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도 써도 줄지 않는 것
장보고 채워놓고 돌아서면 다시 사야 할 것 투성이다. 화장지, 치약, 샴푸 등 하나씩 챙기는 게 매일 일과이다. 된장을 사다 놓으니 간장이, 간장을 사다 놓으니 고추장이 떨어졌다.
요즘처럼 장보기 물가가 오를 때는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상상한다.
써도 써도 줄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떨까?
동화 속 우렁각시가 등장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상상하며 잠시 만족한다.
그런데, 실제로 써도 줄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감정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나의 감정들은 잠들 때를 제외하고 나와 동고동락을 같이 한다. 소비해도 사라지지 않는 이런 감정들은 나를 지탱하기도, 무너뜨리기도 한다.
버리고 싶은 감정도 있다. 질투나 시기와 같은 감정이 그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행동을 제약한다.
감정을 소비하듯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순간의 침습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우리는 소비하는 삶을 산다.
시간을, 감정을, 물건을 소비한다.
재밌는 것은 물건과 시간도 감정적 소비가 많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방법으로 보상적 소비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배송을 기다리는 시간도 일종의 소비라 할 수 있다. 사다 놓은 물건을 포장도 풀지 않은 채 잊히는 경우도 있다. 결재를 하는 순간, 이미 보상적 쇼핑이 끝나는 경우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삶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내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
적절하게 누리고 소비해야 삶이 더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감동이나 즐거움, 편안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친밀감을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뒤 느끼는 포만감, 혼자 있는 시간의 여유로움, 일을 마친 뒤의 홀가분함,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기대감.
일상의 많은 것이 소비하며 느끼는 감정이다. 사랑과 행복도 감정이기에 온전히 누려야 한다.
부정 감정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순간적인 스트레스를 만들지만 일상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시기나 질투심 경우도 내 안의 욕구가 있다는 반증이다. 어쩌면 팔딱거리는 심장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두려움은 주변을 경계하고 신중하게 만든다.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되어 일을 해낼 원동력이기도 하다.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감정을 마주하며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지 질문해봤다.
나의 답은 '아니오'다.
감정은 삶의 지속성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신호등이 되어 빨간불, 초록불처럼 멈출지 속도를 내야 할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고를 방지하려면 출발했다가도 멈추어야 하고 일정 거리도 유지해야 한다.
삶은 연속적인 소비의 시간이다. 뭐니 뭐니 해도 쓰는 재미가 가장 크기 때문에 감정도 소비해야 생기 있고 활력이 샘솟는다는 결론이다.
미니얼 라이프를 지향하는 최근의 트렌드를 감안하면 감정소비도 적정선 유지는 필요하다. 뭐든 지나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니 내 감정에 내가 치이는 상황은 역시 아닌듯하다. 감정 통제는 '상대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이면 좋겠다.
제대로 소비하는 기쁨을 누리려면 감정, 물건, 시간 소비의 무게중심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겠다.
바쁘다를 노래하듯 불러봐야 내 시간은 늘지 않으니 다른 소비를 줄여보자.
이 셋은 서로 맞물려서 하나가 늘면 하나가 늘기도 한다. 때로는 반대인 경우도 있겠다.
이왕이면 핫한 소비로 기쁨을 만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