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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얼 Dec 29. 2024

[그데담 055] 생각, 글, 말 (3)

[3/3]






 “뭔가 좀 어질어질하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앞의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방금 우리는 성향을 유추하거나 추상을 추론하는 과정을 밟아봤어. 혹시 그렇게 느껴졌어?”


 “응. 이런 식으로 답을 찾아가는구나 싶었어.”


 “그럼 내가 쓰는 성향유추와 추상추론에 대한 정리, 즉, 방법론에 대한 정리만 남았는데... 오늘 말이 많았죠? 아직 머리가 복잡할 텐데 다음에 들을래요?”


 “이해가 잘 안 될 것 같은데, 듣고는 싶어요.”


 “그럼 미리 한 번 들어둔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글 형식으로 이야기할게. 내 식대로 따진다면 방금 과정까지가 사람의 성향을 유추하는 1차 과정. 귀납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미 특수성을 찾은 상대를 지목하고, 내 안에서 그와 같은 부분을 비교하여 윤곽을 잡는다. 그 결과물이 자신의 임시 A좌표가 된다. 방금 나온 당신의 성향이 이 A+좌표인 거야.”


 “응.”


 “그 후에 A+좌표를 역으로 뒤집어서 방금과 같은 방법으로 상대와 대조하여 A-좌표를 찾아낸다.


 “좌표를 뒤집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말에 대해 함축적이고 글에 대해 해설적이라는 가정으로 뽑은 결론이 A+좌표. 반대로 당신이 말에 대해 해설적이고 글에 대해 함축적이라는 가정을 하고, 실제 당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얼마나 일치되는지 확인하는 게 A-좌표야. A+좌표를 찾을 때 썼던 방법을 반대로 해보는 거지. 가정은 동일하니 둘 다 A인데, 방향만 반대야.”


 “아. 이해했어요.”


 그리고 A+좌표와 A-좌표를 융화하여 보다 정확하게 수정한 A좌표를 만든다. 여기까지 1차 과정. 그리고 이번에는 A좌표와 반대되는 B좌표를 찾는다. 1차 과정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B+좌표를 잡고, 이 역시 뒤집어 B-좌표도 만든다.


 “A-좌표랑 B좌표는 다른 거예요?”


 “A좌표는 당신이 말을 듣고 글을 읽을 때 어떤 성향인지. B좌표는 당신이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어떤 성향인지. 가정이 같고 방향만 반대면 A-좌표, 가정 자체가 다르면 B좌표인 거예요.


 “아. 이것도 이해.”


 “다시 정리하면, 일반성에서 추출해서 특수성을 가진 내 성향에 당신을 비교해서 방금처럼 당신의 특수성을 찾아내면 그게 A좌표. 그런 다음 그것을 역으로 뒤집은 상황, 듣고 읽는 게 아닌 말하고 쓰는 것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말하고 상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지. 글은 어떻게 쓰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이해시키려고 하는지. 마찬가지로 이미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나와 서로 대조하는 방법으로 안으로 들어오는 입력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출력에 대한 특수성을 찾는다. 대조가 끝나면 당신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B좌표가 나온다. 그리고 A좌표와 B좌표를 합쳐서 C+좌표를 만든다. 여기까지가 2차 과정. 이쯤 되면 아주 정확하지는 않아도 당신의 대략적인 성향이 드러날 거야.


 “응. 끝이야?”


 “3차 과정 남았어. 지금까지는 일반성에서 특수성을 추출해놓은 특정인물, 여기선 나지? 나와만 비교해가며 당신의 C+좌표까지 찾아왔잖아. 이건 연역적 과정으로 얻어낸 특수성이야.


 “아까 당신은 귀납적 과정을 통해 특수성을 찾았다고 했잖아. 나는 왜 다른 거야?


 “우리는 방식이 달라. 지금까지 당신 방식은 가정을 먼저 세우고 결과를 검산하는 연역적 과정이야. 나는 비교할 누군가가 없어서 벽돌 한 장부터 쌓아올린 지극히 귀납적 과정이었어.


 “아.


 “그리고 이제부터는 당신도 반대로. 연역적 과정으로 찾은 특수성을 가지고 귀납적 일반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몸 안에서 몸 밖으로 나가는 식으로. 즉, 당신의 C+좌표를 다른 여러 사람들의 C좌표들과 비교해본다. 대조를 통한 첨삭으로 여러번 모양을 다듬으면 그제야 당신 개인의 특수성과 관계 속에서의 일반성을 모두 가진 온전한 C좌표, 글과 말뿐만이 아닌 당신의 모든 입력과 출력을 총괄하는 성향에 대해 의식의 범위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이 나온다. 끝.”


 “말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글을 말로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음?”


 “진짜 어려운 주제 같은데 이해는 완전 잘된다.”


 “그래. 완전 다행이네.”


 “끝?”


 “응. 이제 진짜 끝이에요.”


 “고생했어요! 들려줘서 고맙고.”


 “듣느라 고생했어요.”


 “내가 고생일 게 뭐있어요. 누가 내 성향에 대해 이만큼 고민해주겠어. 내가 고맙지.”


 “나는 초중반쯤 ‘아 이게 뭔 소리야’라고 안 그러는 것만으로도 고맙네요.”


 “그런 말 절대 안 나와. 이렇게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어떻게 그래.”


 “정말 지난 어떤 담화보다 가장 힘들었다. 나한테도 당신한테도 정말 중요한 개념이라서 끝까지 붙들고 있었네. 글로 정리하는 건 아마 몇 배는 더 어려울 거야.”


 “고생했어. 고기 먹자, 도령.”


 “웃긴 건 뭔 줄 알아요? 둘 다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중반 이후부터는 어느 순간 반존대도 사라지고 죄다 반말이라는 거예요.”


 “그러네. 깨닫지도 못했어.”


 “나도 머릿속에서 내 것과 당신 것을 계속 비교하면서 검산하느라 신경도 못 썼어. 아무튼 오늘 말한 것은 한 개로 안 되겠다. 길이 때문에 나누는 담화록은 또 처음이겠네. 나중에 이거 정리해서 올릴게요. 그리고 그거 다 보면 다시 얘기해보자. 이제 1차 과정이니까, 2차 과정은 그 뒤나 되어야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거기는 아직 감이 멀어. 글은 뭐로 올릴 거예요? 담화록으로?”


 “그러겠지. 근데 아마 다른 담화록과는 느낌이 많이 다를 거야. 중간과정 생략 안하고 정리도 안 하고, 녹음한 거 그대로 옮겨 적듯이 실제 대화와 거의 흡사한 해설적인 담화록 하나. 그리고 기록을 위해 적당히 압축된 사상문 하나. 이렇게 두 개가 올라갈 것 같네.”


 “다른 담화록은 안 그랬어? 난 그대로 옮긴 건줄 알았는데.”


 “그건 당사자인 당신이 봐서 그래. 평소 올리는 담화록, 그거 엄청 정리해놓은 거야. 우리 말하는 그대로 적었으면 남이 봤을 때 반도 못 알아들어.”


 “말이라는 특성 때문에?”


 “정확히 그렇지. 우리가 대화할 때 언어적 커뮤니케이션만 있는 게 아니잖아. 눈빛, 표정, 제스처, 억양, 말의 흐름과 속도를 조절하는 하는 것으로 달라지는 상황적 뉘앙스 등등,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많으니까. 그런 거 없이 대사를 이어 붙이듯 언어적 커뮤니케이션만 그대로 옮기면, 비언적 커뮤니케이션을 보지 못한 남들은 내용을 제대로 전달받기 힘들지. 그래서 담화록은 형식만 대화일 뿐, 대사를 ‘말이자 글’이 되게 변환을 해줘야해. 내가 평소에 올리는 담화록은 내용이나 순서 정리는 물론이고 저런 것들도 전부 해설적으로 끼워놓은 거야.”


 “그런 거였구나. 몰랐네. 도령 말대로 나는 당사자라서 똑같다고 생각했나봐.”


 “그게 아는 내용을 읽을 때 해설적 글을 함축적으로 받아들이는 특성이야. 대화 때 받았던 비언어적 요소를 저장해줬다가 그게 거의 없는 글을 볼 때 불러와서 알아서 이해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한 줄을 그저 한 줄로만 읽을 때, 당신은 한 줄 안에 세 줄쯤을 구겨 넣어서 읽는 셈이지.”


 “이런 거였구나. 아무튼 의외다. 평소처럼 함축적 담화록과 해설적 사상문이 올라올 줄 알았는데. 이건 정리하고 안 하고를 떠나 평소랑 반대 특성이잖아.”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소통한 것을 원본 그대로 보존하는 게 그 뒤를 위해서도 그게 좋을 것 같고.”


 “그 뒤?”


 “나중에 A+좌표랑 A-좌표를 융화할 때 이 원본이 필요할 거야.”


 “그럼 나 위해서 특별히 예외인 거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안 해야지.”


 “왜? 버릇 나빠져서?”


 “아니, 그냥. 난 배배 꼬인 배려 없는 남자니까.”


 “평소 같으면 뭐라 했겠지만... 지금은 아무렴 어때 싶다. 가자.”


 “어딜?”


 “고기 사러. 내가 쏜다.”


 “역시 자신의 말을 책임지는 여자는 완전 멋져.”


 “당연하지, 난 누구와 달리 꼬이지 않아서.”


 “뭐야, 뭐라 안 한다며?”


 “누가 뭐라 안 한대? 아무렴 어때 라고 했지.”


 “담아뒀네, 담아뒀어. 상여자인데 속이 좁네.”


 “그러게. 속이 좁아서 곧 지갑까지 잃어버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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