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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JI May 29. 2020

이색적인 독일의 케잌문화

독일에서 회사다니기



독일의 회사문화. 세 번째 키워드는 뜬금없게도, 케잌(Kuchen)이다.


케잌? Cake?


네, 우리가 생일에 먹는 그 케이크 얘기입니다.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니 달라진 것중 하나, 몇 해가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하나가 있다면 바로 케잌굽기, 베이킹이다.


회사가 베이커리도 아니고 왠 케잌굽기?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독일에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자연스레 익숙해져야 할 케잌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케잌이 필요한 첫 번째 순간


Hi, I'm Youjin. Nice to meet you!  


바로 첫 입사 또는 이직 후 새로운 팀에 합류했을때이다. 자신이 팀에 새로온 팀원이라면, 통상 첫 근무일을 기준으로 한두달 이내에 축하케잌을 가져가 동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 독일 회사에서의 작은 신고식 문화이다. 뉴비(Newbie)로서의 자축 의식이자 앞으로 함께 일할 동료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뜻에 작은 뇌물이라고나 할까?


만약 새 팀원이 몇 달이 지나도 케잌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짖꿎은 동료 케잌~ 케잌~ 노래를 부르며 자신은 아직 새 팀원의 케잌을 맛보지 못했음을 상기시켜 줄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무서운 사실 하나는 이 동료, 농담 반 그리고 진담 반이라는것).



케잌이 필요한 두 번째 순간


Happy Birthday! Alles Gutes zum Geburtstag!


바로바로 다른 누구의 생일도 아닌 나의생일날! 응? 아니 내 생일인데 케잌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케잌을 가져가야 한다고? 그것도 생일 주인공인 바로 내가 내 생일케잌을 만들어서? 당황스럽겠지만 그렇다. 독일은 자신의 생일날 본인이 직접만든 케잌을 직장에 가져와 동료들과 나누어먹고 축하도 받는 문화가 있다. 


이 문화는 사실 독일의 생일축하 방식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가기도 하는 것이 독일에서는 생일을 미리 축하하면 나쁜 운이 깃든다고 믿어 생일 당일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생일축하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따라서 당사자가 본인의 생일날 케잌을 들고와서 "오늘 내 생일이야" 하지 않는이상 친한 동료를 제외하고는 팀원들의 생일을 미리 알기가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케잌을 가져와 자신의 생일을 직접 알리는 행위는 독일 문화에서 일종의 작은 배려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셀프 생일축하 케잌의 뜬금없는 장점이 있다면, 의도치 않게 정말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다는 점이다. 연관부서 혹은 다른 팀에 일을 보러온 모르는 직원이라 할지라도 사무실에 놓인 케잌을 보면 누구의 생일인지를 물어보고 꼭 당사자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한마디씩 건네줄 것이다. 자신이 만든 케잌이 맛있으면 맛있는대로, 맛 없으면 또 맛 없는대로 재밌는 칭찬이나 농담을 주고받기도 해 하루종일 케잌이 없어질 때까지 생일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생일날 케이크 협박당하는 우리 보스님


케잌이 필요한 마지막 순간 (또 있습니까?)


Thanks for everything and all the best for your future!


마지막은 기존에 있던 팀을 떠나게 되었을 때이다. 굿바이 세레머니라고나 할까? 기존에 있던 팀을 떠나 다른팀이나 회사로 이직을 할 때 또는 퇴사를 할 때에도 케잌을 가져와 그동안 같이 일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문화가 있다. 이쯤되면 이놈의 케잌 세레머니가 귀찮아서라도 한팀에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사실은 이것이 케잌 문화의 진짜목적인지 의심스럽다). 처음 팀에 합류했을때 가져오는 케잌이 귀여운 뇌물 이였다면 팀을 떠날때 가져오는 케잌은 그동안 고마웠다는 작은 감사의 표시이다. 회식문화가 없는 독일에서 굿바이 케잌의 나눔은 그 나름대로 송별회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독일에서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케잌을 구울 일이 생각보다 많다. 나도 최소 일년에 한번은 생일케잌을 만들어 가야하기 때문에, 생일이 다가올때면 이번엔 무슨 케잌을 만들지 Chefkoch.de (독일의 레시피사이트)를 뒤지며 숱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내가 만들려고 했던 케잌을 다른동료가 한 발 먼저 가져와버리는 순간, 후.. 그 순간만큼 당황스럽고 동료가 원망스러운(!?) 순간이 없다. 물론 장점은,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만들 수 있는 케잌레시피가 늘어난다는 것. 참고로 독일에서는 케잌을 만드는 문화가 흔해, 일반 슈퍼마켓만 가도 베이킹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케잌 그냥 베이커리에서 사가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 베이커리에는 한국처럼 작고 예쁜 케이크가 없을 뿐더러, 케잌문화의 핵심은 자신이 직접만든 케잌을 동료들과 나누는 것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맛없는 케잌이라 할지라도 이왕이면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 독일 문화 특성상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개인의 정성이 들어간 셀프메이드에 훨씬 큰 가치를 두기도하고 검소한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5유로에 해결이 가능한 셀프메이드 케잌 대신) 30유로를 호가하는 베이커리의 주문케잌이 적잖이 부담스럽고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셀프베이킹이지만, 코로나 덕분에 집에서 보내게 된 나의 이번 생일! 내심 기뻐하던 나에게 날아온 동료의 문자. 


생일축하해! 우리도 빨리 사무실에서 봤으면 좋겠다. 아, 생일케잌은 잊지말고 (하트)


이런 끈질긴 사람들.. 재택근무가 좀 더 길어지길 바래보는 재택근무 11주차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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