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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나래 Dec 18. 2023

떠나는 사람의 멋진 뒷모습


대부분의 우리는 잘난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한다. 그러다보니 교만이 스멀스멀 올라와도 눈치채지 못한다. 특히, 누군가와 비교될 때 교만은 머리끝으로 치고 올라간다. 내가 그보다 조금 더 낫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무리수를 둔다. 직위도 그만하면 되었으나 이대로 만족할 수는 없다. 조금 더 올라서거나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남의 약점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무의식중에도 바라 마지않는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는 점점 사실이 되어 가고 드디어 자신의 실수도 인정하려 들지 않게까지 된다. 이쯤 되면 상대인 누군가는 억울해서 병이 날 것이다.

우월감에 젖어 들면 자아의 깃발이 높여지고 스스로 만든 덫에 걸려 판단은 점점 흐려진다. 세상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리고 급기야 그들이 우러르기까지 한다면 이제 거기서 헤어 나오기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본모습이다.


모세와 엘리야만큼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향력을 끼친 선지자는 일찍이 없었다. 이스라엘에 오랫동안 선지자가 없던 차였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 불리우는 요한이 나타나자 그들은 엘리야는 이미 하늘에 갔으니 모세가 다시 일어난 것쯤으로 여기며 선지자에 버금가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한때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요한, 국민으로부터 국가 고위층의 관심까지 한몸에 받던 그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 의원쯤에게 쏠리는 관심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예수님의 등장으로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서 떠나 예수께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한, 그도 지위를 빼앗기면 슬픔과 실망을 표시하는 인간의 선천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자신에게 향하던 관심이 예수께로 향하는 그런 순간에는 질투와 시기심이 발동하는 자기 연민과 약점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일 뿐이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우리에게는 흔히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시기의 독기(毒氣)에서 초연할 수 있는 거룩한 사랑의 접촉이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너무나 멋진 요한의 말이 아닌가? 그는 우리에게 흔히 있는 자아와 교만, 우월감을 대신한, 우리에게 흔히 없는 것이 있었다. 하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면 받지 않고자 하는 마음 덕분에 그는 흔들림 없이 믿음으로 구속주를 바라보았고 자기희생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다 있다. 나보다 남을 더 높여 주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복되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은,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멋진 뒷모습을 보여 주므로 그를 추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앞길을 열어 주는 여유가 있었다. 자기도 못하면서 남도 못하게 막는 초라한 꼰대의 모습으로 남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이었으며, 자아를 비운 그의 심령은 하늘의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는 그렇게 땅에 거한 자였지만 땅에 속하지 않았고 하늘의 것을 말하는 영광을 얻었다.

침례자 요한, 과연 그는 돌아서는 뒷모습이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즌이 오면 우리는 더 좋은 자리를 탐한다. 가라 하시는 곳으로 가지 않고, 있고 싶은 곳에 머무르기를 좋아하면서,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도 믿음으로 그 자리를 버텨 보겠다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은 후배들에게 비쳐질 요한과 같은 멋진 뒷모습인데도 말이다.

주가 부르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아무리 좋아하는 사업일지라도 한층 더 추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읽었다면 주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미련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런 믿음이 있다면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을 다시 맡겨 주실 분이심까지 믿어야 하지 않을까? 존경이 과하면 자기를 과신하는 마음을 품도록 유혹을 받는다고 했다.

너무나 멋졌던 침례자 요한의 생애, 구주와의 거룩한 사랑의 접촉으로 쇠하여야 할 때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은 성령이 함께하실 때 알게 되는 지혜로움이 아닐까 싶다.

그가 그 사업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 때까지 추진시켰을 때에 주께서는 그 사업을 한층 더 추진시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불러들이신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처럼 많은 사람은 사업의 성공이 최초의 일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대신에 인간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시기심이 침투하여 하나님의 사업은 손상을 받는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존경을 받은 자는 자기를 과신하는 마음을 품도록 유혹을 받는다 (DA,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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