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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Jan 26. 2023

무의식중에 빠져드는 동어 반복의 폐혜

수요공급으로 가격을 알 수 있나

많은 사람들이 자명하게 생각하는 진리들 중에서는 우리가 몰라서는 안될 만한 사항들도 많지만 반대로 속빈 강정 같은 명제들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논리이다. 언뜻 보면 틀릴 수 없는 말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언짢은 부분이 숨어 있다. 사실상 동일한 말을 반복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처럼 우쭐거리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평형상태에 있는 재화의 수요가 공급에 비해 늘어나면 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질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것을 그래프의 이동 형태로 반드시 학습하게 되어 있다. 분명히 그 그래프 자체는 합당하고 수요와 공급은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소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시절, 코로나가 끝나고 수많은 가게들이 창업하고 있는데 음식값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대폭 상승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제품의 가격이 단기적으로는 지그재그로 변동하는 것 같지만 장기적인 추세에서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눈에 띈다. 즉 수요와 공급 법칙 같은 것은 매우 단기적으로나 적용해볼만한 것이지 영속적인 진리로서 값을 매길 형편은 못된다.


단기적으로 수요공급이라는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도 중고등학교 시절 학습했던 것에 대한 의리 때문에 그나마 인정해주는 것이지 솔직히 말해 그냥 엉터리라고 말하는 것이 속시원하다. 시중에 물건이 많이 풀리는 것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뭐 별로 새로운 정보도 없는데 계속 중얼거리는 느낌이 든다. 피부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피부 관리가 필요하고 충분히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는 식의 당연한 얘기를 쭉 늘어놓은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반대로 가격이 오르거나 내려서 수요, 공급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많다. 말할 필요도 없이 가격과 수요 공급은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고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일시적인 수급 상황이 가격에 반영된다, 혹은 그 역도 성립한다는 정도의 명제가 더 소박하지만 정확한 것 아닐까. 한발짝 더 나가 가격은 생산비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 재화를 생산하는데 얼마나 많은 재료비가 소요되었는지, 노동력이 얼마나 투입되었는지가 결정하는 것이다. 수요, 공급 따위는 너무나 부차적이고 우연적이다.


원인, 결과를 아무데나 갖다붙여서 편할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련 있는 사항들을 주욱 늘어놓으면 제법 그럴싸한 말이 되고 남들도 언뜻 들으면 맞는 명제들이 있다. 약 10% 정도만 진실성이 있어도 사람들은 거슬리지 않게 들어 준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자꾸 들으면 100% 함량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약물 오남용처럼 처음에는 함량이 낮아서 그냥 문제의식 없이 쓰다가 나중에 심각한 중독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좋은 학군에 살아야 좋은 대학에 많이 진학한다는 식의 논리도 아무데나 갖다붙인 인과 관계이다. 좋은 학군에 살아서 진학을 많이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미 그 학생들은 물질적인 혜택을 많이 보고 있고, 값비싼 입시 공부를 하고 있고 다른 잡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도 잘하고 진학도 잘하는 것이다. 단지 어떤 학군에 살고 어떤 고등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으로 경제성장 동력이 꺼진다는 푸념도 그렇다. 비경제적인 인구보다 생산 인구가 감소하면 경제 성장에 도움이 안될 거라는 얘기가 그럴듯하다. 그러나 저출산은 어떤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점이 누적되어 발생한 결과로 보는 것이 맞다. 아이를 낳아도 안전하고 보람되게 키울 수 없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출산 보조금을 많이 줘서 독려해도 일시적인 대증요법에 불과할 뿐 출산율에는 영향을 주기 어렵다. 출산 보조금을 1인당 1억원씩 쥐어줘서 출산률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다. 복권 뽑듯이 돈이 생겨도 장기적으로 그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지 미지수인데 낳기만 하면 뭐할 것인가. 저출산은 우리 사회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마침내 최악의 국면까지 왔다는 징표에 불과하다. 전세계 최저 수치. 지속 가능성이 없는 불임사회. 그것이 더욱 솔직한 표현이다.


원인도 아닌 것을 원인으로 보고 그것을 고무줄 당기듯이 하면 일시적으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원인이 될 만한 것들을 외면하게 되므로 그 해결책과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답을 못 찾는 경우가 있던가? 그렇다. 아무리 용을 써도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시궁창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동어반복의 함정은 이렇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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