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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경 Dec 29. 2023

짝사랑의 유통기한

차였을 때 잊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12월 18일에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거의 11일이 되는 나날 동안 의미 없는 연락을 하루 2-3번 매일 하며 시간을 때웠다. 처음에는 시드니 여행을 하며, 그와의 연락에 집착하는 게 줄어서 마음이 놓였다. 이 상태로 종이 한 장보다도 가벼운 우리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원하는 가벼운 관계.

가끔 서로 만나서 데이트하고, 서로의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고, 스킨십은 하는 그런 얄팍한.


사실 나는 진득하니 그를 알아가고, 진지하게 만나고 싶었지만, 그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선택을 전적으로 따르거나, 내가 먼저 이 관계를 정리하거나. 둘 중 하나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어떤 선택을 해야 상처를 덜 받을까.


얼마 전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이렇게 가벼운 상태로 연락하는 것이 편하다. 나도 기대하지 않고 가볍게 만나면 된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런데 여행하다 보니 마음이 너무 불편해졌다. 진지한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고, 서로 사랑 주고 사랑받는,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부러웠다. 신뢰 기반으로 형성된 관계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자꾸만 흔들렸다. 가벼운 관계 속에서 선을 넘으면 안 되는,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숨겨야만 하는 이 마음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너무나도 유약한 사람이었다. 최근 사건 사고로 삶이 피폐해지고, 살이 갑자기 쪄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고, 전 남자 친구는 새로운 여지친구가 생겼고, 엉망진창으로 흘러가는 내 삶 속에서 나는 외로워서인지, 마음이 불안해서인지, 사랑으로 일상의 안정을 찾고 싶었나 보다. 그냥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것에 의지하고 싶었나 봐.


스스로를 가꾸고, 내면을 강하게 만드는 게 더욱 도움이 될 텐데. 무기력 속에서 힘을 내기란 참 어렵다.


- 12월 29일 새벽 1시,


몹시 초조하고 답답해서 차마 글로 기록을 안 할 수가 없겠어서 또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서른 살의 짝사랑을 친구에게 털어놓기도 민망해서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브런치뿐이다.


요 근래 최근 내가 하고 있는 짝사랑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봤다. 정말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었고, 한 달째 계속 연락은 하고 있지만, 상대는 나에 대한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내가 느낄 때 매번 좌절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이 관계를 버려야지. 다짐 또 다짐을 해보지만 참 어려웠다. 놓기가. 그럼에도 이제는 정말 놓아줄 순간이 온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놓기로 한다. 손이 떨려 온다. 몹시 속상하고, 누가 쿡 찌르기라도 하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매번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하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 그냥 너무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저 멀리 도망가고 싶어 진다. 새벽 2시까지 잠도 못 자고, 연락 한 통을 기다리는 내가 너무나도 비참하고. 나를 이렇게 쉽게 여긴다는 것에 더욱 속상하다.


그래서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냥 다 없었던 일로 하려고 한다. 그냥 짝사랑 접을래. 포기할래.


라고하고 나서 그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 11분 정도 통화를 하고 새벽 세시 반까지 카톡을 끄적이다, 결국 더 이상 정들기 전에 정리하는 방법을 택했고, 나는 그의 마지막 개소리를 듣고 그의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을 전부 차단해 버렸다. 새벽 내내 쉬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 수 있었고,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호스텔 2층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청승을 떨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 자신을 상처 주면서까지 만날 필요가 없다. 혹여나 그를 후에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내가 그를 여전히 그리워하게 된다면, 내가 외롭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감과 멘탈을 단단히 회복한 상태로 만나고 싶다. 자기 계발을 하고, 운동도 하고, 내 삶을 더 반짝이게 가꾸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생기겠지.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참.

기억에서 잊어버려야지.


“그냥 연애할 생각이 없었는데

재밌었고 귀여웠어 그게 다야.. “


기억하지 말자. 그냥 서로의 니즈가 달랐을 뿐.

서로의 연애 가치관이 달랐을 뿐이다.

전애인도 지금은 까마득하게 잊었고 미련도 없기에, 오히려 헤어지자 먼저 말해줘서 고맙기에 이번 실연도 곧 잔잔해질 거란 걸 안다. 그러니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리자. 2-3주가 지나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그립다면, 좋다면, 사랑스럽다면 다시 한번 용기 내서 붙잡아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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