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진 May 12. 2022

운전을 못해도 괜찮아요

런던의 명물이 빨간 2층 버스라면 피지의 명물은 유리창이 없는 오픈 윈도우 버스지!


유리창문 없이 뻥 뚫린 피지의 버스는 비가 오면 창가에 앉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서둘러 돌돌 말아 얼려 놓은 천막 같은 가림막을 풀어 내린다. 가림막이 내려진 버스 안은 어두컴컴하고 습도가 80퍼센트 이상은 되는 듯 습하기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비가 오면 제습기다 에어컨이다 쾌적 뽀송한 환경을 유지하고 습도에 따른 불쾌지수를 먼저 확인하는 나지만 이 버스 안에서는 나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불쾌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

 

비 오는 날 초록 천막이 내려진 오픈 윈도우 버스


타운에서 버스가 지나가면   지나간다 하고 알리듯 요란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창문  칸칸이 앉은 승객들은 하나같이 옛날 우리네 엄마들 파마머리처럼 동그란 파마머리를 똑같이 하고 쪼르륵 앉아있다. 버스가 울퉁불퉁한 작은 요철을 만날 때면 모두 같은 높이로 들썩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매우 유쾌하다. 버스가 지나가는 잠깐 동안의 모습은 마치 쿠바 영화를 보는 듯했다. 음악도 흑인 음악인  쿠바 음악인  가사는 몰라도 여긴 여름나라라고 말해주듯 경쾌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타운에  때는 주로 버스를 탔지만  버스 안에 외국인은 우리 밖에 없다. 버스카드까지 만들어 미리미리 충전해서 다니는 우리를 피지  친구 (JOE) 자랑스러워했다.


학교 후 버스 타고 타운 가서 간식 사 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여행뿐만 아니라 동네를 걸어도 종종 외국인들을 보는 게 어렵지 않은데 피지의 길에서는 유러피안을 보기 힘들었다. 아주 주관적인 생각이겠지만, 피지를 가면 갈수록 내가 느낀 것은 피지언들이 주로 가는 곳이나 이용하는 교통수단과 유러피안의 그것과는 교집합이  많지 않다는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곳이지만 서로 주된 생활권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차로 4시간이 걸리는 공항에서 숙소까지나 주말에 리조트를 가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처음 홈스테이 주인분이 소개해 주셨던 조슈아 아저씨의 택시만을 이용했다. 흉악범죄는 크게 없으나 소매치기나 택시 안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작은 범죄들이 있기에 늘 안전하게 우리를 데려다주는 믿음이 가는 죠수아 아저씨께 연락을 드렸다.


가끔 시내에서 타는 택시는 거리도 멀지 않고 비싸지도 않아 종종 이용했다. 청결이라는 말은 사치이고 이런 택시가 운행은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은 택시들이 많았다. 얼핏 봐도 20년은 넘어 보이는 차들이 아직도 달린다니 그 모습이 신기할 정도였다. 지금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엘란트라 같은 차들은 먼바다를 건너 여기에서 새 삶을 살고 있었다. 이미 떨어진 지 오래된 사이드 미러는 청색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지만 그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이고, 목적지 근처에 다다랐을 때 타이어에 바람이 다 빠졌는지 차가 멈춰서 내려야만 했던 날도 있었다.


갑자기 비를 만나 택시를 잡으려고 아이들과 큰 나무 아래에 서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택시 한 대가 반대편 차선으로 지나가는데 택시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은 채 우리 셋은 그 택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가 오는데 창문을 열어 놓고 드라이버는 한 손은 핸들을 잡고, 한 손은 창문 밖으로 내밀어 완전히 분리되어 작대기 같은 와이퍼를 손으로 왔다 갔다 수동으로 움직이며 비를 씻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차나 운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이들도 그 모습을 보며 놀람과 동시에 깔깔 웃음이 터졌고 드라이버 역시 우리를 바라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쿨하게 웃고 있었다. 택시가 지나가고 나서도 우리는 택시를 잡아 집에 갈 생각도 잊은 채 한참을 부슬 비를 맞으며 아이들과 서서 웃었다.


무엇하나 부끄러운 것도 없고 행복한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