 있을 때 실컷 놀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요즘은 또 우리 때와는 달라서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꾸준히 영어 노출도 시켜줘야 하고, 한글도 꽤 빨리 떼어야 하는 분위기다. 초등학교 저학년만 되도 할 게 너무 많아서 시간이 없어진다는 선배맘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그래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시간이 바로 이 자유롭게 '노는' 시간과 '독서' 시간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나는 양육자인 부모의 자유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육은 기나긴 과정이다. 지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양육자인 나와 남편이 행복하고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아이 또한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른의 자유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른의 '놀이'는 무엇일까?


아이가 어렸을 때는 어느새 내가, '놀 줄 모르는' 인간이 되어버렸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숨가쁜 릴레이처럼 남편과 교대하며 육아에만 매달리던 몇 년을 지나,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에만 매달리다가 워킹맘으로 지내던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마흔이 훌쩍 넘어버린, 번아웃에 빠져버리기 직전의 내가 있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쇼핑하기,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 가기, 여행 가기와 같은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20~30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패턴이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마흔 두살을 기점으로 그런 것들조차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아이 낳고 나서도 꽤나 좋아했던 호캉스 조차도, 해외여행 조차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는다. 놀기 위해 짐을 싸고 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하고, 무얼 봐도 크게 감흥이 없다.


그냥 지금은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제일 좋다.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 생활을 하던 시기를 거쳐, 다시 어린 시절의 조용하고 내향적이었던 본연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다 해봤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걸까. 아니면 아이를 통해 얻는 행복보다 더 큰 것을 찾지 못해서 시들해져버린 걸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점점 더 내적으로 지속되는 행복감을 줄 수 있는 활동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요즘 내가 가장 멀리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핸드폰이다. 아이를 키우며 핸드폰을 보지 않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모든 필요한 육아 정보와 학습 정보들이 핸드폰에 있다. 유치원 연락도 확인해야 하고, 온라인으로 장도 보고 아이 옷도 사야 한다. 프리랜서 일을 의뢰받을 때에도 핸드폰 연락을 통해 오고, 메일도 핸드폰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잠시 쉴 때 폰을 보다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그야말로 시간을 잡아먹는 블랙홀과 같은 존재다. 실컷 웹서핑을 한 이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찝찝함과 후회 뿐이다. 마치 도박에 중독된 사람처럼 눈 뜨자마자 핸드폰부터 찾고 자기 전까지 핸드폰을 쥐고 자는 내 모습이, 어느 순간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이 또한 부모의 행동을 고스란히 따라한다. 아이 앞에서는 핸드폰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로 남편과 굳게 약속했지만 잘 지켜지진 않는다. 남편은 급한 회사 연락이 올 때마다 핸드폰을 봐야 하고, 나는 깜빡 잊은 식료품이나 유치원 준비물을 주문해야 한다는 핑계로 자꾸만 앱을 켠다.


예전에는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이 멍하게 서 있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면서 '심심하다 못해' 책이나 신문이라도 펼쳐봤던 것 같다. 이 '심심하다 못해'라는 표현을 이제는 사용하기가 어려운 세상이 왔다. 잠시 줄을 서 있을 때도,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놀릴 때에도, 컵라면에 라면이 익는 동안의 잠시 잠깐 동안에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광경이 너무나 익숙해졌다.


개인적으로 요즘의 나는 '핸드폰과의 전쟁' 벌이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 낭비와 지나치게 의존적이 되는 느낌이 싫고,  재미있고 생산적으로 놀고 싶기 때문이다. '내적으로 지속되는 행복감을 주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기 때문이다.


핸드폰만 켜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온갖 세상의 흉흉한 뉴스들, 연예인 가십거리, 불안감을 조장하는 이야기들...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그런 걸 볼 시간에 차라리 멍하니 있고 싶다. '심심하다 못해' 책 한줄이라도 읽을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심심한' 상태로 두고 싶다.


나 자신을 심심한 상태로 두었더니 자연스럽게 생산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좋아하는 소설책을 보고, 일하면서 필요성을 느꼈던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 글쓰기를 시작했고, 어렸을 적 오랜 취미였던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가족 사진을 앨범에 정리하고, 집안을 정리 정돈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모든 시간, 모든 활동에, '나'의 취향과 개성을 온전히 되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이걸 못했던 게 아니었다. 핸드폰에 뺐겼던 내 주의 집중력을 다시 찾아오기 시작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옷을 덜 사기 시작하고, 충동구매가 줄었다. 세상의 뉴스나 가십에는 어두워졌지만, 시시각각 바뀌는 계절의 냄새와 바람을 온전히 느끼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아이의 눈을 더 들여다보게 됐고, 놀이터의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간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


나에게 핸드폰의 존재는 사교육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완전히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으며,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 그렇지만 너무 의존하면 안되는 것이다. 핸드폰을 멀리 둘 수록 나만의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불편해도,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활동이 더 많다. 꼭 온라인으로 사지 않아도 될 물품들도 많고, 꼭 시시각각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보들도 많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많이 놀 수 있기를 바란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심심하고 멍한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심심하다 못해' 무언가를 시작하는 취미를 갖길 바란다.


처음에는 초조하고 조바심나지만, 점점 더 핸드폰과 멀어지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보고 느끼고 몸을 움직이며 몰입하는 느낌에 빠져서,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나? 라는 기분 좋은 자각을 (일단 나부터) 자주,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것을 성취하기 보다, 하루 하루를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다. 먼 미래에 성공한 내 모습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부터 성공하고 싶다. 오늘 주어진 하루 동안 '잘' 놀고, 그 놀았던 시간을 바탕으로 몰입해서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하루 하루를 쌓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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