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知天命)에 바라보는 세상
오늘 한 달 한번 있는 아침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상하이의 한인들 아침 모임이죠.
오늘 발표하신 분의 주제는 '(나의) 우왕좌왕 지천명'이란 제목으로 본인의 50세 맞이 인생철학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 돌아가면서 발언을 하던 중에 한 분이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귀엽다." 며 다들 웃으면서 반응하는 사이,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
'호호할머니'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참 묘한 거 같습니다.
호호할머니라는 단어를 몇십 년 동안 잊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만 그 상황에서 딱 떠오르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러면서 호호할머니의 음악과 이미지가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과연 내가 기억하는 그 호호할머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미지는 맞았지만, 명칭은 잘못 기억하고 있었더군요.
정식명칭은 '호호아줌마'
'빙글빙글 아줌마 투덜투덜 아저씨, 아줌마가 펼치는 꿈속 같은 이야기, 꼬마 친구 숲 속 친구 모두 모두 즐거워, 꼬마 친구 숲 속 친구 모두 모두 즐거워...'
이렇게 이어지는 노랫말 기억하시나요?
흥얼흥얼 자주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기억하신다면 1984년 혹은 1985년에 대한민국에 사셨다는 이야기네요. ^^
호호아줌마는 노르웨이 동화를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은 1984년 10월 29일부터 1985년 7월 16일까지 저녁 6시 50분마다 KBS1을 통해 130회 방영되었습니다.
제가 이 시기 어린 시절을 지냈기에 이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어느덧 세월이 지나 제 기억 속에서는 '호호아줌마'가 '호호할머니'가 되어 버렸네요.
과거 어렸을 적엔,
미디어가 지금에 비해서는 극히 제한적이었죠.
그래서인지 만화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보려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또래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었던 시기죠. 너와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살아온 세대라는 동질감은 끈끈함을 만들어줍니다. 시대적 공감은 '시간의 선물'이죠.
같은 시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끼리 옛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즐겁습니다.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꽤 많은 기억들을 소환하게 됩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미래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변화는 과거의 생각을 넘어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 줍니다.
여기에 편승하지 못한다면 나이 먹을수록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만을 상대하게 되겠죠.
그러다 보면 얻을 게 없고 생각이 박제되어 버립니다.
'청년은 미래를, 중년은 현재를, 노인은 왕년을 말한다.'라고 하죠.
딱 그렇게 됩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어떤 한 시기에 유난히 사상적 개념들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대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고, 동양에서는 춘추전국시대 공자, 맹자와 같은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활약한 시대를 묶어서 '축의 시대(Axial Age)'라 지칭하기도 합니다. 시대적 배경은 분명 다르지만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를 아우르는 이 시대를 통칭합니다.
이렇게 그리스, 중국,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 중요한 철학적, 종교적 사상가들이 등장하였으며, 이들의 사상은 이후 인류 문명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불교도 대략 기원전 5세기경이니 이 시대에 속합니다.
이렇게 오래전에 발전된 사상적 개념들은 2024년 현재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죠.
지금까지의 인문학은 이들 사상의 '해석'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했고, 공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자왈 맹자왈......
많은 지식인들이 '해석'에 매달렸고, 그 원문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제2의 축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양자역학, 인공지능, 생명공학 기술로 대변되는 새로운 개념의 과학기술들이 기존의 우리 관념들을 흔들어 놨습니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인식의 변환을 이끌고 있기에 지금 이 시대를 '제2의 축의 시대'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리법칙과 다른 양자역학의 세계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계두뇌의 탄생
신의 영역인 생명과 노화를 개념을 바꾸고 있는 생명공학
이런 기술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과 가치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호호아줌마'의 감성을 가지고 신기함을 바라다보는 것이 아닌, 갑자기 스푼만큼 작아지는 원리와 기술을 탑재해서 미시세계를 여행할 준비를 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늙음'을 자연적이기에 거부할 수 없는 세월의 과정이라는 인식을 벗어나 늙은 세포를 젊게 만들고, 영구치가 새롭게 나는 그런 시대에 와 있기에, 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 없이는 미래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호호아줌마가 호호할머니가 되어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해 있으면 결국은 술자리 안주거리가 될 뿐입니다.
오늘 아침 주제가 '지천명(知天命)'이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과거 공자시대의 지천명은 삶을 얼마 남겨놓지 않을 때였는지 모르지만, 현재의 지천명은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세대입니다. 그럼에도 과거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 수련이 부족하면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를 것입니다.
아직 지천명에 오르지 않은 이들과 이미 이 시기를 지난 누구라도 하늘만을 쳐다볼 것이 아닌, 세상의 변화를 읽고 내게 적용하려는 줄기찬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진정한 '하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지천명(知天命)은 여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남자들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하늘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라죠. ^^
좀 더 일찍 깨달은 현명한 분들이 계시면 박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