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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Feb 18. 2023

학생들 마스크 좀 벗어주세요

마스크, 왜 빨리 벗어야 하나

만3년, 마스크 강제 착용 시기를 지나왔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신체 활동을 규제될 수 있고, 그 타율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마스크가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었고 지금 상당부분의 규제가 해제되었음에도 한국인들의 마스크 사랑은 각별하다. 알고 보니 타율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 마스크를 착용해왔던 것이고 앞으로도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일부 공중파에서 마스크의 제한성, 부작용을 조금씩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말의 반성 같은 것이 느껴지기는 한다. 마스크를 과신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읽어보면 대부분 과학적인 상식에도 부합하고 지난 3년간 세계적 규모의 방역 성적표를 보았을 때도 그 주장은 옳다. 통제요소들을 완전히 제압한 상태에서의 함수값이야 수학적으로 거의 정확히 도출될 것이다. 일시적으로 실험실 같은 규모로만 마스크의 효용을 살펴보면 상당한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실험실의 억제된 표본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외의 다양한 내노라하는 과학자들도 이런 것들을 잘 모르고 덤벼들었다. 그러다보니 모든 국민들의 입과 코를 천으로 가로막는 방식의 규제가 힘을 얻었던 것이다.


KBS 보도는 코로나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분석해놓은 것인데 우리네 삶은 코로나에 한정되어 들들 볶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래서 그 보도에 나온 것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마스크가 우리 삶에 미친 부정적인 효과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숨을 바로 쉬는 것은 건강의 첫번째 조건이며 그 숨 속에 어떤 바이러스와 세균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 몸이 그런것까지도 용기있게 이겨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마스크를 통해 이물질을 얼마나 잘 걷어낼 수 있는지 알아볼 필요도 없다. 마스크가 바이러스를 잘 걷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사람은 바이러스에서 해방되어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외부 물질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인류는 바이러스와 밀당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공존하는 관계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는 거부할 수 없다.


결벽증은 어디에서나 문제를 일으킨다. 깨끗함을 고집하면 처음에는 마음에 안심이 되지만 정말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 손을 두번 세번 씻으면 깨끗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살균제 덩어리를 손에 듬뿍 발라 청결의 극치를 달려봐도 좋다. 조그만 식당에 가도 아직 살균제가 병으로 식사 테이블에 놓여 있으니 얼마든지 애용해도 된다. 하지만 살균제가 우리가 혐오하는 물질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건강하게 살고 있는 우리 세포들에게도 위협이 된다. 살균제 파우더를 습관적으로 10년 이상 발라보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런 것이 끔찍하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해봤으면 좋겠다. 어떤 끔찍한 결과가 나오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한국인들은 알고보니 변변찮은 우물 안에서 개구리로 살아왔던 것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마스크를 열심히 껴서 의료자원들이 충분히 배치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매우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였다. 바이러스를 물리적인 방식으로 1년, 2년 막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2022년 초에 이르러 한국은 바이러스 감염 수치에서 세계 선두권을 달렸다. 그렇게도 마스크를 애용했는데도 말이다. 이쯤되면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가능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한국인들은 마스크 신화에 혀 있고 자신들이 최고라고 믿고 있다. 전염률에 있어서도, 초과사망 수치에 있어서도 세계 최하위 수준이지만 엄청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슨 감염병 자문위원장이라는 사람들, 감염병계의 권위자라는 교수들이 마스크를 끼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그저 끄덕끄덕.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렇다고 치자. 학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3월 개학이 다가온다.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해야 할 학생들의 입과 코는 여전히 닫혀 있다. 미신을 떨쳐 내고 학생들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할 교사, 교육청은 어디에도 없다. 꿀먹은 벙어리처럼 살아간다. 학습과 생활에 큰 장애 요소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한다. 그저 무슨 책임 같은 것이 있을까봐 아이들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 괴물 같은 마스크 집착은 학교에서 그 절정을 달린다.


마스크를 끼고 있으면 익명성에 안주하게 되고 수동적으로 대화에 임하게 된다.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으니 열패감과 상실감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물론 적극적인 일부 학생들이야 상관 없겠지만, 분명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 이에 대한 관찰도 여러 번 보도되었다. 제발 학생들의 입과 코를 자유롭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외면과 방치 속에 청춘이 시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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