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UX 디자이너의 꿈을 꾸다
새로운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미국 와서 부쩍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다. 2년 전 이맘때도, 우연찮게 본 유튜브에서 “초보러너가 더 멀리 지치지않고 달리는 방법”라는 자극을 받아 한 달 정도 오기로 하다가 예전부터 안 좋았던 무릎의 통증이 심해져 그만두었다. 개인적으로 대학교 과 야구부에서 포수를 하다 무릎이 나간 게 아닐까 하는 억측을 해보지만, 내 무릎이 견딜 수 있는 중량보다 내 몸이 더 무거워졌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는 없다.
난 학창 시절 때 순발력이 뛰어났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 계주 달리기에서 동아리 장은 빠질 수 없어서, 가장 중요도 적다고 생각했던 첫 번째 주자로 뛰었는데, 사람들 우려와는 다르게 6명 중 1등으로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겼고, 그다음 라운드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었다. 유독 벼락치기에 능했고, 그래서 범위가 주어진 중간/기말 시험들도 단기간 집중해서 잘 봤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 고등학교 처음 모의고사를 치르고 나서,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시험에서는 많이 헤맸던 것 같다.
그리서 다시 그 유튜브 채널을 찾아봤더니 “왕초보러너에게 필요한 30일 러닝 프로그램. 이대로만 해보세요”라는 영상이 있었다. 3년 이상 꾸준히 달리고, 그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라 속는 셈 치고 시작했다. 첫날은 3분 걷기 1분 작게 뛰기, 둘째 날은 쉬고, 셋째 날은 3분 걷기 2분 뛰기 이런 식으로 차츰차츰 그 리듬에 몸을 적응시켰다. 1주일 되었을까, 이제 좀 뛰어볼까 하는 마음에 한 스텝을 건너뛰었더니 바로 무릎에서 신호가 왔다. 나 아직 준비 안되었다고…
대학생 때, 주위 친구들은 다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그 길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2년간 군 현역 생활을 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때의 2년간의 쉼이 내가 UX로 온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공대 전공 지식들이 2년 동안 없어지는 동안, 그때 접한 책들과 함께 생활했던 선임/후임들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배우게 되었고, 그 시간 안에서 나를 찾는 과정을 보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라면 당연히 안 간다.)
사람을 위해 공간을 만드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사용자를 위해 디지털 공간을 디자인하는 UX 디자인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 제대 후에 UX라는 분야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턴과 리서치 경험을 통해 UX가 적성에 맞다는 것을 안 후(자기 암시를 한 후) 미국으로 공부하러 나왔을 때는 이미 20대 후반이었다.
일찍 취직한 친구들은 이미 5-6년 차의 직장인들이었고, 공부를 꾸준히 이어간 친구들 중에는 이미 박사를 딴 친구도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았을 때,
누구는 걷고 있고, 누구는 달리기 선수처럼 빠르게 뛰고...
하지만 여기는 그 누구도 빨리 가라며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가라며 잡아당기지 않는다.
오늘은 이렇게 뛴 지 10번째 되는 날이며 걷는 시간보다 뛰는 시간이 많아진 날이기도 하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도, 이러한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나는 장거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내 페이스에 맞춰서 나아가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