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출장을 제외하고 여행으로 해외를 나가 본 적이 없다. 못 간 이유가 열 가지도 넘는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없었다.
휴가 때 해외를 갈 만큼 여유 있는 직장생활을 못했다. 짧은 휴가를 주는 회사에 다녔었고,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는 회사에 다녔다. 휴가는 말 그대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나의 권리였는데 그게 잘 안됐다. 마음이 불안해서다. '혹시'라는 마음 말이다. '휴가 간사이에 급한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감은 연락 안 되는 곳에 가는 것을 망설이게 했고 자연스럽게 갈 생각을 못했다. 물론 같이 갈 사람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외로운 인생을 살았구나...) 혼자만의 자유여행도 할 수 있었지만 '혼자 가면 뭐하나'라는 생각이 더 많았다. '해보면 달랐을 텐데'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는 의미는 그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제일 컸던 건 'OO가 없어서'였다. '실천의지', '혹시'라는 불안감 등의 복합적인 요소가 모여 'OO 해야지' 보다는 'OO가 없어서 안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귀결된 적이 많았다. 그 시간만큼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대안을 찾고 무언가를 했는데 완전하지 않았다. 결국 이럴 거면 처음 생각대로 할걸 하는 생각의 반복이었다.
생각하고 마음먹은 것을 그때 안 하면 후회가 남는다. 어영부영 미루다 보면 그만큼의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결국 그 이상의 시간과 돈으로 후회했던 일을 마무리한다. 반복된 패턴 중 하나다.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상 항상 마음속에 여지가 있다. 여지만큼 대안을 찾아보고 투자도 해보지만 말 그대로 여지인지라 100%가 아니다. 이제 그것을 바꾸려고 한다.
거창하게 큰 거부터 할 생각도 없다. 소소하지만 만족을 줄 수 있는 일부터 할 것이다.
적금을 다시 시작했다.
첫 월급부터 적금을 시작했었다. 자연스럽게 돈이 모였다. 돈이 모이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있었다. 미래를 계획하고 이대로만 지내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목적을 갖고 시작한 일이 있다면 그 과정이 즐겁다. 눈에 보이는 만큼 즐거움도 커진다. 자신감의 원동력이었다.
시간이 흘러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겪고 나서,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이런저런 이유로 적금을 들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당장 결제할 것도 많아서. 안 좋은 일을 겪어서.
이유가 정당하고 합리화되니 적금을 안 드는 게 맞았다. 적금을 통해 난 내 수입과 지출을 정리했다. 그걸 안 하니 지출에 둔해졌다. 예전 같으면 신경 써서 관리할 부분도 소홀해졌다. 'OO가 없어서' 못했던 일들이 'OO가 없어서' 많아진 것이다. 쓸데없는 지출 말이다. 오랜만에 통장정리를 하고 보니 한심했다. 이런저런 핑계가 모여 큰 낭비가 됐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몰랐다. 차라리 그 돈으로 OO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