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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얼 Dec 29. 2024

[그데담 051] 꿈과 유영






 “갑자기 든 생각인데, ‘유영’이랑 ‘꿈’이랑 차이가 뭐예요?”


 “지금 뭐 보고 있는 건데?”


 “도령 집.”


 “여기까지 와서 그걸 왜 보고 있어.”


 “아무튼. 대답.”


 “여기까지 물어본 사람은 처음이네. 차이에 대해 생각 많이 해봤나 보다.”


 “다른 소리 말고, 대답.”


 “별 차이 없어요. 느낌이나 뉘앙스는 비슷. 둘 다 관찰자 입장이니까. 흐름이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름. 꿈이 더 선명한 현실감이 있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뭘 할 수는 없어.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라는 사람 안에 갇혀있는 기분이지. 지금 나를 ‘의식의 나’로 축소규정 한다면, 꿈속은 무의식이고 꿈속의 나는 ‘무의식의 나’여서 의식의 나는 그 안에서 지켜만 보는 기분이야. 반면 유영은 꿈보다 덜 선명하고 현장감도 강하지 않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내가 돌아다니는 거니까 흐름이나 속도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막 날아다니거나 집채만 한 바위를 들어 올리는 등 현실적이지 않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그리고 주제를 정할 수 없다는 것은, 같음. 둘 다 입 다물고 봐야 하지. 하지만 약간의 수정이나 몰이가 가능하냐에 대해서는, 다름. 아까 말한 대로 과하지 않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만 부분적으로. 유영은 굉장히 현실적이지. 꿈은 비현실도 비상식도 자유로운데 내가 정하거나 변형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끝나고 나서 그 과정을 전부 기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름. 꿈은 복불복이고, 유영은 다 기억해. 현실을 기억하는 것과 똑같지. 그래서 각자 얻어오는 것은 비슷하지만 종류와 폭이 많이 달라.”


 “애매하네. 그럼 꿈인지 유영인지는 어떻게 구분해? 저 다른 점으로?”


 “그런 셈이지. 일단 꿈은 속도 조절도 안 되고,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이나 몰아가는 것도 힘들어. 무엇보다 당시의 느낌이 완전 달라. 깨고 나서 생각해보면 절대 꿈일 수밖에 없는데, 참 웃기게 그 당시에는 꿈인지 절대 모르지. 끝나고 나면 기억도 선명하지 않고. 그게 가장 크지.”


 “그러니까 깨고 나면 안다?”


 “정확히. 유영은 하는 순간 대부분 ‘아, 유영 중이구나’ 하고 알아. 일부러 들어간 경우는 당연하고, 어느 순간 불쑥 빠지듯 들어갔을 때도 바로 알 수 있지. 물론 가끔은 ‘이게 뭐다’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나오면 명확하지. 꿈 특유의 느낌도 없고 기억이 온전하니 착각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커. 술 취해서 건식 사우나 내부를 비틀비틀 배회하는 것이 꿈이라면, 멀쩡한 정신으로 습식 사우나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유영인 셈이야.


 “그렇게 말하니 무슨 느낌인지 확 온다.”


 “나도 감탄하고 있었어. 이 비유 제법 괜찮은데.”


 “그럼 유영의 부작용처럼, 꿈의 부작용은 없어요?”


 “...음.”


 “정리 중?”


 “아니, 자세히 생각 안 해봤는데.”


 “왜?”


 “뭐가 왜예요. 생각 안 해볼 수도 있지.”


 “...그건 그렇지. 영 못 들어본 말이라서, 순간 엉뚱하게 되물었네.”


 “나 좀 당황했어. 그래 보여?”


 “응, 완전. 가스 불을 끄고 나왔나 하는 얼굴인데.”


 “음... 당신에게 대답을 못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가.”


 “나도 처음 본다.”


 “꿈에서 떨어지는 찌꺼기의 처리는 전적으로 망각에 의존하고 있어서, 잠재적 부작용이 뭘까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해봤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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