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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Mar 13. 2022

눈 오는 저녁 숲에 멈춰서서

로버트 프로스트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눈 오는 저녁 숲에 멈춰서서

Robert Frost

로버트 프로스트


누구의 숲인지 난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요.

그는 내가 여기 멈춰 

그의 숲이 눈으로 가득차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걸 모를 겁니다.

다른 소리라고는 가벼운 바람과 부드러운 눈송이의 흩날림뿐.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습니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습니다.

잠 들기 전에 한참 가야 합니다.

잠 들기 전에 한참 가야 합니다.


사랑스러운 것과 밝은 것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상식일 것이다. 숲이 사랑스럽긴 한데 어둡고 깊다니. 어둡고 깊어서 무섭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이니까 가야한다는 식의 전개를 해도 시의 흐름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이 시에서 내가 보는 포인트는 숲이 사랑스럽긴 하지만 어둡고 깊다는 언급이다. 상식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어둡고 깊은 것을 견뎌서 태어난다. 정말 사랑스러운 것은 어둡고 깊지, 밝은 것을 드러내어 자랑하지 않는 법이다.


농촌에서는 실제 가로등과 같은 조명을 쬐었을 때 식물의 생장을 방해한다고 한다. 어둑어둑한 들길을 가다보면 왜 가로등을 설치하지 않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들 때가 있다. 농촌이라 차별을 받아 가로등도 설치하지 않는다? 정말 그런 동네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로등을 켜 두면 들깨 같은 식물들은 크게 타격을 받는다고 한다. 콩류들은 대부분 영향이 크고 심지어 벼의 생육도 부진하게 만든다. 볕도 적당히 들어야겠지만 어둠도 들깨의 생장에 필수적이다.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는 말은 이상할 것이 없다.


흔히들 빛과 어두움은 대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명암(明暗)이라는 현상을 제멋대로 나누어놓고 자의적으로 분리시켜 서술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공간에 빛이라는 요소가 많이 들어오면 밝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 요소가 적으면 어둡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빛과 어둠을 상반되는 두 실체라고 볼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밝음이 있으려면 어두움이라는 배경이 필수적이다. 빛이 어떤 물감 같은 것이라면 어두움은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도화지라고 보면 되겠다. 물감이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물감은 나중에 구하면 된다. 일단은 도화지가 있어야 그림을 그린다. 그런 점에서 밝음의 출발선에는 반드시 어두움이 있다. 더 강하게 말한다면, 어두움은 밝음의 씨앗이다.


나는 프로스트가 지났던 숲 어두운 곳에 숲의 정령이 존재했다고 추측해본다. 억측이 아니다. 우리 아버지도 팔공산 수태골에 정령으로 몇 년씩이나 계신다. 그는 젊은 시절에도 그 골짜기를 그리워했다. 그는 유년기를 그 곳에서 보냈는데 장년, 노년이 되어서도 그곳을 사랑했다. 그곳은 어둡고 깊지만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여전히 그곳에 가면 아버지라는 이름이 솦에 떠돈다. 그의 못다 이룬 꿈이 여기저기에 산재하였다. 하다못해 그 분이 세워놓은 제실까지 그대로 있다. 


세상을 떠나면서도 숲을 그리워하던 그 음성을 어찌 잊겠는가. 프로스트의 영과 아버지의 영은 상당히 맞닿아 있다.


어두운 숲은 우리들 이야기가 태어나는 곳이다. 도시의 찬란한 인공광선도 우리를 받치고 있지만 더욱 근원적인 것은 숲의 어두움이라고 믿게 된다.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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