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반짝 May 20. 2022

난데없이 생각난 알바 썰

한창 서울에서 못 살고 있을 때 이야기다. 어떻게 저떻게 연명을 하고 월세를 내면서 살았는데, 진짜 이런 기억들이 엄청 희미하다.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생활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날아가버렸는데... 그래도 물류 알바 했던 게 기억나서 씀. 


알바몬 보면 일일알바로 언제나 물류가 있다. 전날에 문자하면 어디로 몇시까지 오라고 하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많았다. 그것도 여자가 많았음. 가서 일용직 근로 계약서를 쓰고 모여서 일 배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관리자가 온 사람들을 쭉 보더니 오늘 여자가 많네, 라고 곤란한 듯 말했다. 보통 가면 여자는 분류 남자는 적재를 시킨다. 적재가 뭐냐면 물건을 빠레트라고 해가지고 네모난 판에 착착착 쌓아서 랩으로 둘둘 감는데, 그래서 그걸 지게차로 트럭에 싣는다. 맨 첨에 물류 갔을 때는 적재를 트럭에 직접 했었는데, 몇년 뒤 다시 물류를 가니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관리자는 여자 중에 몇 명을 적재할 사람으로 분류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체중이 좀 많이 나가는 여자들을... 노골적으로 골라서. 나는 나와 함께 적재로 뽑힌 여자들을 보면서 기분이 좀 그랬다. 관리자는 나한테 이 위에 물건을 날라서 쌓으라고 알려주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남자애들한테 좀 도와달라고 하고 쉬엄쉬엄 하면 돼."


이것은 정말 전형적인 아저씨들의 착각인데, 그거는 뭐 내가 손 안 닿는 높은 곳에 물건이 있거나... 아니면 진짜 어쩌다 한 번 무거운 거 옮겨야 할 때나 도와달라고 하는거지 힘쓰는 일 하러 와서,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뭐를 도와달라고 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리고 나는 요령이 존나게 없는 편이다. 알아서 쉬엄쉬엄 같은 것을 못 한다. 거기는 쉬는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엄청 일정-한 속도로 멈추지 않고 계-속 동작을 반복하면서 물건을 쌓았다. 


거기 가면 처음에 심장에 문제 없는지 체크하는 란이 있는데, 단 한번도 심장에 무슨 무리를 느낀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이게 뭔 질문이래 ㅎ 하고 그런 적 없다에 체크를 했다. 그런데 일 끝나기 한두시간 전쯤, 가슴 쪽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근육통인가? 라고 생각했음... 뭐 최종적으로는 별일 없으니까 이런 걸 쓰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일을 마치고... 무사히 버스를 타고 출발했던 집결지에 내렸다. 


넋이 다 빠진채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아침 퇴근 시간 = 출근 시간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많았다. 지하철 문 열리고 타려는데, 앞 사람이 엄청 얇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음. 내가 실수로 그걸 밟았고... 그 슬리퍼가 벗겨져서 전동차 사이에 빠졌다. 놀라서 어... 하고 있는데 슬리퍼 주인이 "사과 안하시나요?"라고 했다. 한창 트위터에서 남의 발 밟아놓고 아이고, 어어, 하고 죄송하다고 안 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에 대한 비토가 성행할 때여서,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슬리퍼가 아이다스였나, 하여튼 걍 싸구려가 아니었음. 밤새서 알바한 돈이 싹 사라질 것 같아서 진짜 패닉했다. 


아무튼 죄송하다고 했고 다행히 그 여자분은 슬리퍼값을 물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마 슬리퍼 값을 물어달라고 했으면 난 그자리에서 무릎꿇고 빌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관상이라서 슬리퍼 물어내란 이야기 안 했겠지... 

작가의 이전글 한 해 정리 연말 챌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