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도령 글 읽다 보면.......”
“읽다 보면?”
“가장 의외인 게 뭔지 알아요?”
“모르지, 나야.”
“이게 참 재밌는 게, 도령 알기 전이랑 알고 나서랑 같은 글이 되게 다르게 온다?”
“오, 재밌어 보이는 주제다. 예를 들면요?”
“...예 들긴 좀 애매한데.”
“그것만으로는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좀 더 보충 설명을 하자면... 말하자면... 이런 거야. 도령을 자세히 알기 전에 도령 글 보면 ‘이렇구나’ 싶었어. 근데 도령이랑 알고 한참 지나서 다시 도령 글을 보면....”
“으... 미안한데 말 자르고 싶다.”
“고마워. 말하면서도 이게 아까랑 뭐가 다르지 했어.”
“정리가 덜 된 거면 더 하고 말해요.”
“정리가 안 된 건 아닌데 여기서 맴맴 돌아서 그래요.”
“그게 정리가 덜 된 거야, 이 여자야.”
“...그러네. 아무튼 가장 의외는 내 기준에 도령 글은 구어체 같고, 말은 문어체 같아.”
“반대 아니라 제대로 말 한 거죠?”
“응. 글이 말 같고, 말이 글 같아.”
“그렇게 느꼈구나. 나는 일단 문어체랑 구어체가 크게 다르지 않긴 해.”
“그래?”
“그렇지 않아? 나는 말도 글처럼 하니까. 글도 말처럼 쓰는 부분도 있지만 말을 글처럼 하는 게 훨씬 크니까 문어체랑 구어체 간의 차이가 크지 않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고. 근데 내가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그게 서로 반대인 것 같다는 거야.”
“의외인 게 많기도 하네. 뭐가 반대라는 거야?”
“...내 식대로 얘기할게요.”
“처음부터 제발 당신 식대로 얘기해줘요.”
“나는 처음에... 그러니까 도령을 잘 모른 상태로 글부터 봤을 때 굉장히 무뚝뚝한 사람인 줄 알았어.”
“어떤 면에서?”
“뭐라고 해야 하지? 무뚝뚝하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되게 말하듯 쓰는 거에 비해 글이 굉장히 딱딱하고 어렵더라. 무엇보다 배려가 없다고 느껴졌어.”
“글에?”
“응. 그래서 글 쓴 사람의 성격도 그렇겠거니 했거든. 근데 막상 만나보니까 별로 안 그렇더라고. 별로 무뚝뚝하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았어. 아! 대신 말은 엄청 어려웠어. 처음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잘 이해도 안 돼서 몇 번씩 되새겨야 약간 알아듣겠고. 이건 사실 지금도 그래. 그래도 내 생각만큼 무뚝뚝하거나 딱딱한 사람은 아니었던 거야.”
“처음의 나는 글도 어렵고 말도 어렵고, 그냥 죄다 어려운 사람이네.”
“근데 웃긴 건 도령을 알고 나서는 말보다 글이 쉬워. 정확히는 말은 여전히 어려운데 글은 점점 쉬워지는 거야.”
“아하.”
“원래 내가 가진 상식 상 ‘말은 쉽고 글은 어렵다’거든요. 말이 글보다 쉬워야 정상인 거야.”
“그래?”
“실제로 그렇잖아. 문어체보다 구어체가 훨씬 쉽잖아.”
“쉽다기보다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시간 단위 대비 정보 전달량 차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렇게 알았고 실제로 그랬어.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근데 도령만 만나면 이게 반대야. 도령 건 말보다 글이 쉬운 거야. 근데 이게 쉽다는 개념이.... 뭐라 설명할지 잘 모르겠는데.”
“한 마디로 힘들면 예를 들어봐요.”
“예를 들어.... 내가 뭔가 궁금하면 도령에게 자주 물어보잖아요. 그럼 도령은 그걸 되게 자세하게 풀어서 내가 이해하기 쉽게 말해줘요. 그렇죠?”
“되도록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죠.”
“근데 그게 나한텐 어려워. 풀어줘도.... 사실 잘 모르겠어. 한참 지나고 나면 약간 이해가 되는데, 사실 그 자리에선 알아듣는 게 거의 없어.”
“그렇구나.”
“근데 도령 글을 보면 사실 말만큼 자세하지 않잖아요. 근데 그건 당연한 거 같아.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물어봐서 답을 듣는 게 아니니까. 그냥 쭉 써놓은 걸 내가 읽는 거잖아. 그러면 말보다 어려워야 하는데 실제 읽기는 좀 힘들어도 이상하게 알아듣기는 쉬워.”
“...지금 당신 말이 꼬이는 거야, 아님 내 귀가 꼬이는 거야.”
“꼬이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안 꼬였어요. 그냥 내 식대로 말한다고 했잖아.”
“정리를 해보고 싶지만 이건 나도 손을 못 대겠네. 그래서 뭐가 더 좋다는 거예요?”
“더 좋은 건 없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렇구나. 그럼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는 거예요?”
“그거야 도령 마음이죠. 아무튼 내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을 꺼냈는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아서 좀 찜찜하네.”
“좋아. 그럼 구어체 스타일로는 정리가 안 되니까 문어체 스타일로 정리해야겠다.”
“뭐가 다른 거야?”
“말하듯이 하나씩 주고받아도 지금 정리가 안 되잖아. 그러니까 방금 당신 말을 쭉 정리해서 한 장, 그리고 지금부터 할 내 말을 쭉 한 장. 이 두 장의 종이를 붙여보자는 말이지.”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요.”
“......”
“정리 중?”
“정리 중. 근데 방금 왜 소통이 잘 안 된 건지는 알겠다.”
“우리 방금 소통이 안 됐어요?”
“정확하게는 서로 이해가 느렸는지.”
“왜?”
“지금 말해줘요? 아니면 다 정리하고 말해줘요? 이해는 다 정리하고 말하는 게 쉬울 텐데.”
“지금. 궁금해.”
“그래. 나중에 글로도 정리해서 올릴 테니까 당신 말대로 쉬운 건 글이 낫겠지.”
“응.”
“말로도 최대한 쉽게 하면, 당신은 드문 케이스야. 지금껏 이 주제를 사람들과 몇 번씩 나눴는데 당신이 그들과 반대라서 내가 금방 흐름을 잡지 못했어.”
“보통 사람들은 나랑 반대로 생각한다고?”
“그렇죠.”
“다른 사람들은 당신 말이 쉽고 글이 어렵대?”
“대부분은.”
“왜?”
“그냥 사람마다 다른 거지. 근데 이렇게 말하면 납득은 되는데 이해는 안 되죠?”
“응.”
“일단, 나는 아까 말했듯이 문어체랑 구어체의 차이가 크지 않아요. 나한테 생각, 글, 말, 이 셋은 한끝차이거든. 일렬로 늘어선 연장선 같은 거예요. 최초에 생각이 있고, 그걸 끄집어내는 곳이 종이 위면 글이고 허공이면 말인 거야. 출력하는 하드웨어가 손이냐 입이냐 단지 그 차이일 뿐이야.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찢으면 수제비고 칼로 썰면 면인 것처럼.”
“응.”
“그렇게 말과 글의 구분이 없으니 변환도 간단해. 사실 변환이라고 부를 것도 없지. 그냥 내 표현 방식은 네 가지뿐이야. ‘생각-말’이 하나, ‘생각-글’이 둘, ‘생각-글-말’이 셋, ‘생각-말-글’이 넷. 나오는 건 말과 글 두 가지 방법뿐이지만 중간 과정까지 포함하면 이렇지. 이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똑같고. 근데 나는 저 넷이 거의 같은 모습이야.”
“...아까 한 말이랑 같은 거 아닌가?”
“맞아요. 같은 내용인데, 앞에 말한 건 방식이고 뒤에 말한 건 방식에 연동되는 특성이야. 무슨 말이냐면, 내가 이렇기 때문에 변환 과정 끝에 따라붙는 어떤 특이사항이 있다는 말이야. 앞서 말했듯 나는 생각, 말, 글이 거의 같은 사람인데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 특성이야. 원래 조금씩 다른 건데 내가 임의로 비슷하게 맞춰놓은 거지. 그렇다면 원래 생각과 말과 글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고, 그것은 조금씩 다르고, 그래서 드러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는 말이겠죠?”
“그렇지.”
“아까 당신이 말했듯이 보통의 경우에는 말은 쉽고 글이 어려운 것처럼. 모든 말과 글이 그렇지는 않지만 당신에게는 어쨌든 그런 것처럼 말에도 특성이 있고 글에도 특성이 있지. 내가 생각하기에 말도 글도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보편적으로 부여되는 각자의 속성이 있지. 그게 말은해설적이고 글은 함축적이라는 거예요.”
“음.”
“물론 이것도 똑같아. 반대로 말이 함축적이거나 글이 해설적일 때도 있겠지. 근데 내가 보기에는 주로 그런 특성을 띄게 되는 것 같아.”
“왜?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글이 드러나는 환경과 말을 접하는 상황 탓이겠지. 우선 글은 그것을 펼칠 장소도 읽는 환경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잖아. 실시간적인 리액션과 문답도 어렵고. 그러니 정해진 공간과 시간 안에 뜻하고자 하는 바를 딱 집어넣어야 하지. 자연스레 말보다 함축적이게 돼. 반면 말은 그런 제한에서 글보다 자유롭잖아. 물론 말도 제한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종이 위의 글보다는 시간과 장소 제한이 덜한 편이니까. 실시간으로 문답이나 리액션도 오갈 수 있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해설적이 되는 것 같아. 아주 쉽게 예를 들어봐도 메시지랑 전화를 비교해보면, 같은 내용을 전해도 그 양이나 시간 차이가 크잖아.”
“아무래도 글로 하는 것보단 말로 하는 게 쉽겠지. 말이야 빨리 줄줄줄 할 수 있는데, 글은 쓰거나 읽는데 오래 걸리니까.”
“그렇지. 그래서 의견이 빠르게 오가는 상황은 글보다 말이 유리한 거야. 급하게 이런저런 논의를 해야 할 때 메신저를 켜는지 전화를 거는지만 봐도 그렇잖아. 내용 전달에 속도 차이가 있으니까. 글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오래 걸리지. 말은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빠르고.”
“그치.”
“그렇게 접하는 환경, 각자 가진 특성, 그리고 전달에서의 상황 등등을 종합해보면 말은 해설적, 글은 함축적이 되는 거야. 말은 빠르고 전할 수 있는 양도 방대해. 그리고 다양하지. 근데 글은 느리고 같은 시간 대비 전달량도 적어. 실시간으로 주고받기도 어렵거나 느리고. 각자 분명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거야. 게다가 말과 글이 가진 이 특성에 우리는 오랫동안 익숙해졌거든. 그래서 설령 둘이 같은 환경과 비슷한 상황일 때도 드러나게 돼. 근데 중요한 것은, 나한테는 이게 같아야 한다는 거야.”
“아. 그래서 문제구나.”
“실재와 이상의 괴리인 셈이지. 엄연히 다르지만 나는 같다고 여겨야 하는 거야. 게다가 단지 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표현하고 비슷하게 작동되도록 해야 돼.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하겠어.”
“말을 줄이고 글을 늘린다? 도령 표현대로면 말을 덜 해설적으로 하고, 글을 덜 함축적으로?”
“정확해요. 특성도 양도 전달시간도 다른 두 개를 맞추기 위해서 나는 각자에게 반대의 특성을 부여하는 거예요. 그래서 평균화시키는 거지. 그래서 나는 보통 말을 줄이고 글을 늘려요. 말을 함축적으로 하고 글을 해설적으로 쓰는 거지.”
“그런가? 전혀 그렇게 못 느꼈어. 평소 나한테 말하는 거 보면... 도령 식대로 표현해서 해설적이라고 느꼈는데.”
“그것도 맞아. 다른 사람에 비해 당신에게는 굉장히 해설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해. 근데 습관상 원래 내 말은 함축적 요소를 가지고 있지. 그래서 유심히 보면, 할 말을 미리 정리해서 신중하게 말하는 게 아니면 당신에게 하는 말은 대부분 해설적이 아니라 단지 함축적인 것들을 여러 가지 많이 늘어놓은 거야. 이게 당신이 내 말이 어려운 이유, 첫 번째.”
“음.”
“이 다음부터는 그냥 쭉 말할게요. 어쨌든 나는 그런 이유로 말은 함축하듯 줄이고 글은 해설하듯 늘려요. 평균을 맞추려고. 그리고 여기에 다른 이유도 하나 있어. 예부터 들어보자면 우리 지난번에 후회에 대해 이야기 했던 거 기억나요?”
“응.”
“그 날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하면 ‘내가 생각하는 후회의 정의, 그리고 대처와 활용’ 이거지?”
“응.”
“만약에 내가 그걸 당신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면 그럼 아마 한 장 안에 다 담을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 글이니까. 근데 그때 우리 말한 건 거의, 사오십 분 했나? 엄청 길었고 나 엄청 말했지. 그건 말이라서 그런 것 같아. 물론 글로 먼저 쓰고 그것을 단순히 읽으면 아마 5분도 안 걸렸을 거야. 근데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해서 후회에 대한 다른 소리도 나오고 과거에 있었던 관련 이야기도 하고 질문을 받으면 그에 대한 대답도 했지. 생각해보면 후회와 상관없는 말은 안 했어. 근데 그와 관련된 다른 개념이나 생각들도 많이 말했지. 그러다 보니 몇 십 분이 되어버린 거야. 그래서 그 날 했던 말을 결국 종합해보면 무슨 이야기였을까. 결국 아까 말했던 ‘내가 생각하는 후회의 정의와 대처와 활용’이잖아.”
“아.”
“이게 주제에 대한 글과 말의 다른 특성인 거지. 말은 놔두면 자꾸 길어져. 더욱 해설적이 되는 거야. 글도 길어질 때가 있어. 예전에 써놓은 글을 보다보면 새로 추가하고 싶은 부분이 생기니까. 근데 대화 중에 말이 늘어나는 것보다는 훨씬 덜해. 오히려 놔두면 줄어들 때도 있어. 다시 보고 이 부분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덜어내는 경우 역시 많으니까. 그래서 놔두면 놔둘수록 서로 격차가 벌어져. 나도 가끔 정신 놓고 말하다 보면 말이 엄청 길어지니까. 말하는 걸 좋아하고 또 할 말도 많고. 게다가 주제 안에서 길어지기만 하면 다행이지, 내용이 바뀌고 건너뛰었다가 돌아오기도 해. 그래서 우리 자주 그러잖아. 이야기 중에 삼천포로 빠지는 거.”
“맞아, 도령 그거 좀 심해.”
“그러니 이건 결국 전달률의 문제야. 말을 많이 할수록, 또 다른 주제와 섞이거나 번갈아 나올수록, 원래 하고자 하는 그 정확하고 협소한 특정 주제를 한눈에 담기 어려워는 거야.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해도 전하고자 하는 바가 점점 흐릿해지지. 하도 여러 말을 꺼내니까. 보니까 지금도 그게 엄청 심해. 글로 썼으면 한 장은커녕 반 페이지도 안 나올 주제에 대해 말을 지금 이렇게 많이 하고 있잖아.”
“음.”
“그래서 내가 말을 함축하고 글을 해설하는 두 번째 이유. 말은 할수록 해설적 되먹임을 할 여지가 많아 뚜렷한 주제 전달을 위해 함축해. 말에 대한 부분만 이야기했지만 글도 그래. 글은 상대적으로 해설적 되먹임할 여지가 적어. 반대로 놔두면 함축적 되먹임을 할 여지가 더 많아. 우리처럼 나눈 말을 담화라는 글로 변환하고, 그 글을 보면서 다시 말로 소통을 하고, 그 말을 별첨으로 글 뒤에 다시 추가하는 등, 말과 글을 서로 되먹임하는 일은 흔하지 않잖아. 보통의 글은 쓰고나서 놔두면 그대로거나 짧아져. 더 함축적이 되는 거야. 그러니 말없이 글만 보는 상대의 이해를 위해 해설하는 거야.”
“우리가 하는 스타일이 흔하지는 않지. 나도 도령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렇게 해본 적 없었고.”
“게다가 내가 주로 다루는 주제는 익숙하고 간편하고 가벼운 주제는 아니잖아. 보통 어렵지. 게다가 사상이나 추상, 개념과 가치는 개인의 견해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과 의미가 돼요. 물론 곡해나 오해의 여지도 많지. 그래서 난 어려운 주제의 모호한 내용을 글로 쓸 때면 해설적으로 늘려. 평균을 맞추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까 말한 대로 좀 더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놔두면 더 줄어들어서 오해 받거나 곡해되지 않게. 내 자구책이자 이것을 읽는 사람에 대한 나름대로의 배려야.”
“응. 근데 지금 이거도 나중에 정리해서 올릴 거죠?”
“아마 그러겠지?”
“진짜 빡셀 것 같다.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주제보다 도령 말 양이 장난 아니야. 가만히 듣기만 하는데도 지쳐.”
“나도 벌써부터 두렵긴 한데 내게 있어서 이 주제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서 또 빼먹을 수는 없네.”
“고생해요, 도령. 이거 올라오면 그날 고기 사줄게. 소고기.”
“내가 신림으로 갈게. 집에서 먹자.”
“오케이. 아무튼 말 잘라서 정말 미안. 마저 해줘요.”
“음, 어디까지 했더라.”
“해설과 함축의 두 번째 이유.”
“응. 아무튼 나는 앞선 두 가지 이유로 말을 함축하고 글은 해설하는데.”
“아!”
“괜찮아, 말해요.”
“말 잘라서 미안. 혹시 그러지 말까, 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뭘?”
“말과 글을 평균 맞추지 않아볼까?”
“그 생각도 해봤는데 전달과 이해 때문에도 안 되고, 그리고 나란 사람은 아무래도 말과 글이 거의 같아야 좋아. 습관인지 태생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게 나고 그게 편해. 그래서 이러는 것 같아. 당신이 보기에는 좀 번거로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도령 사는 모습이야, 뭐... 내 눈에는 죄다 번거로운 것투성이지.”
“아무튼 그랬어. 근데 여기서 의외가 생긴 거야. 어떤 의외냐면 평균치를 위해, 그리고 전달과 이해를 위해 말을 함축하고 글을 해설했잖아. 근데 주변 사람들은 그 반대로 받아드리는 거야. 전달을 위해 함축된 말과, 이해와 탈 곡해를 위해 해설된 글을 어렵고 힘들어해.”
“뭐야, 그럼 소용이 없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그렇게 안 하면 되잖아. 원래대로 말을 해설적으로 하고 글을 함축적으로 하면 사람들도 쉬워하는 거 아냐?”
“그건 다른 이유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일단은 맞아. 지금은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지. 근데 그것도 안 돼. 내가 그러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잖아. 두 번째 이유를 생각하면 그래야 하지만, 첫 번째 이유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지.”
“아, 그러네. 그럼 어떡해?”
“그래서 이게 바로 현재의 딜레마!”
“...도령 방금 엄청 바보 같은 표정이었던 거 알아요?”
“의외네. 아무튼 그래요. 정리하자면 첫째, 나는 생각과 말과 글이 같아야 한다. 왜? 내가 그래야 편하니까. 그리고 그 방식이 전달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니까. 머릿속에 있는 싱싱한 장미를 가장 갈변 없이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으니까. 이게 첫 번째 이유. 그리고 말과 글은 놔두면 각자의 성격이 강해지는 특성을 가졌기에 서로 같도록 반대 성격을 주입한다. 이게 두 번째 이유. 둘째, 그러나 내 의도와 반대로 주변 사람들은 더 어렵게 받아드린다. 왜? 익숙한 방식이 아니니까. 그리고 아직까지는 내가 평균화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 과정과 결과 모두 매끄럽지 않으니까. 셋째, 그래서 현재 주변 사람들은 함축되어 줄어든 말을 어려워하고 해설해서 늘어난 글을 읽기 힘들어합니다. 둘 중에 그나마 말을 조금 덜 어려워합니다. 이유는 물어보거나 덧붙일 여지가 있으니까. 넷째, 이 부분은 내가 말과 글이 같도록 평균을 내는 요령이 좋아질수록 점차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그렇게 생각과 말과 글을 동일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 서로를 변환하는 과정에서의 손실이 최소화될 것입니다. 이게 내가 흡수하고 사유하고 표현하는 삶에서 가장 이상적인 내 모습입니다. 여기까지 1부 끝.”
“지금 어디까지 온 거야?”
“반 정도 왔어. 개념에 있어서 딱 개론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