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보는 영월엄씨이 시작과 시대적 의미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금은 묘한 기분이 듭니다.
스크린 속의 인물이 저와 핏줄로 닿아 있는 분이라는 생각에 말입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꼭 한 번은 봐야 한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요새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이죠.
최근에 1560만을 찍었다고 하니 분위기가 정말 예사롭지 않네요.
한국에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홀로 움직여야 할 상황이 많습니다. 다들 바쁘니 같이 하기 힘든 거죠. 시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터라, 영화 같은 경우엔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그냥 혼자 가서 봅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왕사남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모셨던 엄흥도의 이야기입니다.
최근엔 워낙 많이들 언급되고 있는 역사이야기라 따로 언급하진 않아도 많이들 아실 듯싶습니다.
저 또한 관련 내용들을 이곳저곳에서 수집하고 익히고, 역사적, 인물적 배경 등등을 참고하면서 영화에 좀 더 몰두해 보려 준비를 하고 봤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는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제 조상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엄흥도(嚴興道, 1404년(족보)~1474년 2월 26일(족보))는 본관이 영월인 엄임의(嚴林義)의 12 세손으로 군기공파(軍器公派) 충의공계 파시조입니다. 저도 같은 엄씨인지라, 이 분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아버님이 자주 이야기 해주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단종의 시신을 모셨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하는 의구심을 어렸을 적에 있었죠. 나라에 공을 세운 것도 아니고, 뭔가 세상을 바꿀만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럼에도 이 엄씨 집안사람들은 이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엄씨 집안사람들만의 긍지였던 스토리가 이번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세상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네요.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
엄흥도의 충의는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식자층의 무모하면서 고리타분한 면이면서 동시에 유교적 명분과 충절의 화신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를 떠나서 나이 어린 한 인간을 지키려는 인간으로서의 연민의 감정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또 다른 해석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당시 중앙권력에 대한 지방 식자층의 조용한 저항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라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이런 식으로 표방한 것이 아닐까 싶고, 그게 무엇이든 인간의 도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무언의 저항이라고 보여집니다.
같은 엄씨 족보를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감정몰입이 되는 이 영화가 제겐 조금은 특별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겠죠. 지금부턴 엄흥도를 조상으로 기억하고 모시는, 우리 집안을 연결해주는 이 엄(嚴)씨라는 성씨에 대해서 조금 언급을 해볼까 합니다.
엄(嚴)씨는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입니다.
현재는 약 15만명(2015년 통계청 조사)이 우리나라에서 엄씨 성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엄씨의 조상이 되시는 엄임의(嚴林義)는 중국 당나라 현종때 사신(파락사波樂使)으로 신라 경덕왕 때 파견되었다가 내란으로 못 돌아가고 남게 되어 엄씨의 가계가 생겼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분의 아버님이 되시는 엄자릉(嚴子陵)은 중국 한나라의 대학자로 광무제를 도와 후한後漢건설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간혹 엄씨의 성을 가진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분들의 혈통이 저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좀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이런 이유는 중국분들과 이야기할 때는 이들과의 친밀감을 나타내기 위해 밑밥을 까는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학연지연을 그리 좋게 보지는 않지만, 중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실용적인 처세술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푸젠 성 쪽의 객가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이야기하는 엄씨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엄씨를 장(莊)씨에서 갈라진 성으로 보는 게 하나 있는데요, 춘추전국시대 초기의 동한 명제의 이름이 유장(劉莊)이었는데, 당시에는 황제의 이름 글자를 함부로 쓰지 못하는 관습(이를 피휘避諱 관습이라고 합니다)이 있었고, 그래서 장(莊)씨 일부가 같은 뜻 계열로 여겨진 엄(嚴)으로 성을 바꾸었다는 설명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씨 중의 일부는 다시 원래의 성씨인 장 씨로 돌아간 이들도 있었지만, 그대로 엄씨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이어온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고대 하나의 나라였던 엄국(嚴國)에서 나온 성'이라는 해석입니다.
엄국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지만, 고대 오래된 아주 작은 나라나 집단 이름이 성씨로 남아서 이어졌다는 설이죠.
이렇게 어찌하다 보니 엄씨의 뿌리를 중국에서도 관심 깊게 찾아보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예전부터 화교들 사이에서는 “장엄동종(莊嚴同宗)”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 '엄 씨와 장 씨는 같은 뿌리'라는 말이죠. 그래서 동성동본이 금지되는 시기에서는 혼인 때 조심해야 하는 성씨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땐 아버지로부터 영월 엄 씨와 영산·영월 신(辛)씨는 결혼을 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한반도의 엄 씨 유입과 연관된 내용인데, 당시 함께 들어와 함께 정착하면서 두 가문이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영월 신 씨의 시조는 신시랑(辛侍郞)이라는 분인데, 엄 씨의 시조이신 엄임의(嚴林義)와 같이 동행하고 같이 정착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이야 동성동본 결혼금지가 뭔 이야기인가 싶지만, 그래도 족보를 따지는 분들에겐 중요한 모양입니다.
그냥 참고적으로 옛이야기 하나 알고 있으면 좋을 듯싶어,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다시 영화이야기로 돌아와서,
개인적으론 이 영화가 이렇게 신드롬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작품성이든 마케팅이든 따질 필요 없이 이 시대의 관중들은 이 영화와 뭔가의 공감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어쩌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에 대중들이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요?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는 결국 지금 사람들이 인간다움의 마지막 기준을 찾고 있다는 사회적 신호일 수 있으니깐요.
인공지능이 더없이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
상식이라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힘과 권력의 힘으로 세계가 재편되는 이 혼란한 상황에서 지금 이 시대의 감정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성에 의미를 두고 그것을 지향하며 그렇게 자기 정제를 하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그곳에서 어떤 저항과 변화가 생길지 우려와 기대를 안으며 글을 마칩니다.
엄씨의 역사를 설명하는 영상 링크를 옮겨봅니다.
1. 영월엄씨의 역사 (영상)
2. 중국 엄씨의 역사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