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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맑은 수채화 같은 영화를 찾는다면

밋밋하기보다는 잔잔하게, 영화 <새해전야>

새해가 시작된 지 고작 10일 밖에 안 지났다. 연말부터 사람들이 2022년을 회고하고 보낼 준비를 하기 위해 마음의 짐을 단단히 하고 내려놓는 사람이 인스타그램에 눈에 띄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새로운 계획이라면서 공개적으로 선언을 하고 꼭 지키겠노라고 멋진 다짐을 한가득 풀어놓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수두룩 하게 보였다.


조금 속도가 느린 사람이라고 미리 밝혀둔다. 생각도 느리고 깨달음도 살짝 늦게 오는 사람이다. 다짐도 느리고 계획도 조금 느리다. 나만의 속도가 있다는 뜻이고 빠른 속도의 사람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예로 작년의 회고와 새해의 계획을 쉽게 세우지 않는다. 신중하고 무게 있는 사람도 아닌데 계획은 조금 여유 있게 짜려는 편이다. 가끔은 충동적인 행동을 일삼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이유는 없지만, 나의 새해 시계는 설날에 맞춰져 있다. 설날에 새해 계획을 짠다. 나만의 속도이자, 나만의 시계를 1년 단위로 움직인다면, 남들에 비해 타이밍은 조금 늦더라도 결코 늦지 않은 정박자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구정/ 신정의 기준에 맞출 뿐.


새해가 밝은 지 아직 10일도 안 된 시점에서, 영화 <새해전야>가 뒤처진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그런 것 같다. 이 영화는 나처럼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잔잔하고 무난한 사람들의 옴니버스식 영화 같다. 조금 자극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그냥 끄는 게 좋겠다. 나와 같이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알맞은 감성이었다.


새해전야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왔듯이, 무지하게 희망적이다. 잘 안 풀리더라도 카운트다운에 맞춰서 무조건 희망이 생겨나는 뭐 그런 거. 영화의 분위기는 연말이라 전반적으로 한껏 들뜬 듯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높은 텐션으로 느껴지긴 한다.


사실 영어 제목은 new year blues이다. 연말에는 살짝 지치기도 하고 형언할 수 없는 씁쓸한 감정이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 상태인 것을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사실 다가 아닐까? 12월 31일과 1월 1일은 24시간 차이라서 그 어떤 드라마틱한 바람도 그저 영화적으로 자극이 되는 소재일 뿐이다. 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적당히 희망적인 분위기로 변해가는 흐름이 담겨 있다. 영화를 끝내고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지점.  


내가 평론할 만한 사람은 아니기에 인물들의 연기력은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다. 무난하고 물렁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았기에 톡톡 튀는 캐릭터 자체가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는다. 어쨌든 모두가 사랑스럽고, 인간적이고, 빈틈이 많은 구석이 있다. 밉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어떤 캐릭터는 여전하고, 어떤 캐릭터는 실제와 많이 닮아 있었다.


스물아홉 살의 비정규직에 지친 진아(이연희)처럼, 과감하게 직장 동료와 만사를 제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떠날 만큼 무모하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았다. 이미 나도 스물아홉 살에 퇴사하고 과감하게 여행을 떠났으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사기를 당해 돈에 허덕이는 상황이 올 가능성도 낮고, 사건을 담당하다가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 지호(김강우)와 효영(유인나)처럼 엄청나게 운명적인 인연을 만나지는 않을 것 같고. 바라는 게 있다면 패럴림픽 선수 래환(유태오)과 그의 여자친구 오월(소녀시대 수영)처럼 서로의 존재를 재발견하면서 돈독하고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편이 현실적일 것 같다. 나도 철없는 연애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글쎄, 그래서 나는 올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좋을까. 여기저기서 많이 주워들은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하자” ㅡ 연말 시상식에서
“눈물 닦으면 에피소드” ㅡ 인기 팟캐스트에서
“이겨내야지” ㅡ 김호영으로부터

새해라서 엄청나게 대단하면 좋겠다거나, 무척 새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 조금 더 담백한 방향으로 2023년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다짐이 거창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목표는 확실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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